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첫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우승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그러나 #19호차 GMR-001 하이퍼카가 라 사르트 서킷의 마지막 직선을 돌아 피니시 라인에 다가섰을 때 피트 월에 오른 팀원들의 표정은 우승을 만끽하는 것과도 같았다. 결과는 13위. 하지만 신생 팀의 첫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완주는 그 자체로 분명한 성과였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GMR-001 하이퍼카 2대를 투입했다. 한글 그래픽과 마그마 오렌지 컬러를 입은 #19호차는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긴 끝에 13위로 체커기를 받았다. 한국의 자동차 제조사가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도전해 완주한 첫 장면이었다.
르망 24시간은 단순한 장거리 레이스가 아니다. 1923년 시작된 이 대회는 ‘모나코 F1 그랑프리’, ‘인디애나폴리스 500’과 함께 세계 모터스포츠를 대표하는 무대로 꼽힌다. 길이 13.626km의 라 사르트 서킷은 일반 서킷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다. 긴 직선과 고속 코너, 시가지와 연결된 구간이 뒤섞이며 머신과 드라이버, 팀 운영 능력을 하루 동안 동시에 시험한다.
르망의 가혹함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한 랩의 약 70%를 풀 스로틀로 달리고, 드라이버는 한 바퀴마다 평균 78회 변속을 한다. 팀은 연료 사용량, 타이어 마모, 피트스톱, 전기·기계적 문제, 드라이버 피로를 모두 관리해야 한다.
드라이버 운용도 엄격하다. 르망 24시간에서 한 드라이버는 전체 레이스 동안 최대 14시간까지만 주행할 수 있고 어느 6시간 구간에서도 4시간을 넘겨 운전할 수 없다.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의 이른바 ‘데드존’은 피로와 낮아진 기온, 부분적인 비와 안개 가능성이 겹치는 가장 위험한 시간대로 꼽힌다.
제네시스의 첫 목표도 현실적이었다. 포디엄보다 먼저 GMR-001의 신뢰성을 확인하고 24시간을 끝까지 버티는 것이 우선이었다. 페라리, BMW, 토요타, 캐딜락 등 오랜 경험을 쌓은 제조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무대에서 신생 팀에게 완주는 가장 중요한 첫 과제였다.
가능성은 예선부터 나타났다. 6월 10일 예선에서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두 대는 모두 하이퍼폴에 진출했다. 폴루 샤탱이 몰았던 #19호차는 6그리드, 앙드레 로테러가 주행한 #17호차는 9그리드를 확보했다. 로테러는 “두 대 모두 톱10에서 출발한 것은 팀이 경험을 쌓아가는 초기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인상적인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결선은 6월 13일 오후 4시 맑은 날씨 속에 시작됐다. 두 대의 GMR-001은 초반부터 큰 흔들림 없이 레이스 리듬을 만들었다. 첫 6시간 동안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무리한 추월보다 전략 실행과 신뢰성 확인에 초점을 맞췄다. 해가 진 뒤에는 제네시스 고유의 투 라인 헤드램프가 어둠 속에서 GMR-001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첫 번째 큰 위기는 레이스 11시간째에 찾아왔다. 새벽 3시를 지나 데드존에 들어선 직후 LMP2 사고로 풀 코스 옐로가 발령됐고, 곧이어 샤탱이 주행하던 #19호차가 아르나주 코너 부근에서 동력을 잃고 멈춰 섰다. 드라이버는 무전 지시에 따라 전자 시스템을 직접 재시동해야 했다. 다행히 #19호차는 다시 살아났고 레이스에 복귀했다.
문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약 2시간 뒤 #19호차는 다시 멈췄고, 재시동 끝에 다시 움직였다. 일출을 30분가량 앞두고 피트에 들어온 뒤에도 긴장은 이어졌다. 점검을 마치고 출발하려는 순간 엔진이 다시 꺼졌다. 팀은 원인을 즉시 확인하지 못했지만 #19호차는 다시 시동을 걸고 코스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약 5분을 잃었고 순위는 12위에서 15위까지 내려갔다.
#17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레이스를 이어갔다. 중반까지 10위권 안팎에서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했고 두 대 모두 완주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졌다. 로테러는 GMR-001에 대해 “밸런스와 감각이 좋았고, 드라이버에게 자신감을 주는 머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르망은 끝까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종료까지 약 7시간 30분을 남긴 상황에서 #17호차를 몰던 제이미 오베르가 커브를 강하게 넘었고, 충격으로 오른쪽 앞 서스펜션이 손상됐다. 레이스 내내 안정적으로 달리던 #17호차는 결국 더 이상 경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리타이어했다.
이후 제네시스의 시선은 #19호차에 집중됐다. 세 차례 재시동과 순위 하락에도 #19호차는 여전히 트랙 위에 있었다. 다른 경쟁자들이 기계적 문제와 피트스톱 변수로 흔들리는 사이, #19호차는 완주권을 지켰다. 마지막 스틴트에서는 샤탱이 다시 스티어링 휠을 잡았고, 최종 순위는 13위로 굳어졌다.
피니시 순간,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피트월은 뜨겁게 반응했다. 팀원들은 휴대전화로 장면을 기록하며 #19호차의 통과를 지켜봤다. 순위표의 숫자는 13위였지만 첫 르망에서 24시간을 버텨낸 신생 팀에게 그 장면은 단순한 완주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로테러는 “르망은 늘 팀을 시험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시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라며 “모든 랩, 모든 도전, 모든 데이터가 팀을 배우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호차의 문제에 대해서도 “엔진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풀 코스 옐로 상황에서 전자 제어 시스템에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했지만 하드웨어나 엔진 내부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7호차 역시 엔진 문제는 전혀 없었다.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엔진이 지금까지 가장 긴 시간을 달렸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르망 데뷔는 완벽하지 않았다. #17호차는 리타이어했고, #19호차도 전기 계통 문제로 여러 차례 멈춰 섰다. 그러나 첫 24시간 도전에서 신뢰성, 대응 능력, 데이터 확보라는 핵심 목표를 일정 부분 달성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한국 자동차 제조사가 세계 내구레이스의 가장 높은 무대에서 직접 경쟁하고 피니시 라인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은 국내 모터스포츠 팬들에게도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됐다.
로테러는 “우리의 꿈은 당연히 우승이지만 첫해에는 겸손하게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신생 팀이라는 변명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진정한 성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운 미래에는 단순한 참가가 아니라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 되는 것이 분명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첫 르망은 생존으로 시작해 가능성으로 끝났다. 13위라는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24시간을 버텨낸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한국 모터스포츠가 세계 내구레이스의 중심 무대에 실제로 발을 디뎠다는 사실이다.
르망은 제네시스에게 혹독한 시험장이었고 #19호차 GMR-001의 완주는 그 시험을 통과한 첫 번째 증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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