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왕과 사는 풍경> 은 16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떠올리며 출발했다. 조선 왕릉은 우리 일상생활권에 있지만, 막상 선뜻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왕릉을 낯선 유적으로만 두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다시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주] 왕과>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경기 고양시 서삼릉 깊숙한 곳에 효릉이 있다. 조선 제12대 국왕 인종(仁宗·1515년 3월 20일 ~ 1545년 8월 17일)과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1514년 10월 28일 ~ 1578년 1월 16일)가 한 곡장 안에서 나란히 잠든 쌍릉이다. 앞에서 바라볼 때 서쪽 봉분은 왕, 동쪽 봉토는 왕비의 자리다. 제12대 국왕의 재위는 윤달(음력달)까지 넣어 9개월에 불과했다. 배우자는 남편을 잃은 뒤 32년을 더 살았다. 두 봉분을 묶은 난간석은 짧았던 임금 생애와 길게 늘어진 대비 세월을 한 울타리 안에 담아낸다.
효릉은 오랜 기간 시민 발길이 닿기 어려운 왕릉이었다. 젖소개량사업장에 둘러싸인 탓에 공개 관람이 제한됐다. 2023년 9월 해설 예약 관람이 시작되며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마지막 출입 제한 구역도 시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늦게 열린 만큼 낯선 유적이라는 거리감보다 갓 공개된 기억의 공간 성격이 짙다.
◇왕으로 산 시간 9개월… 자녀 없는 왕비
인종은 1515년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원자를 낳은 지 엿새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세자는 친할머니 정현왕후 보살핌 아래 자랐고, 외가 윤씨 세력은 훗날 대윤의 정치적 기반이 됐다. 1520년 왕세자로 책봉된 뒤 성균관에 입학해 군왕 교육을 받았다. 사관은 어릴 때부터 재지가 뛰어나고 욕심이 적어 학문에 부지런했다고 적었다. 당대 신료들은 그를 유교적 이상에 가까운 후계자로 보았다. 화려한 옷차림을 삼가고 검약을 중시했다는 일화도 있다. 중종이 1544년 숨을 거두자 인종은 창경궁 명정전에서 즉위했다. 새 임금은 기묘사화로 폐지된 현량과를 되살리고 조광조 신원에 나섰다. 사림 정치 상처를 복구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국상 중 과도한 애도와 병약한 몸은 권력의 시간을 갉아먹었다. 고열과 혼절 끝에 왕은 경원대군에게 보위를 넘기겠다는 뜻을 남겼고, 1545년 경복궁 청연루 소침에서 31세 나이로 승하했다.
인성왕후 박씨는 1514년 반남 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1524년 세자빈이 됐고, 인종 즉위 뒤 왕비가 됐다. 왕실 혼인은 열한 살 소녀를 궁궐 의례 안으로 데려왔다. 남편과 사이에서 후사는 없었다. 1545년 인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비의 삶은 대비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명종 대에는 공의왕대비로 불렸다. 정치적 힘의 중앙에 있지는 않았으나 을사사화의 후유증을 끝까지 기억했다. 선조 대 말년에 이르러 윤임 등 피해자의 관작 회복을 호소했다. 병세가 깊어진 뒤에도 죄명 신원을 마음의 짐처럼 붙들었다. 인성왕후는 1577년 경복궁 교태전에서 64세로 생을 마쳤다. 1578년 인종 곁에 부장되면서 효릉은 쌍릉이 됐다. 왕은 청년으로 죽었고 왕비는 긴 세월을 홀로 견뎠다. 왕릉과 왕후릉의 봉분 규모가 비슷해 보이는 까닭도 이 서사에 무게를 보탠다. 부부의 무덤은 나란하지만 두 생애의 길이는 전혀 다르다.
◇홀로 남은 서삼릉… 서로 다른 예법
본래 인종은 부모 능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545년 효릉은 당시 고양에 있던 중종의 정릉 인근에 조성됐다. 효성의 유언은 장지를 정한 핵심 이유였다. 하지만 1562년 중종 정릉을 서울 삼성동으로 옮기며 부왕 곁을 향한 바람은 땅 위에서 지속되지 못했다. 왕릉만 남은 서삼릉 권역에는 희릉, 예릉, 후궁 묘 등이 여러 차례 이장됐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지형이 크게 변했다. 본래 효릉 초입에는 연지와 재실, 금천교가 있었다. 홍살문으로 향하는 길은 물길을 따라 완만히 굽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일부 흔적과 터만 확인된다. 연못은 습지를 머금은 채 남아 있고, 금천교 영역은 변형을 겪었다. 왕릉의 첫인상은 무덤보다 길에서 시작된다. 사라진 초입은 제례 행렬이 속세에서 성역으로 들어가던 감각을 잃게 한 부분이다.
효릉은 왕과 왕후를 좌우에 둔 쌍릉이다. 한 곡장 안에 두 봉분을 세우고 난간석으로 이었다. 인종 능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지만 인성왕후 능은 난간석만 갖췄다. 왕과 왕비의 위계가 돌의 수량과 형식에서 갈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왕후릉 봉분의 체감 규모가 크다는 사실이다. 인종 봉분 지름은 약 9.8m, 인성왕후는 약 11m로 정리된다. 병풍석 유무는 구분을 세우지만 규모만 놓고 보면 배우자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쌍릉이라는 제도 안에서 권위와 애도, 예법과 감정이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
인종 봉분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졌다. 공복 차림에 관을 쓰고 홀을 든 문신형이다. 구름무늬는 면석을 채우고, 인석에는 모란과 국화 등 꽃문양이 새겨졌다. 난간석주는 연봉형 머리와 연꽃 장식, 연주문을 갖췄다. 돌은 장식이면서 방위 체계이자 사후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언어다. 정자각에서 봉분까지 뻗은 제향 영역도 엄격하다. 홍살문 앞 석단에서 혼백을 부르고, 향로와 어로가 정자각을 향한다. 향로는 혼령의 길이고 어로는 제관의 길이다. 박석길의 높낮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위한 예법을 발밑에 새긴다. 정자각 가운데 문은 혼백을 위한 통로이며 제관은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나온다.
◇소박한 석인… 조선 중기 조각의 고요
효릉 석물은 선릉과 희릉, 태릉, 정릉으로 이어지는 16세기 초 왕릉 조각의 변화를 간직한다. 석인상 규모는 선릉이나 희릉보다 작고, 과장도 줄었다. 문석인의 옷자락은 신체 굴곡을 따라 자연스레 내려오며, 얼굴에는 가는 눈매와 얇게 새긴 수염이 남았다. 무석인은 갑주와 무구 표현에서 희릉의 영향을 떠올리게 한다. 동쪽 무인은 어깨가 살짝 돌아간 자세를 보인다. 의례용 석물이 늘 완벽한 정면성만 택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좌에 당초문 계열 문양이 새겨진 점도 드물다. 조각가는 무덤을 지키는 돌사람에게 관념과 현실 사이의 미세한 떨림을 부여했다.
장명등은 효릉 조형의 또 다른 핵심이다. 선릉과 희릉 계열 비례를 잇고, 목조 건물의 공포를 돌로 옮기려 한 흔적이 남아 있다. 화창과 받침, 문양은 어둠을 밝히는 등이라는 기능보다 왕릉 양식의 계승 관계를 더 많이 말한다. 훗날 효종 영릉 천릉 때 효릉 석물 체제가 기준으로 활용됐다는 사실은 이 무덤의 조각사적 위치를 넓힌다. 효릉은 조성 과정에서 여러 문제도 겪었다. 인성왕후 능을 마련한 뒤 정자각 내부가 꺼지고 방사에 빗물이 샌 기록이 있다. 봉분과 병풍석 보수도 있었다. 후대에는 화재, 곡장 붕괴, 정자각 중건, 홍살문 교체가 계속됐다.
◇닫힌 공간에서 생활권 유산으로
효릉은 젖소 목장과 연구시설 풍경 속에 고립된 역사를 안고 있다. 왕릉 주변에는 태실과 원·묘가 있고, 골프장과 교육시설도 가깝다. 조선왕릉의 성역성이 근현대 토지 이용과 충돌한 현장이다. 다만 효릉을 훼손의 기록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늦게 열린 길은 유산을 새로 마주할 기회를 준다. 시민은 이제 예약과 안내를 거쳐 한때 닫혔던 왕릉 안쪽을 걸을 수 있다. 오래 제한된 장소였기에 숲은 다른 능역보다 덜 익숙한 감촉을 남겼고, 효릉의 고요는 짧은 왕권의 비극과 어울린다. 방문자는 인종의 9개월만 기억하고 돌아서기 쉽다. 효릉에는 왕보다 오래 산 왕비, 부왕 곁을 향한 유언, 옮겨진 정릉, 지워진 연지, 부실한 공사와 보수 기록, 조선 중기 석조 미감이 차곡차곡 들어 있다. 짧은 재위는 입구일 뿐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청년 군주의 생과 왕비의 긴 침묵, 사라진 제례길, 닫혔다 열린 현대사가 겹겹이 드러난다.
효릉은 고양의 도로와 목장, 숲 사이에 있는 생활권 유산이다. 역사 지식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홍살문 앞에서 발걸음을 늦추고, 두 봉분 사이 난간석을 바라보고, 정자각 뒤 경사를 올려다보는 순간 조선의 시간은 현재의 산책길 안으로 들어온다. 왕은 31세에 세상을 떴고, 왕비는 64세까지 살았다. 봉분 둘은 나란하지만 인생의 길이는 달랐다. 효릉의 잔디는 그 차이를 덮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언덕과 돌사람, 오래 닫혔던 문 너머에서 한 왕조가 남긴 애도와 미완의 정치, 침묵의 시간을 조용히 드러낸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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