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 = 조수빈 기자] 대우라는 이름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지금은 그룹도, '세계경영'의 구호도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대우건설(047040)이라는 사명에는 한국 기업이 해외 현장에서 길을 만들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낯선 시장을 먼저 두드렸고, 국내 건설사들이 망설이던 지역에서 현장을 열었다.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은 한때 한국 건설업의 도전 정신을 상징했다.
그 이름을 중흥그룹이 품은 지 4년이 지났다. 인수 초기 시장의 시선은 엇갈렸다. 지방 주택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중흥이 대형 건설사인 대우건설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대우라는 브랜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 역시 따라붙었다. 인수합병은 돈으로 할 수 있지만, 사명에 담긴 역사와 조직의 자부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일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의 최근 행보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읽힌다. 그 답은 대우라는 이름을 단순히 '감성'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가 가장 강했던 해외 개척 DNA를 지금의 '개발사업'으로 되살리는 데 있다.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주거개발사업은 이런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대우건설이 미국 부동산 개발사업에 다시 뛰어든 것은 약 20년 만이다. 회사는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부동산 개발사업 20건을 수행했고, 약 5400세대 규모 주택 개발과 뉴욕 맨해튼 트럼프 월드타워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후 장기간 공백기를 거쳤지만 2023년 뉴욕 현지 법인을 세우며 북미 시장 재진출 기반을 다시 마련했다. 팰리세이즈파크 사업은 그 공백을 끝내는 첫 단추다.
사업지 선택도 전략적이다. 팰리세이즈파크는 뉴저지 버겐카운티 내 대표적인 한인 밀집 지역으로 꼽히며, 뉴욕 맨해튼 중심업무지구와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미국 시장은 인허가와 현지 시공, 하도급 관리 부담이 큰 곳이다. 대우건설이 20년 만의 복귀작으로 익숙한 수요 기반과 네트워크를 기대할 수 있는 지역을 고른 것은 무리한 확장보다 성공 가능성을 우선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앞선 베트남 스타레이크시티는 대우건설의 개발 DNA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노이에서 추진된 이 사업은 단순 시공을 넘어 도시를 기획하고 조성하는 한국형 신도시 수출 모델로 평가받았다. 대우건설은 스타레이크시티를 기반으로 베트남에서 주거, 상업, 업무시설을 아우르는 장기 개발사업 경험을 쌓았고,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사업으로 확장 가능성까지 모색하고 있다. 해외시장에 한 번 진입한 뒤 단발성 공사가 아니라 도시와 산업 기반을 함께 키우는 방식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정원주 체제의 해외 행보를 설명하는 중요한 축이다. 대우건설은 현지에서 미네랄 비료 플랜트 사업을 본격화하며 중앙아시아 신시장 개척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 회장은 여러 차례 현지를 방문하며 정부와 발주처, 현지 관계자와 접점을 넓혔다. 이 과정은 단순 영업 차원의 출장이 아니라 대우건설이 다시 해외 전략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최고경영진 차원의 네트워크 구축으로 해석된다.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에는 원래 이런 색깔이 있었다. 옛 대우그룹 시절 리비아, 나이지리아, 수단, 베트남 등은 당시로서는 리스크가 큰 시장이었지만 대우건설은 현장을 통해 길을 만들었다. ‘세계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고, 불확실한 시장을 먼저 두드렸던 경험은 대우건설의 중요한 기업 자산으로 남아 있다.
정원주 회장 체제의 특징은 이 유산을 과거의 추억으로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회장이 다시 꺼낸 카드는 그 이름이 가진 기억을 오늘의 사업모델로 바꾸는 일이다. 과거 대우의 세계경영이 ‘개척’이었다면, 지금의 대우건설은 그 개척 정신 위에 개발사업의 수익성과 확장성을 더하고 있다.
대우를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우답게 움직이게 하는 것. 정원주 체제의 대우건설이 보여주는 부활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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