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으로 돌아온 김민하…'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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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으로 돌아온 김민하…'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BBC News 코리아 2026-07-08 11:46:05 신고

3줄요약

탈북민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대개 국경을 넘는 긴박한 탈출 과정이나 한국에 도착하는 극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한국과 덴마크가 공동제작한 영화 '하나 코리아'는 다르다.

탈북 과정보다 한국에서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지에 시선을 맞춘다. 탈출보다 '정착'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8일 개봉하는 이 영화에서 배우 김민하는 20대를 갓 넘긴 양강도 출신 탈북 여성 혜선을 연기했다.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를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낯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인물로 분했다.

탈북 후 벌어지는 일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마치 누군가의 편지와 일기를 읽는 기분이었어요."

지난달 26일 용산 언론시사회에 앞서 BBC와 만난 김민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을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며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혜선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양강도 사투리를 익혀야 했다. 언어 코치 세 명과 촬영 전부터 연습했고, 촬영장에서도 녹음한 음성을 들으며 촬영 직전까지 억양을 다듬었다. 또 실제 탈북민들의 인터뷰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극중 인물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는 "혜선이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갈수록 사투리도 조금씩 변해야 했다"며 "목소리 톤과 말투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과정을 층층이 쌓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혜선은 하나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강한 양강도 억양으로 말하지만, 한국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사투리는 조금씩 옅어지고 말투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영화 속 혜선은 큰 오열이나 극적인 몸짓 대신 미세한 표정 변화와 눈빛으로 슬픔과 죄책감, 불안을 표현한다.

김민하는 가장 어려웠던 장면으로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듣는 순간을 꼽으며 "그 감정을 너무 강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감정을 안으로 눌러 담고 계속 마음속에 품은 채 조금씩 표현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혜선도 그 사실을 바로 실감하지 못했을 것 같았거든요."

절제된 감정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며 작품이 선택한 담담한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잔잔하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는 방식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프레드릭 쇨베르 감독은 BBC에 "그들이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왔는지가 더 궁금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 과정을 다룬 영화는 이미 충분히 많다며, 자신은 한국에 도착한 이후 시작되는 또 다른 삶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저는 탈출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유를 얻은 뒤 어떤 삶이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 자유의 대가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의 '낯선' 얼굴

그렇다면 덴마크 출신 감독은 왜 이토록 한국적인 이야기, 그것도 탈북민의 서울 정착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만들게 된 걸까.

쇨베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은 16년 전 서울의 한 식당이었다. 그는 간담회 자리에서 2010년 서울을 처음 찾았을 당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들과 분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분들이 굉장히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느꼈어요. 그중 한 분이 '우리의 소원은 하나'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제 마음속에 작은 씨앗처럼 남았습니다."

이후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시설, 하나원을 알게 된 그는 한국 제작진과 함께 약 30명의 탈북민을 인터뷰하며 영화를 준비했다. 특히 주인공을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으로 설정한 것도 실제 취재에서 비롯됐다.

쇨베르 감독은 "한국에 오는 탈북민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며 "2019년 만난 한 젊은 탈북 여성이 인터뷰를 마친 뒤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니 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했는데 그 순간이 이 영화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감독에게는 서울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혜선처럼 자신 역시 한국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그는, 서울 곳곳을 직접 걸으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들으며 이방인이 마주한 도시의 질감을 작품에 녹여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 감독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대상이었다. 이러한 이방인의 시선은 역설적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보편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의 시선은 영화가 서울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혜선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국경도, 서울의 화려한 거리도 아닌 하나원이다.

혜선은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고, 은행 업무를 익히고, 새로운 사회의 규칙을 하나씩 배워간다. 영화는 이처럼 탈북 과정보다 주인공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긴 시간을 할애한다.

공동 각본을 맡은 샤론 최(최성재) 작가는 이와 관련해 기자간담회에서 "탈북민의 이야기가 자칫 스펙터클하게 소비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며 "관객들이 한 사람의 삶과 감정에 더 깊이 공감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많은 분들이 한국에 온 뒤 첫 5년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 누구와도 쉽게 나눌 수 없는 외로움을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 되길'

혜선이 마주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가혹하다.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높은 송금 수수료를 감당하고, 생계를 위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직장에서는 성추행을 당하고, 말투 때문에 조선족이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과장하거나 감정을 밀어붙이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한 사람이 마주하는 현실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고단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영화는 희망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나원에서 만난 숙희와 룸메이트 보미는 혜선이 한국 사회를 버텨내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플래시 포워드' 섹션에 초청됐으며, 관객 투표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어 관객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이 영화가 탈북민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관객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자유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죄책감, 수많은 장애물을 함께 안고 가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김민하 역시 영화가 탈북민이라는 특정한 정체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길 바라고 있다.

"혜선을 북한에서 탈출한 여성이나 탈북민으로 대표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끝으로 이 영화가 낯선 이들을 향한 편견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외국인이나 이민자, 혹은 새로운 곳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속에도 빛과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가길 바랍니다."

'하나 코리아'는 12세 이상 관람가 작품이다. 손탁픽쳐스가 제작했으며, 시소픽쳐스가 제공하고 트리플픽쳐스와 스튜디오 초이스가 공동 배급한다.

영상: 최유진, 이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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