15년 만에 펴낸 조인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교회 종이 세번 치면/ 고아원 아이들은/ 모두 저녁 예배에 간다.// 나는 교회에 가지 않고/ 형과 함께/ 돼지우리 앞에 있다.// 발뒤꿈치 들고/ 돼지우리 안을 들여다본다.// 이제 아프지 않다. 형.// 돼지우리 안에 돼지가 없다"('형이 아홉 살 내게 말씀해주신다' 중)
200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인호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처음으로 물에 뜨는 시간'을 펴냈다. 첫 시집 '방독면' 이후 무려 1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시인은 보호받지 못한 존재이자 이름을 잃은 존재인 '고아'를 시적 페르소나로 내세워, 블랙코미디와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뒤섞인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한다.
고아원과 병실, 공장, 전쟁터, 우주. 밤바다를 넘나들며 상처와 생존, 역사와 신화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다.
이를테면 '그만 죽어 김일성'에서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가난한 유년의 욕망을 절묘하게 비틀고, '슈뢰딩거의 돼지'에선 이태원 핼러윈의 밤을 배경으로 종교와 혐오와 죄의식이 뒤엉킨 장면을 펼쳐놓는다.
시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도라무깡'은 일제강점기 731부대를 소재로 제국주의의 폭력과 광기를 고발한다.
"쇼와 20년,/ 천황의 목소리가 라지오에서 흘러나오던 날,/ 기무라 교수는 조선총독부 지하 연구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날의 하늘은 순도 높은 에메랄드빛이었다./ 팔월의 매미가 울었다./ 나는 그날 죽은 기무라 교수 ―/ 아니, 육군본부 소속 대좌의/ 머리부터/ 먹어치운 날이기도 했다."('도라무깡' 중)
시인은 도라무깡(드럼통) 속에서 살아남은 괴물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공포, 뭇 생명의 악몽을 묵시록적 활극처럼 펼쳐 보인다. 상처와 농담, 괴물과 부활을 가로지르는 '시적 블록버스터'라 할만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추천사에서 "그의 시는 아무리 길어도 길지 않다"며 "한두 구절의 반짝임이 아니라 작품 전체로 삶의 아이러니를 전한다. 온갖 장르와 화법을 능숙하게 패러디하고, 동시대의 부드러운 시들에선 소멸된 국제 정세와 역사 감각을 가로지르면서 말이다"라고 호평했다.
창비.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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