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는 늘 이야기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옷보다 앞서는 순간은 의외로 드물죠.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에서 선보인 두 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그 드문 경우 중 하나입니다.
마티유 블라지는 이번 시즌 동화를 꺼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동화를 빌려 현실을 이야기했죠. 〈잭과 콩나무〉,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같은 익숙한 서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하나의 장치였습니다. 동화와 환상을 빌려 오뜨 꾸뛰르가 결국 누구를 위한 옷인가를 다시 묻는 방식이었죠.
첫 번째 룩부터 그 의도는 선명했습니다. 모델은 가브리엘 샤넬의 서재에서 막 꺼내온 듯한 동화책을 손에 들고 등장했습니다. 런웨이는 마치 오래된 동화책의 첫 페이지처럼 근사하게 포문을 열었죠. 하지만 그 후 모두의 시선을 붙든 건 판타지가 아닌 섬세한 재단이었습니다. 기퓌르 레이스와 투명한 실크 무슬린은 공기를 머금은 듯 가벼웠고, 익숙한 샤넬 수트는 해체와 재구성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냈습니다. 블라지는 하우스의 상징을 온통 뒤엎기보다, 깊숙한 곳부터 조금씩 비틀 줄 아는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죠.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화려한 자수도, 장인의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안쪽이었죠. 손으로 그린 실크 안감, 안감에 숨겨진 작은 메모, 체인에 매달린 참 장식, 주머니 속 오브제까지, 이 모든 것은 관객이 아닌 실제로 옷을 입는 사람만을 위한 디테일입니다. 오뜨 꾸뛰르가 필수로 지녀야 할 가장 사적인 아름다움을 블라지는 꽤 집요하게 들여다봤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치가 아니라 스스로만 알고 있는 비밀을 만드는 일,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오뜨 꾸뛰르가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죠.
재미있는 건 동화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덩굴은 슈즈의 힐을 타고 자라나고, 미노디에는 곰을 닮았으며, 버튼은 새끼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합니다.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상징은 놀라울 만큼 절제되어 있죠. 블라지는 환상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현실 위에 아주 얇게 덧입힐 뿐입니다. 그래서 컬렉션은 동화를 말하면서도, 끝내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죠.
살롱을 뒤덮은 독초 덩굴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위험하고, 낭만적이지만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삶 역시 동화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블라지는 그를 신화 속 인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완전했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금 쌓아 올린 한 명의 여성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옷도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죠. 절개는 예상보다 과감하고, 형태는 일부러 흐트러졌습니다. 실루엣의 진가는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되죠. 살롱에 전시되는 조각이 아닌, 실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옷에 가깝죠.
블라지가 샤넬을 대하는 태도도 눈 여겨볼 만 합니다. 새로움을 위해 역사를 부수지 않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과거를 반복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우스의 유산을 꽤 자연스럽게 오늘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것도 큰 목소리 대신 낮은 톤으로 말이죠. 덕분에 이번 컬렉션에는 과시 대신 시간이 녹아있습니다. 손끝이 쌓아 올린 시간, 옷을 입는 사람이 샤넬과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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