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만난 작은 희망...연극 '돌고 돌고'가 비추는 청소년의 오늘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컬처N]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만난 작은 희망...연극 '돌고 돌고'가 비추는 청소년의 오늘

뉴스컬처 2026-07-08 16:05: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학교와 가정은 청소년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 가정 내 갈등, 입시 경쟁, 경제적 불안은 적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학교와 집을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닌 '벗어나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도 한다. 구로아트브릿지 선정작 연극 '돌고 돌고'는 바로 이 불편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갈 곳을 잃은 두 명의 고등학생이 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청소년의 현실을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비춘다.

연극 '돌고 돌고'. 사진=극단 파수꾼
연극 '돌고 돌고'. 사진=극단 파수꾼

은지와 가희는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지만 닮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학교도, 집도 편히 머물 수 없는 이들은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두 사람은 처음에는 낯선 사이지만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상대의 상처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공원은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휴식 공간이 아니라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임시 대피소다. 그곳은 안전하지도,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당장 학교와 집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 뿐이다.

극은 배가 고파 주문한 중국요리에서 새로운 방향을 맞는다. 배달을 온 중국집 직원은 두 학생을 훈계하려 하지만, 곧 자신 역시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장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진짜 꿈도 미뤄둔 채 생계를 위해 일하는 청년이다.

이 장면은 작품이 말하려는 핵심을 드러낸다. 어른과 청소년을 선명하게 나누지 않는다. 모두가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버티고 있으며, 누군가를 쉽게 가르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세대 차이보다 더 큰 공통점은 '살아남기 위해 견디는 삶'이다.

결국 세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현실에서 벗어나려 한다. 속도를 높이며 달리는 순간만큼은 자유를 얻은 듯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현실은 끝나지 않는다. 출발했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반복은 작품 제목인 '돌고 돌고'를 그대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반복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도 닮아 있다. 탈출을 꿈꾸지만 생계와 책임, 관계와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청소년도, 청년도, 어른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굴레를 경험한다.

연극 '돌고 돌고'. 사진=극단 파수꾼
연극 '돌고 돌고'. 사진=극단 파수꾼

하지만 작품은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은지와 가희, 그리고 배달부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버틸 힘을 얻는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가 가장 현실적인 희망으로 제시된다.

최근 공연계에서는 청소년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가 학교폭력이나 범죄, 자극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돌고 돌고'는 사건보다 일상을 바라본다.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버거운 하루를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 속 중국집 배달부의 존재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청소년과 성인 사이를 연결하는 인물이다. 사회는 흔히 어른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설정은 청소년 문제를 특정 세대만의 고민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교육, 노동, 계층 이동의 어려움까지 함께 비춰보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연출을 맡은 이은준은 오랜 기간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국립극단 연출부 연수단원을 거쳐 극단 골목길 상임연출로 활동했으며, 이후 극단 파수꾼을 창단해 대표를 맡고 있다. '속살', '세일즈맨의 죽음', '인형의 집', '정의의 사람들', '베이비 박스',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 '하얀역병'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무대 위에서 탐구해 왔다.

이은준의 연출은 거창한 장치보다 배우의 호흡과 인물의 감정을 중심에 둔다. 이번 작품 역시 공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활용하면서 인물들의 변화와 관계에 집중한다. 화려한 볼거리를 앞세우기보다 관객이 인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만든다.

'돌고 돌고' 포스터. 사진=극단 파수꾼.
'돌고 돌고' 포스터. 사진=극단 파수꾼.

오늘날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해지고, 사회적 고립은 늘어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지만,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가질 수 있다.

'돌고 돌고'가 말하는 것은 결국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도망쳐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럼에도 끝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함께 걷는 누군가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공원을 맴돌던 아이들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 작은 변화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이자 위로가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