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8일(이하 현지시간) 이란과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공습을 단행하면서 종전 불씨가 사그라드는 모습이다.
미군은 지난 7일 이란의 상선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해안 레이더 기지, 대함 미사일 전력,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소속 소형정 등 80개가 넘는 표적을 타격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종전 MOU가 끝난 것 같다"며 추가 공습을 예고했고, 8일에는 이란 남부 지역뿐만 아니라 북부 지역의 철도 교량까지 타격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미국이 MOU를 파기했다며 중동 내 미군 기지를 향한 대대적인 보복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상선 공격이 충돌을 촉발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양국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종전 MOU 끝난 듯"…이란 향해 "쓰레기" 맹비난
미군, 이란 추가 공습…북동부 철교 등 '인프라' 공격
미군 중부사령부는 8일 이란의 상선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을 추가 공습했다.
중부사령부는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군통수권자의 지시로 이란을 겨냥한 추가 공습을 개시했다"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협하는 이란의 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당국자를 인용해 이번 공습이 전날보다 범위가 넓어졌으며, 이란군의 해안 레이더·대함미사일 기지·방공시스템 등이 타격 대상이었다고 보도했다.
전날 미군은 정밀유도무기를 활용해 방공 시스템, 지휘통제망, 해안 레이더, 대함 미사일 전력, 혁명수비대(IRGC) 소속 소형정 등 80여 개 목표물을 공격한 바 있다.
중부사령부 발표 직전 이란 매체들은 남부 반다르아바스와 시리크 일대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오만만 연안의 전략 항구 차바하르에서도 폭발이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특히 이번 공습 대상에는 북동부 지역 철도 교량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CNN 방송은 이란 IRIB 국영방송 보도를 인용해 이란 북동부 골레스탄주 아칼라시 외곽 철도 교량이 미군으로부터 공격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란 남부지역을 벗어나 북동부 지역으로 공습이 확대되면서 '인프라'도 목표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습을 앞두고 "오늘 밤 다시 이란을 강력히 공격할 수 있다"며 추가 공습을 예고한 바 있다.
이란과 체결한 종전 양해각서(MOU)에 대해 "끝난 것 같다. 그들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파기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그들은 쓰레기(scum)고, 지긋지긋한 사람들"이라며 "만약 핵무기를 가졌다면 사용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그들과 거래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불신을 드러냈다.
다만 그는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 등 미국 대표단이 이란과 대화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모두가 핵무기 보유 금지에 동의했는데도 이란은 언론에 나가 '그런 얘기 한 적 없다'고 한다"며 "그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 미군기지에 대규모 보복 준비
미군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감행하자 이란 군부는 즉각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은 8일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연안의 이란 남부 지역 곳곳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잇따라 들렸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 중앙의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에서는 혁명수비대(IRGC) 해군 총사령부가 위치한 군사시설이 공격받았다. 또 해협 동쪽 출구 인근의 시리크에서는 해안 미사일 기지가 집중 타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략 항구 차바하르와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부셰르에서도 폭발음이 보고됐다.
반다르아바스는 고속정·기뢰 부설선·지대함 미사일을 지휘하는 핵심 거점이며, 시리크는 해안 미사일 기지가 밀집한 지역이다. 차바하르는 경제·군사적 요충지로 혁명수비대 기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부셰르는 이란 유일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이란 매체들은 원자력 발전소에는 현재 피해가 없는 것으로 전했다.
이란 군부는 미군 공습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보복을 예고했다. 한 군사 소식통은 "미사일·드론 부대가 몇 분 내로 중동 내 미군 기지를 대규모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고, 군 관계자는 "이번 침략에 근거지 역할을 했거나 지원한 모든 미군 기지가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이란과 통화, 합의 간절히 원하는 듯…이란 공격에 20배로 대응"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의 추가 상선 공격 시 강경 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을 공격하는 장면으로 추정되는 이미지와 영상을 잇달아 올리고 "이는 어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이런 일(이란의 상선 공격)이 다시 발생한다면 (이란이 받게 될 공격은)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금 전 그들이(이란) 전화를 걸었는데 협상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이 협상을 원하면서도 상선을 공격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좀 제정신이 아니다"며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들은 약간 통제 불능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협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추가 공격에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방금 그들을 아주 강하게 공격했다"면서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때마다 우리는 20배로 되갚아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재국 파키스탄, 미·이란 자제 촉구…"종전 MOU 준수해야"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싸고 다시 무력 충돌을 벌이자, 종전 협상을 중재해온 파키스탄 정부가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며 종전 양해각서(MOU) 이행을 당부했다.
9일 로이터·EFE 통신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외무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모든 당사자가 자제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며 "지속적 협력과 대화, 외교 외에는 대안이 없다. 분쟁 재발은 어느 쪽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또 "이슬라마바드 종전 MOU에 따른 각자의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며 "이 합의는 상호 존중과 공동 번영을 위한 지속적 토대"라고 밝혔다.
앞서 미군은 7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상선을 공격하자 이란 남부 거점을 공습했다. 이에 이란은 쿠웨이트와 바레인 미군 기지를 겨냥해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며 반격했고, 미군은 다시 이란 남부 지역을 연쇄 폭격했다.
이로 인해 오는 11일 파키스탄에서 재개될 예정이던 미국·이란 종전 합의 후속 회담은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사우디 국영 알 아라비야 방송은 앞서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 이후 회담이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파키스탄은 지난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3월부터 중재국 역할을 자처했다. 4월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1차 종전 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2차 회담도 무산됐다. 이후 양측은 물밑 협상을 이어가다 지난달 14일 종전 MOU에 서명했으며,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등지에서 후속 회담을 이어왔다.
美·이란 '보복 악순환'…호르무즈 통제권 놓고 힘겨루기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상선 공격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양국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의 휴전 후 무력충돌은 번번이 호르무즈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불거졌다.
미국은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란은 자국 인근 항로를 지정하며 통행료 징수를 통해 통제권을 공식화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자국이 원하는 항로를 이용하지 않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반복하고 있고, 미국은 그때마다 이란의 군사자산을 공격하고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동 내 미군기지에 재보복을 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이란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충돌을 반복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에너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해협 정상화를 서두르고 있으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사회 압박의 마지막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외교협의회(ECFR) 엘리 게란마예 분석가는 "이란은 경제 제재 완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호르무즈라는 지렛대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며 "해협 운영 원칙이 MOU에 포함되지 않아 교착이 심화하고 전면전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이란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인 오는 12일 후속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무력 충돌로 협상이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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