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MASGA)가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이 우리 조선사의 함정 건조·설계 역량을 공식적으로 문의하면서 지지부진했던 마스가 프로젝트가 실무적 단계로 진입할 것이란 기대감이 실린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 국방부와 해군은 최근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에 전투함과 급유함 등에 대한 정보 요청(RFI·Request for Information)을 보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전투함 설계·건조 역량을 담은 자료를 미 국방부에 제출했으며, 삼성중공업도 급유함 분야의 정보를 회신한 것으로 전해진다.
RFI는 정책이나 사업 추진에 앞서 가격과 인도 조건, 건조 능력, 생산 시설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 조사 단계다. 업계에서는 이번 RFI가 단순한 기술 조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법적으로 해외 건조가 엄격히 금지된 전투함까지 정보를 요청했고,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는 만큼 마스가가 ‘구호’를 넘어 실무적 단계로 진입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보다는 한 단계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의도가 있으니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구속력이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RFI 요청은 한미 정상 간 소통 시점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받고 “당연히 가능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정상 차원의 메시지 교환에서 나아가 국방부와 해군을 통해 구체적인 실무 검토에 착수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은 중국 해군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 조선 역량 보강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 해군은 2024년 말 기준 296척의 함정을 2054년까지 381척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신규 함정 조달 예산은 연평균 300억달러(약 45조원)으로 추산된다. 코트라는 미국이 30년간 총 1조750억달러(약 1600조원)를 투입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미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조선소 활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번스-톨레프슨법을 개정하거나 이를 우회할 수 있는 행정명령 발동을 검토하며 한국과 협의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의 해외 함정 건조 관련 규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미국은 군함 확보는 시급하지만 역내에서 함정을 빠르게 건조할 역량은 부족한 상황이다. 지정학적 상황을 따져보면 규제를 풀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양찬 책임연구원은 “RFI는 말 그대로 정보를 요구하는 수준이지만, 일단 미국이 우리 조선사에 관심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법적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 세계를 커버해야 할 미국의 해군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대안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양 책임연구원은 이어 “통상 20~30년인 미국 이지스함의 내구연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역내 건조 능력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중국을 견제할 수단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법으로 계속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중론도 제기된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엇박자를 내는 상황에서 우리 조선사의 미국 진출을 기대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RFI로 첫발을 떼긴 했지만 한국에 함정 건조 물량을 주겠다는 확약은 아니고, 미국 정부의 의지가 높다고 해도 의회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국방기술학회 유형곤 센터장은 “미국 의회는 자국 내부 조선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활용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는 마스가 프로젝트에 많은 기대가 실렸지만, 이제야 RFI를 요청한 것을 보면 오히려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판단했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 역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유 센터장은 “미국의 본심은 자국 조선소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기술과 자본을 넘겨달라는 것”이라며 “반면 한국은 함정 건조 물량을 나눠 맡기를 바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 한미 조선 협력으로 얻을 안보적 이익은 분명하지만, 의회는 경제적 손실이나 한국에 의존하게 될 경우를 우려할 가능성이 높다”며 “양국 정부가 역할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함정 건조 협력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미국 시장에는 여전히 큰 기회가 남아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 해군력 확충과 자국 조선업 재건에 역량을 집중하는 만큼 함정 유지·보수·운영(MRO), 비전투함 건조, 현지 조선소 협력 등 다양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블록을 제작해 미국에서 조립하는 우회적 협력이 유력하다.
양 책임연구원은 “한국이나 국내 조선사가 인수한 해외 거점에서 블록을 제작해 미국으로 가져가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우회 방법”이라며 “일단 규제를 우회한 뒤 장기적으로는 법을 개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군함 건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우리 조선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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