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첫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새로운 챕터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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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첫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새로운 챕터가 열리다

마리끌레르 2026-07-09 20:38:30 신고

장인 정신과 낭만적 감성으로 완성해낸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의 첫 번째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로맨티스트가 만난 건축가의 유산

파리 시테 국제 대학 도시의 정형식 정원에서,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발렌티노에서 25년 이상 몸담으며 쿠튀르의 낭만을 완성해온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하우스의 55번째 오트 쿠튀르인 만큼 전 세계 패션계의 시선이 집중된 자리였죠.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창립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의 아카이브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 ‘쿠튀르의 건축가’라 불렸던 그가 왜 그런 이름으로 불렸는지, 그 질문에서 이번 컬렉션은 출발했습니다. 강렬한 충격 대신 장인 정신과 감정이 담긴 쿠튀르의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만의 선언이기도 했죠.

절제와 웅장함 사이,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발렌시아가

쇼장은 과감하게 덜어냈습니다. 화려한 세트 대신 정형식 정원의 자연광 아래 화이트 카펫만을 깔아둔 채, 가수 아노니(Anohni)의 고요한 목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흘렀는데요. 세트 디자인과 극적 연출에 강하게 공을 들이던 전임자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스타일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몸을 조이는 것이 아닌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을 설계하는 방식. 캐시미어 소재의 테일러드 코트와 드레스는 인체를 3차원 디지털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됐으며, 내부에 가죽 소재의 단단한 구조물을 몰딩해 건축적인 구조감과 놀라울 만큼 가벼운 착용감을 동시에 구현했습니다. 소재의 혁신도 눈에 띕니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첨단 바이오 엔지니어링으로 개발된 실크 대체 소재 ‘AMSilk’를 쿠튀르에 처음 도입했는데요. 여기에 발렌시아가의 창립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개발했던 가자(Gazar)를 새롭게 재해석한 네오 가자(Neo-Gazar)도 핵심 소재로 사용되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깃털로 뒤덮인 탠 컬러의 트렌치코트과 바람을 머금으며 부풀어 오르는 바이올렛 가운, 거대한 블랙 페더 장식이 갈기처럼 둘러진 올블랙 룩까지. 필립 트레이시(Philip Treacy)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깃털 조형물은 모자와 의복의 경계를 허물며 쿠튀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절제와 혁신, 그리고 낭만이 한 런웨이 위에서 공존하는 것, 그것이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새롭게 그려낸 발렌시아가 쿠튀르의 언어였죠.

새로운 발렌시아가를 목격한 얼굴, 더보이즈 주연

이 역사적인 첫 무대를 지켜본 이들 중 더보이즈의 주연도 자리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쇼장을 찾은 그는 부드러운 브라운 톤의 오버사이즈 코트에 스트라이프 셔츠를 레이어드한 착장으로 등장했는데요. 깔끔하고 세련된 룩에 볼드한 아이웨어와 허리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한 벨티드 디테일로 룩에 은근한 개성을 더했습니다. 정형식 정원을 배경으로 한 야외 무대의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스타일링이었죠.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이번 컬렉션을 통해 발렌시아가에 새롭게 불어넣은 우아함과 감성이, 쇼장을 찾은 이들의 착장 하나하나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Balenciaga

쿠튀르가 일상과 맞닿는 방식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쿠튀르가 지금 이 시대와 맞닿아 있기를 바랐다”고 밝혔습니다. 정형식 정원을 무대로 선택한 것도, 장식을 최대한 덜어낸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죠. 역사는 과거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도 모든 요소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철학과 깊이 공명하는 것. 절제와 화려함 사이를 오가며 테일러링의 구조를 유연함 속에 녹여낸 이번 컬렉션은 쿠튀르가 발렌시아가라는 하우스를 움직이는 가장 본질적인 힘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55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으로 새로운 챕터를 연 발렌시아가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그 다음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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