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신선처럼 늙지 않길 바란 술… 청주 신선주의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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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신선처럼 늙지 않길 바란 술… 청주 신선주의 향

뉴스컬처 2026-07-09 19:29: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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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신선주 박준미 명인.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충주 신선주 박준미 명인.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충북 청주 상당산성 아래 도달하면 주류 향기보다 약초 냄새가 먼저 마중 나온다. 감국화 은은한 꽃내음, 지골피 남기는 마른 뿌리 특유의 쌉쌀함, 통밀누룩 곰삭은 기운이 찹쌀 단내와 절묘하게 섞인다. 신선주라는 이름은 가벼운 환상만 덧씌운 술처럼 비춰지기 쉽다. 그러나 속살은 가문 건강 관리, 손님 접대, 선비 풍류가 뒤엉킨 깊은 약주다. 취하기 위한 잔보다 몸을 살피려던 마음이 먼저였다.

청주 신선주는 함양박씨 문중에서 수백 년간 전해진 가양주다. 충청도 도사를 지낸 박숭상 계열의 집안 술로 알려졌다. 미원면 계원리 일대 물과 쌀을 재료로 삼아 빚었다. 신라 말 문인 최치원이 신선봉 아래 암자를 짓고 벗들과 음복했다는 구전도 내려온다. 세속 소란에서 잠시 물러난 지식인이 산 아래에서 몸과 마음을 달래던 술, 노쇠를 늦추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던 의지로 기억된 까닭이다.

현암 박래순의 '현암시문합집'에는 “백발을 검게 변화시키고 노쇠를 돌려 소년으로 환원시켜 연년익수하게 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남았다. 현대 의학적 언어로 번역하기 벅찬 과장이다. 옛사람이 발효주를 대했던 태도를 읽기엔 부족함이 없다. 수명 연장 욕망, 늙음 방지 갈구, 약재 힘을 빚기에 빌리려는 생활 지식이 응축됐다. 청춘을 약속하는 영약보다 노화를 경계한 당대 시대 정서가 빚어낸 작명이다.

충주 신선주. 사진=신선 공식 홈페이지
충주 신선주. 사진=신선 공식 홈페이지

 

◇선비의 풍류보다 깊은 보양 문화

약재가 투입됐다고 해서 신선주를 한약 맛 술로만 한정 지을 순 없다. 조부 세대는 경옥고와 상비 약재를 다루며 가족의 건강을 살폈고, 보신강장용 약주를 빚어 귀빈에게 냈다. 신선주, 국화주, 오가피주가 그런 생활 속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약방문은 병을 고치는 처방전만이 아니었다. 음식을 다루고 빚고 몸을 돌보는 가사 기술의 결정체였다. 제조법에는 감국화와 지골피를 물에 달여 밑물로 쓰는 방식이 적혔다. 우슬, 하수오, 구기자, 천문동, 맥문동, 생지황, 숙지황, 인삼, 당귀, 육계 등도 가루 형태로 첨가한다. 약재 구성은 시대와 원료 수급 기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으나, 핵심은 향과 온기를 액체 안에 가두는 일이다. 꽃은 향기의 윗부분을 열고, 뿌리와 줄기는 쌉쌀한 깊이를 남긴다. 육계 계열 따뜻한 기운은 입안 뒤편에 잔향을 길게 붙잡는다.

찹쌀은 약초 기운을 묵묵히 받아내는 든든한 밑거름이다. 곡물 단맛이 지나치게 튀어 오르면 술은 무거워진다. 반대로 쓴맛이 앞서면 음용 즐거움은 줄어든다. 이 술의 매력은 두 성격이 밀고 당기는 긴장감에 있다. 감미는 입술 부근에서 부드럽게 번지고, 쌉쌀한 허브 향은 혀 뒤쪽에 남아 여운을 정리한다. 산뜻한 산미가 잔 끝을 닦아내면 보양주에서 떠올리는 묵직함보다 맑고 정갈한 인상이 남는다. 활용처도 다채롭다. 제사상, 손님상, 가족의 계절 음용, 산성 아래 풍류가 한데 섞였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집술은 예법이자 생활 능력이었다. 손님을 맞는 집안의 품격도 술상에서 드러났다. 청주 신선주는 그런 문화의 연장선에 서 있다. 병에 담긴 제품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는 부엌의 노동, 약초를 손질하던 손, 술독 온도를 살피던 감각이 명칭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충주 신선주 양조장 모습.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충주 신선주 양조장 모습.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함양박씨 손맛, 끊긴 길을 잇다

전승 계보에는 박래순, 박기동, 박남희, 박준미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박래순이 문헌으로 제조법을 남겼고, 후손들은 가문 안에서 술을 이어받았다. 고 박남희 보유자는 부인의 회갑을 맞아 집안에서만 마시던 술을 내놓았고, 손님들의 입소문이 지역사회로 번졌다. 사적인 축하주가 향토 술의 존재를 알린 계기였다. 1994년 청주 신선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무형유산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집안 안쪽에 고립되었던 술이 공적 보호 대상이 된 순간이다. 무형유산 지정은 한 병의 상품성을 보증하는 표식보다 전승 기술과 생활 문화를 지키려는 제도에 가깝다. 술은 제조법만 남아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누가 빚고, 어떤 날 마셨으며, 어떤 음식과 어울렸는지까지 기억되어야 제 모습을 찾는다.

박준미 명인은 부친에게서 술을 배웠다. 건축디자인 일을 하던 삶은 가업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부친이 양조장 건립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은 뒤, 그는 술 빚기를 돕다가 점차 전승의 중심에 섰다. 처음부터 낭만적인 선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술에 몰두한 부친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실패한 발효를 다시 기다리는 고된 과정도 겪었다. 복원은 문헌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옛 책은 쌀과 누룩, 약재의 틀을 알려주지만 현대 양조장이 매번 안정적인 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세부 조건까지 다 말하지 않는다. 온도, 습도, 누룩의 미생물 상태, 약재의 산지와 건조 정도, 물의 감각은 술맛을 좌우한다. 박 명인은 밀 농사까지 짓고 토종 앉은뱅이밀로 누룩을 띄우며 술의 뼈대를 직접 다듬었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꽃향, 나무 냄새, 야생 미생물까지 술맛에 스민다는 그의 설명은 발효를 숫자만으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대한민국식품명인 제88호 지정은 그런 오랜 시간을 인정한 결과다. 충북 주류 분야에서 첫 명인이라는 의미도 크다. 식품명인은 전승 기능자의 숙련과 산업적 지속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무형유산이 가문의 술과 지역 문화에 무게를 둔다면, 식품명인은 기술을 현재 생산과 교육으로 살려내는 사람에게 초점을 둔다. 청주 신선주는 두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전통의 보존과 사업화의 난제를 한꺼번에 안고 있다.

충주 신선주 박준미 명인. 사진=신선 공식 홈페이지
충주 신선주 박준미 명인. 사진=신선 공식 홈페이지

 

◇통밀누룩과 생약재, 100일의 기준

통밀을 빻아 물과 섞은 뒤 누룩을 빚는다. 깨끗한 볏짚 방석으로 감싸 온기를 품게 하고, 적당히 띄운 뒤 부숴 사용한다. 볏짚은 그저 포장재가 될 수 없다. 온도와 습도를 붙잡고 미생물이 머물 환경을 돕는다. 누룩은 술의 뼈대다. 찹쌀이 가진 전분을 당으로 풀어내고, 술덧 안에서 알코올과 향을 낳는 출발점이다. 감국화와 지골피는 따로 달인다. 물 네 말을 끓여 두 말이 되도록 줄이는 방식은 약재 성분과 향을 농축하는 과정이다. 그 물로 술을 담그면 발효는 곡물만의 운동에서 끝나지 않는다. 약초의 쓴맛과 향, 꽃의 은근한 기운, 뿌리의 흙내가 술덧 안으로 들어간다. 찹쌀 두 말을 기준으로 누룩과 약재가 더해지면 보통 곡주보다 되직한 상태가 된다. 되직한 술덧은 발효를 느리게 하고 향을 깊게 붙잡는다.

섭씨 30도 안팎에서 일주일가량 발효한 뒤, 다시 25도 정도에서 숙성하는 방식이다. 현재 양조장에서는 100일 숙성 원칙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옛 주방문과 오늘의 생산 기준을 한데 섞으면 술의 시간이 흐려진다. 과거에는 계절과 실내 온도, 술독 상태가 공정을 좌우했다. 현재는 일정한 품질을 위해 숙성 기간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박준미 명인은 100일이 차기 전 술을 출하하지 않는 원칙으로 알려졌다. 사업 초기에 큰 주문이 들어왔지만 숙성일이 며칠 모자라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매출보다 술의 기준을 택한 결정이었다. 발효주는 날짜 며칠을 앞당기는 순간 향의 둥근 부분이 덜 익고, 알코올의 모서리가 남기 쉽다. 기다림은 장식적 미덕과 거리가 멀다. 술맛을 완성하는 실제 공정이다.

청주 신선주 양조장 모습.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청주 신선주 양조장 모습. 사진=충청북도 공식 블로그

 

잔에 따른 신선주는 약재 술에서 떠올리는 탁한 무게감과 거리가 있다. 약주는 묵직한 몸체를 갖지만 끝은 비교적 산뜻하다. 42도 증류주는 높은 도수에도 향이 날카롭게 튀기보다는 부드럽게 감긴다. 탁주는 농밀한 질감 속에 은근한 산미가 살아 있고, 낮은 도수의 막걸리는 누룩 향을 부드럽게 누르며 편안한 음용성을 보인다. 뿌리, 잎, 꽃이 섞인 허브 향은 마시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 전통주가 대중적 매끄러움만 고집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개성의 폭도 맛의 일부다.

전통주 업계에서는 젊은 창업자와 감각적인 브랜드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신선주의 길은 그 경쟁 속에서 개성을 유지한다. 유행어를 앞세우기보다는 가문의 약방문, 생약재, 누룩, 산성동의 음식 문화를 천천히 엮는다. 세계 행사에서 한국 디저트와 발효문화를 소개한 경험도 그런 연장의 일이다. 술의 가치는 도수와 수상 경력으로 설명할 수 없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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