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라 더봄] 패망의 잿더미에서 세계 미술을 흔들다···일본 ‘구타이’는 어떻게 탄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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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라 더봄] 패망의 잿더미에서 세계 미술을 흔들다···일본 ‘구타이’는 어떻게 탄생했나

여성경제신문 2026-07-10 13:00:00 신고

KAZUO SHIRAGA, UNTIITLED 1958. 72 X 107 X 3 1/2 INCHES (182.88 X 271.78 X 8.89 CM) OIL ON CANVAS.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KAZUO SHIRAGA, UNTIITLED 1958. 72 X 107 X 3 1/2 INCHES (182.88 X 271.78 X 8.89 CM) OIL ON CANVAS.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전후 일본 미술사 '구타이' 운동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영향

우리는 가까운 이웃 일본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나? 1990년대 말 처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에서 열렸던 일본 ‘에도 시대 유물전’을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일본 문화에 대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세대는 일본을 몰랐고, 일본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본을 그저 틈만 있으면 한반도를 침탈한 나라로 여겼다.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로 인한 분노와 상처 때문에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섞인 왜곡된 감정들로 일본의 실상과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섬나라라는 제한된 공간과 물자, 문화적·세계적 고립 속에서 살아온 일본과 달리, 한반도는 중국이라는 앞선 문명을 보다 빠르고 쉽게 접하며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일본을 업신여기고, 한때는 잦은 침략으로 인한 분란을 없애기 위해 대마도를 거저 주며 달랬던 역사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양의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일본이 앞선 서양 문물을 접하면서 일본 문화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웠지만, 근대 한국은 이를 철저히 외면해 왔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일본을 깔보고 비하하는 민족은 한국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이 일본의 실상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비뚤어진 열등감과 옹색하고 구시대적인 우월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본은 이미 16세기, 도쿠가와 시대부터 서양의 기독교 문화가 제한적으로 들어왔고, 에도 시대인 1603~1868년에는 이를 더욱 능동적으로 수용했다. 메이지 유신에 이르러서는 서양에서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까지 키워 나가게 됐다.  

YOSHIHARA JIRŌ, PLEASE DRAW FREELY, 1956. /COURTESY OF ‘ELEPHANT’
YOSHIHARA JIRŌ, PLEASE DRAW FREELY, 1956. /COURTESY OF ‘ELEPHANT’

물론 특정 분야의 형식과 기술에서는 우리의 것을 연상시키는 요소와 우리 문화의 영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그들은 마치 히틀러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침략국의 예술품과 문화를 탈취하고 숨겨 두었던 것처럼 우리의 문화재를 훔쳐가고, 핵심 기술자들을 유괴하면서까지 우리의 것을 탐하였을까? 조선인들이 생활용품으로 쓰던 막사발이 일본에서 조명받으며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그들은 예술의 가치를 우리보다 먼저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여기서 전후 패망국 일본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겪은 절망과 혼란, 그리고 그들이 숨길 수 없었던 예술혼이 ‘구타이 운동’이라는 형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세계 미술사에서 추상 표현주의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현대인들에게도 잊혀 가는 ‘구타이’ 장르가 부활하기를 고대한다. 

YOSHIHARA JIRO, ‘WHITE PAINTING’ 1958. /COURTESY OF WHITESTOEN GALLERY
YOSHIHARA JIRO, ‘WHITE PAINTING’ 1958. /COURTESY OF WHITESTOEN GALLERY

‘구타이’는 ‘구체적인 구현’이라는 뜻으로, 구타이 미술 운동은 20세기 일본에서 나타난 가장 혁신적인 아방가르드 운동 가운데 하나다. 1954년 오사카 인근 아쉬야 지역에서 설립된 구타이 미술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창시자 요시하라 지로는 시마모토 쇼조와 젊은 세대의 학생들과 함께 구타이 미술협회(1954~1972)를 창립했다. 그는 전후 살롱 회화를 지향하는 태도를 거부하고 서예에 대한 관심을 수용하는 대담하고 제스처적인 추상화로 전환했다. 페인트·종이·나무·진흙·물·전기 등 각 재료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믿었다. “아무도 모방하지 마라”는 구타이의 슬로건 아래, 그들은 이러한 경향이 지닌 수행적 성격을 포착해 이벤트·설치·새로운 미디어·일상 자료·관객 참여까지 유도하는 멀티미디어 접근 방식을 취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타키즘(Tachisme)과 아르 앵포르멜(Art Informel)이 유행했다. 아르 앵포르멜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걸쳐 유럽, 미국, 특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비정형 추상미술 운동이다. 

WORK ATSUKO TANAKA, 1963, 57 1/4 X 44 1/2inches (145.42 X 113.03㎝) SYNTHETIC POLYMER PAINT ON CANVAS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일본의 구타이는 단순한 예술적 스타일이 아니라 구세대의 패망, 외세의 점령, 민주화, 빠른 경제 회복 등 전례 없는 변화를 겪은 일본이 전후 세계에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반작용이었다.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파괴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식량 부족과 경제 붕괴는 제국 이데올로기를 붕괴시켰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아름다움과 권위, 문화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전후 생활의 현실을 표현할 수 없어 보였다.

구타이의 멤버들은 대부분 군국주의 시절에 자란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어린 시절이나 젊은 성인 시절 전쟁을 경험했다. 그들은 패망의 나라에서 절망과 좌절을 겪으며 전쟁 전 일본 예술의 경직된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싶었다. 그들은 고통을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창작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물자의 부족은 그들을 거리의 쓰레기더미나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창작의 재료로 이용하게 했고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난 재료들을 찾게 한다. 이런 현실이 회화 대신 행동, 움직임, 놀이, 실험에 집중한 이유를 설명한다. 

패망 후 연합군의 일본 점령에 의한 외세 주도의 개혁은 새로운 민주 헌법을 개정하고 언론과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했다. 

SADAMASA MOTONAGA, SAKUHIN(WORK),1962, OIL ON CANVAS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SADAMASA MOTONAGA, SAKUHIN(WORK),1962, OIL ON CANVAS /COURTESY OF GLENSTONE MUSEUM MD

예술가들은 구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갑자기 얻게 되면서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예술은 전통적 아카데미를 거부하고 고정된 예술 규칙을 거부함으로써 권위에 도전했다. 

구타이 운동은 도쿄가 아닌 오사카의 아시야 지역에서 발전했다. 이는 실용성과 실험성을 강조하는 오사카의 상업 문화와 보수적인 도쿄 예술 단체로부터 거리를 둔 독자적인 예술 분위기 덕분에 가능했다. 이러한 환경은 구타이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토대가 됐다.

이러한 정치적·사회적 분위기에 고무된 젊은 작가들은 협회를 만들어 야외 전시회와 공연, 실험, 이벤트 등을 열었다. 예술가들은 서로 협업하며 구타이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서양 작가들과도 교류하며 추상표현주의의 기치를 높였다.

전쟁으로 인해 서양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일본은 1952년 연합군의 점령이 끝난 후 유럽 및 미국과 다시 교류하게 됐다. 이는 일본 예술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을 접하는 계기가 됐으며, 일본 미술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은 이미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유럽의 타키즘과 아르 앵포르멜을 경험했다. 또한 미국의 잭슨 폴록과 같은 작가들의 드리핑(Dripping)과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독일의 바우하우스와 초현실주의를 ​접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모방하지 말라”는 슬로건을 지키며 완전히 독립적이고 전례 없는 형식을 ​추구했다.

//WWW.TATE.ORG.UK/ART/ARTWORKS/OTSUJI-TANAKA-ATSUKO-ELECTRIC-DRESS-2ND-GUTAI-EXHIBITION-P82296 /COURTESY OF TATE MODERN
//WWW.TATE.ORG.UK/ART/ARTWORKS/OTSUJI-TANAKA-ATSUKO-ELECTRIC-DRESS-2ND-GUTAI-EXHIBITION-P82296 /COURTESY OF TATE MODERN

구타이 작가들은 서양 작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들의 작업을 홍보했고,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네트워크와 연결됐다. 그 결과 구타이는 전후 일본 미술 운동 가운데 처음으로 서양 미술의 파생적인 형태가 아니라 혁신적인 운동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전후 국제사회의 냉전 체제 속에서 일본에서 추진된 개혁은 개인의 자유와 실험적 도전, 창의성, 개방성을 중시한 구타이 운동의 광범위한 민주주의적 이념과 맞닿아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추진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달리, 구타이는 이념적 메시지보다 개인적인 탐구를 강조했다.

그들이 어떻게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예술품을 창작했으며, 서양의 모더니즘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용어 설명>

예술혼= 예술을 창작하려는 강한 정신과 열정.
구타이= 일본어로 ‘구체’라는 뜻. 재료와 몸의 움직임을 중시한 전후 일본의 실험적 미술 운동.
추상표현주의= 사람이나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색과 선, 몸짓으로 감정과 움직임을 표현한 미술 경향.
아방가르드= 기존의 전통과 규칙을 깨고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는 전위적인 예술.
살롱 회화= 미술관이나 공식 전시회에서 인정받던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회화.
제스처적 추상화= 붓질이나 몸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그린 추상화.
수행적 성격=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행동과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
설치미술= 특정 공간에 여러 재료와 물건을 배치해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만드는 미술.
타키즘= 붓질과 물감의 흔적을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드러내는 유럽의 추상미술 경향.
아르 앵포르멜= 정해진 형태를 따르지 않고 재료의 질감과 즉흥적인 표현을 중시한 유럽의 추상미술 운동.
비정형 추상미술= 일정한 모양이나 구성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추상미술.
모더니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표현을 추구한 근현대 예술 사조.
드리핑= 붓으로 칠하지 않고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흘려서 표현하는 기법.
액션 페인팅= 화가의 몸짓과 움직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 방식.
바우하우스= 예술과 건축, 디자인, 공예를 결합하려 했던 독일의 예술학교이자 예술운동.
초현실주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처럼 표현하려 한 예술운동.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회주의 국가의 이념과 노동자·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도록 한 예술 방식.

여성경제신문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lovelysarah0613@gmail.com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한양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교육심리를 부전공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재직 중 1997년 도미하여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NOVA)와 조지타운, 조지 워싱턴,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지질학 등을 수학했다. NOVA 지질학 랩(Geology Lab) 연구 부교수와 메릴랜드 포토맥의 글렌스톤 뮤지엄(Glenstone Museum)에서 근무하며 학술과 예술을 넘나드는 전문성을 쌓았다. 2023년 귀국 후 설악산 한계령에 농업회사법인 모란재를 설립했으며, 현재 자연과 농업, 전통과 예술을 결합한 뮤지움을 기획함과 동시에 Upper East 전시기획사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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