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이틀 연속 5% 안팎 급락하며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표면적인 원인은 반도체 고점 논란과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지만, 증권가는 한국 증시만 유독 큰 폭으로 흔들리는 배경에는 시장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최근 반복되는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의 배경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따른 수급 왜곡과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지목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09.52포인트(5.35%) 내린 7246.79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7186.21까지 밀리며 7000선을 위협했고 오후 1시31분에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닥도 5.56% 하락한 785.00으로 마감하며 오후 1시33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전날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데 이어 하루 만에 다시 시장 안정장치가 작동하면서 투자심리는 더욱 얼어붙었다.
◆ 반도체 악재에 중동 리스크까지…그러나 한국만 낙폭 확대
이날 국내 증시는 미국 기술주 약세와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겹치며 장 초반부터 약세를 보였다. 간밤 미국 증시에서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4.65% 하락했고 AMD와 인텔,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종목도 큰 폭으로 내렸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재차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위험자산 회피 심리도 확산됐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6.25%, SK하이닉스가 5.68% 하락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다만 같은 악재에도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대 하락에 그쳤고 대만 가권지수는 상승 마감하는 등 아시아 주요 증시의 낙폭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이에 시장에서는 글로벌 악재만으로 한국 증시의 급격한 변동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는 반도체 업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이란 리스크가 수급 부담을 키우며 하락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 반복되는 사이드카…'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논란 재점화
최근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단기간 반복되는 극심한 변동성이다. 증권가는 그 배경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수급 변동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주 중심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발 수급 꼬임 현상이 심화하면서 반등 시에는 매도, 하락 시에는 투매가 반복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안타증권 이재원 연구원도 "아시아 증시 가운데 한국만 유독 급등락을 반복하는 배경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따른 수급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유안타증권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사이드카는 49회, 서킷브레이커는 8회 발동됐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 이후 2주도 채 되지 않아 사이드카 16회, 서킷브레이커 5회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에서는 레버리지 ETF의 특성상 기초자산 가격이 크게 움직일수록 운용사의 헤지 거래와 프로그램 매매가 반복되면서 상승과 하락 폭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외국인 매수에도 급락…변동성에 기관도 발길 돌려
이번 급락의 또 다른 특징은 외국인이 순매수로 전환했음에도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 집계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3311억원을 순매수하며 지난달 18일 이후 14거래일 만에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 반면 기관은 3377억원, 개인은 451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29.7원 내린 1498.5원을 기록하며 한 달여 만에 1500원 아래로 내려왔다. 외국인 순매수와 오는 10일 예정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 따른 환전 기대가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지수가 급락한 것은 단순한 투자주체별 매매보다 프로그램 매매와 파생상품, ETF 리밸런싱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안타증권은 변동성 확대 자체가 기관투자가의 신규 자금 유입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기관은 밸류에이션보다 변동성을 우선 관리하는 만큼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반복되는 시장에서는 저평가 매력이 있더라도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 밸류에이션은 금융위기 수준…"시장 신뢰 회복이 먼저"
전문가들은 현재 밸류에이션만 놓고 보면 과도한 공포 국면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한지영 연구원은 코스피 7280선 기준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6.3배까지 낮아져 역사적 저점 수준에 근접했다고 분석했다. 유안타증권 역시 이날 종가 기준 선행 PER이 약 6.2배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밸류에이션만으로 시장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향후 ▲외국인 수급의 지속 여부 ▲10일 SK하이닉스 ADR 상장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TSMC 6월 매출과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Capex) 계획 등이 반도체 업종과 국내 증시의 방향을 결정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반등 여부보다 한국 증시의 구조적인 변동성을 완화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복되는 급등락이 장기 투자자와 기관 자금의 시장 참여를 위축시키는 만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비롯한 시장 제도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점검과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폴리뉴스 권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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