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로 사연댐 저수량 늘면 하천변 암각화 침수, 과거 대책 마련 시도 무위로
댐 수문 설치하면 저수위 유지 기대…줄어든 저수량만큼 대체 수원 확보가 관건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명실상부 글로벌 문화유산 반열에 오른 반구천의 암각화에는 실상 치명적 아킬레스건이 있다.
큰비가 올 때마다 울산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옛 명칭 반구천) 둔치 절벽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가 불어난 하천물에 잠기고, 그로 인해 훼손이 가속하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1971년 발견 이후 숱한 노력에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문화재 수몰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는 50년이 훌쩍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하천 하류에 있는 댐 수위를 낮춰 상류부 암각화 침수를 막는 사업이 현재 진행 중이어서 그 효과에 기대가 모인다.
다만 울산 입장에서는 줄어든 댐 저수량만큼 대체 식수원을 확보해야 하는 중대 과제를 안게 됐다.
◇ 댐 만들었는데 상류서 암각화 발견…큰비 오면 수몰 신세
반구대 암각화 침수 문제는 암각화를 끼고 흐르는 대곡천 하류의 사연댐 영향에서 비롯된다.
대곡천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 25일 당시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다.
그런데 그보다 6년 앞선 1965년 12월, 대곡천을 따라 4.5㎞ 하류 지점에 생활용수 공급 목적의 사연댐이 건설된 것이 암각화에 악재가 됐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댐이어서, 많은 비가 내려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상류의 암각화까지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댐 만수위 표고는 해발 60m인데, 암각화는 53∼57m 사이에 있다.
즉 댐 수위가 53m만 돼도 암각화 부분 침수가 시작되고, 57m에 이르면 완전히 물에 잠긴다.
세계적 문화유산을 보존하기는커녕 침수와 노출 반복에 따른 훼손을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 '물에서 암각화 건지자' 갖은 노력 실패…수위 조절로 연명
1995년 6월 국보 지정을 계기로 반구대 암각화 침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물론 당시에도 사연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는 방안이 가장 쉬우면서 근본적 대책으로 꼽혔지만, 이 댐이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대체 상수원 없이 무작정 댐 수위를 낮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수위 조절을 제외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됐는데, 2003년 암각화 주변에 차수벽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다.
2009∼2017년에는 암각화 전방에 생태 제방을 쌓아 침수를 항구적으로 방지하는 방안, 터널 형태로 대곡천 물길을 변경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논의됐다.
그러나 이들 방안 모두 '주변 역사문화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대에 부닥쳐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됐다.
가장 구체적으로 추진됐던 방안은 카이네틱(임시 가변형 물막이) 설치다.
이 시설은 수위에 따라 높이 조절이 가능한 댐으로, 대체 수원을 확보할 때까지 암각화 침수를 막아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댐을 축소해 만든 모형실험에서 연결부 누수가 발생하는 등 수밀성이 떨어진다는 결론과 함께 실패로 결론 났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2014년 8월부터 취수탑을 활용해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댐 수위를 낮게 유지한 것이 그나마 효과를 보고 있다.
암각화 침수 일수를 보면, 2005∼2013년 9년간 한 해 평균 151일에 달했다. 연간 5개월은 물에 잠긴 상태였다는 뜻이다.
댐 수위 조절을 적용한 2014∼2025년 12년 동안에는 연평균 39일로, 112일이나 감소하는 성과가 있었다.
◇ 저수위 유지 위해 댐 수문 설치…줄어든 식수 확보는 과제
다만 여전히 암각화가 매년 1개월 넘는 시간을 수면 아래에서 보내는 셈이어서, 세계유산 관리에 면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나마 댐에 수문을 설치하는 사업이 진행 중인 점은 다행스럽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809억원을 들여 2030년까지 사연댐에 너비 15m, 높이 7.3m 크기의 수문 3개와 취수탑을 신설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큰비가 와도 수문 방류를 통해 댐 수위를 암각화보다 낮은 52m 수준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울산 시민 생활 측면에서 보면 총저수용량이 현재 2천500만㎥에서 1천200만㎥ 수준으로 절반 이상 줄어, 생활용수 배분량이 하루 4만9천가량 감소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새롭게 생긴다.
대체 수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인 셈이다.
정부가 2021년 발표한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에 '경북 청도 운문댐 물을 활용해 암각화 보호를 위한 물을 울산에 공급한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지만, 이후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현재 이 계획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내년 8월 완료를 목표로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사업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현재 진행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울산의 대체 수원 확보 방향이 결정될 전망이다.
신경필 울산시 맑은물정책과장은 8일 "운문댐 물을 활용하는 대원칙을 토대로 세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세계유산 보존과 동시에 맑은 물을 마실 시민 권리를 보장하도록 정부, 관련 지자체를 상대로 꾸준히 설득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hkm@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