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호프'가 살아야 한국영화가 산다고요? 나한테 왜 그러는 겁니까."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나홍진 감독을 만났다. 영화 '호프'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이 '추격자',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는 점과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조인성의 첫 만남, '오징어 게임' 이후 글로벌 스타로 도약한 정호연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주목받았다. 여기에 칸 영화제에서의 호평에 이어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기대감이 최고조로 치솟은 상황이다.
또한 정확하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700억~1000억 원으로 한국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 됐다고 전해 지면서, 이 영화가 과연 어느 정도의 흥행을 거둘지도 관심사가 됐다.
엄청난 제작비가 든 만큼 '호프'가 잘돼야 한국 영화 산업이 산다는 반응이 이어지자 나 감독은 "나에게 왜 그러는 거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10년 만에 영화를 선보이는 데 부담이 된다"라며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개봉 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외계인'까지 등장하는 이 영화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나 감독은 "15년 전 해외여행을 갔다가 작고 낯선 동네를 발견했다. 인기척이 없었는데 웬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더라. 묘했고, 동네가 희한하게 무섭다고 느껴졌다. 그때 분위기를 수첩에 메모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게 시작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나 감독은 "'이쯤이면 되겠다'며 초고를 완성한 때가 2018년이다. 이후 공정 과정이 길었다.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고 준비할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나 감독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직접 목격하거나 매체 등을 통해 접한 여러 '문제적 상황'을 '외계인'과의 사투로 응용해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곡성'에서 초자연을 이야기했다면 더 나아가 '호프'를 통해 상위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제목이 '호프'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나 감독은 "영화의 엔딩에 답이 있다"라며 "극 중 모두는 저마다 품고 있는 목적과 희망이 있다. '성기'(조인성) 등 숲속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야 하며,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는 마을을 구해내야만 한다. 또 외계인에게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과 희망이 충돌하면서 비극이 일어나지만, 결국 그 안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나선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상황에서 꼭 지키고 싶고 살려야 하는 존재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그게 영화다. 그런 희망이 믿음이 되고, 또 다른 부활의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호프'가 최초 상영된 이후 호불호가 있었다. 특히 외계인 CG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후 나 감독이 국내 개봉 전 재편집 과정 등을 통해 영화를 다듬었다고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나 감독은 "칸에서 호가 훨씬 많았다"고 작품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앞서 목수 '양배'(음문석)가 등장하는 장면을 걷어냈었는데 못내 아쉽더라. 그래서 칸 영화제 이후 다시 복구시켰다"라며 "자연스럽게 러닝타임이 길어지지 않느냐. 그래서 몇 장면을 걷어냈다"고 했다.
러닝타임이 무려 156분이다. 일부 관객은 장시간 극장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할 것 같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이에 나 감독은 "러닝타임이 짧으면 돈 아깝지 않느냐. 나는 아깝더라. 연속으로 상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플롯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서사의 중요성 때문이다. 완성된 하나의 구조를 갖추고 차별화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담아 완성시키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요소가 담겨야 해서 영화가 어려운 것이다"라며 "나는 관객이 관람하는 데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찍었다"고 말했다.
사실 156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호프'는 첫 시퀀스부터 질주한다. 영화에서 초반 10분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약 60분 동안 내달리며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후 나 감독 특유의 쫄깃한 스릴러가 이어진다. 이와 함께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면서 SF를 넘나든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구간에서 코미디도 튀어나온다. 엄청난 비극 속에서 관객의 실소가 터지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특히 초반 50분가량 펼쳐지는 황정민의 원맨쇼가 압권이다. 독보적인 연기력과 압도적인 액션 연출이 만나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황정민 홀로 영화 초반을 질주하는 것은 나홍진 감독의 계산 속에서 이뤄졌다.
나 감독은 "황정민 배우는 그동안 너무나 대단한 작품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냈다"라며 "황정민 한 명으로 '40~50분을 개겨보자'고 결심하고 도박을 걸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 감독은 "혼자서 달리고, 이동하고, 숨는 모든 것을 표현해야 했다. 리액션을 해줄 상대 배우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순서대로 찍지도 않았다"라며 "이런 류의 장르영화에서 필히 존재하는 클리셰다. 감독으로서 황정민 배우를 믿고 진짜 프로페셔널하게 들어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숲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인성과 외계인의 사투 또한 독보적이다. 고심 끝에 선정된 촬영지 루마니아의 울창한 숲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할리우드 영화 뺨치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러나 외계인 이미지를 두고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 감독은 "타블로이드지에 나오는 외계인들의 모습이 대부분 흡사하지 않나. 그런 전형적인 모습으로 시작했다"라며 "국내에서 외계인을 디자인 하는 곳을 몰라서 외국분들과 작업했다. 할리우드에서 큰 작품에 참여했던 분들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을 지킬까 바꿀까를 수없이 고민하다 결국 변화와 진화를 거듭했다"라며 "배우들의 모션 연기와 CG화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큰 변화를 줬다. 그렇게 8~9년에 걸쳐 바뀐 것이다. 정말 징글징글했다"고 토로했다.
나 감독은 "사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전반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웃었다.
'호프'는 오는 15일 공개된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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