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파산은 결말이지 원인이 아니다. 홈플러스에 남은 시간이 2주로 줄어드는 동안, 질문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의 겨울에 철강왕의 사위가 된 한 금융인, 그가 세운 48조원의 자본, 그리고 그 자본이 거쳐 간 유통기업마다 반복된 하나의 각본. 일본에서는 원금의 네 배를 벌어준 손이 왜 한국의 마트와 치킨집 앞에서는 '약탈'로 불리게 됐는가. 정치가 밀어 올린 자본에게 정치가 다시 책임을 묻는 지금, 30만명의 생계가 그 대답을 기다린다. 각본이 쓰인 자리에서 다음 무대까지, 그 경로를 따라가 본다.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지난 3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2주 안에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해 즉시항고하지 못하면 30년 역사의 대형마트는 파산 수순을 밟는다.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은 마지막까지 자금 부담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 직영과 협력업체, 납품 농가까지 합치면 최대 10만명, 노동계 추산으로는 입점업체와 그 가족까지 30만명의 생계가 이 2주에 걸려 있다.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홈플러스는 왜 여기까지 왔는가. 그리고 이것은 한 기업의 실패인가, 아니면 하나의 자본이 20년간 되풀이해 온 각본의 필연적 결말인가. 답을 찾으려면 2015년의 인수 계약서가 아니라, 한 청년이 철강왕의 사위가 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버드의 청년, 철강왕의 사위가 되다
MBK파트너스 창업자 김병주 회장은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10대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포드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골드만삭스에서 금융 경력을 시작한 뒤 하버드대 MBA를 마쳤다.
이후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유학 중이던 박경아씨를 만난다. 포항제철을 세운 '철강왕' 고(故)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넷째 딸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와 결혼했다 2년 만에 헤어진 뒤였다.
이 결혼으로 무명에 가깝던 한국계 금융인은 단숨에 정·재계 최상층 혼맥의 일원이 됐다. 박태준가(家)는 맏사위가 삼정KPMG를 일군 윤영각 회장이고, 장남 박성빈씨가 삼표그룹 총수의 사위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동서지간을 이루는 집안이다.
혼맥의 힘을 계량할 방법은 없다. 다만 이후의 시간표는 공교롭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살로먼스미스바니로 옮겨 있던 김 회장은 한국 정부의 40억달러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작업에 참여했다.
같은 시기 장인 박태준은 DJP연합의 한 축으로 자민련 총재에 올라 김대중 정부 출범을 뒷받침했고, 2000년에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국가 부도의 벼랑 끝에서 장인은 정치의 정점에, 사위는 국가신용 회복 실무의 한복판에 나란히 서 있었던 셈이다.
장인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어른거린 장면은 따로 있다. 1999년 칼라일그룹 한국대표로 옮긴 김 회장의 첫 대형 거래, 2000년 한미은행 인수다. 당시 은행법상 사모펀드는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었지만 칼라일은 JP모건을 앞세운 컨소시엄으로 규제를 우회해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얻어냈다.
김 회장은 그해 홍콩 매체 파이낸스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 경제의 트로이카 3명 모두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지목한 세 사람은 강봉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그리고 자신의 장인인 박태준 당시 국무총리였다.
박 전 총리가 칼라일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00년 6월 제주에서 열린 칼라일 투자자 회의에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과 함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인터뷰는 2005년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쟁점이 됐으나, 칼라일은 이미 한미은행 지분을 씨티그룹에 넘겨 7000억원대 차익을 실현한 뒤였다.
사모펀드는 철저히 인적 네트워크로 굴러가는 산업이다. 장인의 후광이 사위의 도약대가 됐다는 시선이 업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5년, 그는 자신의 영문 이름 머리글자를 딴 MBK파트너스를 세워 독립했다. 나비의 날갯짓은 그렇게 정치의 계보에서 시작됐다.
40조 제국, 성공의 방정식
20년이 지난 지금 MBK는 운용자산 약 325억달러, 우리 돈 48조원을 굴리는 국내 최대이자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홈플러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에도 북미 · 중동 · 유럽의 공적 연기금이 대거 참여한 약 8조원 규모의 6호 바이아웃 펀드를 결성했을 만큼 해외 큰손들의 신뢰는 여전하다.
여기서 하나 짚어둘 것이 있다. MBK의 주무기인 차입매수(LBO), 즉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과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인수자금 대부분을 빌려 사들이는 방식이나, 점포를 팔고 다시 빌려 쓰는 '매각 후 재임차(세일앤리스백)' 자체가 악은 아니라는 점이다.
LBO는 글로벌 사모펀드의 표준 기법이고, 세일앤리스백 역시 자산을 유동화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중립적 도구다. 실제 MBK의 이력서에는 성공의 장이 여럿이다. ING생명(현 신한라이프)을 16억달러에 인수해 기업가치를 3조원대로 키웠고, 일본 골프장 운영사 아코디아에는 9000억원가량을 투입해 4조원 넘는 값에 매각하며 원금의 4배를 회수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투자는 내부수익률 37%를 기록했다. 키워서 판, 모두가 박수친 거래들이다.
코웨이도 장부상으로는 성공이었다. 2012년 웅진그룹의 위기 국면에서 약 1조940억원에 사들여 6년 뒤 웅진에 1조6849억원에 되팔았으니 기업가치를 두 배 가까이 불린 셈이다. 문제는 에필로그다.
창업주 웅진은 인수자금 2조원 중 80%를 차입에 기댔다가 계열사 부실과 맞물려 불과 3개월 만에 코웨이를 도로 내놓아야 했고, 2019년 12월 넷마블이 1조7400억원에 사들이면서 코웨이는 8년 새 주인이 세 번 바뀌는 유랑을 끝냈다. 그 사이 2016년 얼음정수기 니켈 검출 사태가 회사 이름에 얼룩으로 남았다. 되사려던 창업주마저 빚에 무너진 이 결말은, 차입 인수라는 칼의 양날을 정확히 보여준다.
같은 칼, 다른 용법… 한국 유통 잔혹사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의 유통 · 소비재 포트폴리오에서는 잔혹사가 반복됐을까. 칼이 아니라 칼의 용법이 문제였다. 해외 성공 사례에서 차입과 유동화가 기업을 키우는 지렛대로 쓰였다면, 한국 유통기업들에서는 인수 빚을 회사에 떠넘기고 자산을 팔아 갚게 하는 회수의 통로로 작동했다.
한국신용평가는 홈플러스 부실의 주요 원인으로 MBK의 투자금 회수 전략을 지목했다. 인수금융 4조3000억원과 상환전환우선주 7000억원의 부담을 홈플러스가 사실상 떠안으면서 과중한 금융비용이 투자 여력을 잠식했고, 이것이 경쟁력 약화와 임차료 부담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가 그 원형이다. 2013년 약 9970억원에 인수됐는데 이 가운데 4000억원가량이 인수금융이었고, 합병을 거쳐 그 빚은 고스란히 네파의 장부로 넘어갔다. 매년 200억~300억원대 이자를 감당해 온 네파의 매출은 4732억원에서 2973억원대로 쪼그라들었고 영업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케이블TV 씨앤앰(현 딜라이브)은 2008년 인수 후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2016년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갔으며, 철강구조물 강소기업 영화엔지니어링은 인수 후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모던하우스에서는 2021년 3400억원 규모의 리캡(차입 재조정)을 단행해 1000억원을 중간 회수했다. 기업이 크기 전에 배당부터 챙기는 순서였다.
bhc는 이 각본의 가맹점 버전이다. MBK가 최대주주로 있는 기간 bhc는 치킨업계에서 이례적인 30%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가맹점 한 곳의 평균 연매출은 2021년 6억3000만원대에서 5억3000만원 수준으로 약 1억원 줄었다.
공시된 배당 내역을 종합하면 2020년 이후 5년간 배당금은 약 5303억원으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의 78%에 달하는 규모다. 해바라기유 공급가를 한 번에 61% 올려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도 받았다.
홈플러스는 이 각본의 최대 규모 상연이자, 처음으로 막이 내려지지 않은 무대다. MBK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사들였다. 아시아 · 태평양 최대 바이아웃이었고, 인수금융만 4조3000억원이었다.
이후의 행보는 '키워서 판다'는 사모펀드의 교과서와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승원 의원(정무위 · 더불어민주당 · 경기 수원갑)이 공개한 2015년 인수금융 투자설명서에는 연매출 5000억원 이상 우량 점포 23개, 약 1조5000억원어치를 세일앤리스백으로 매각하고 그 순현금의 절반을 강제 배당으로 돌려 인수 빚 조기 상환에 쓰는 구조가 인수 단계부터 설계돼 있었다.
이 설계는 현실이 됐다.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유통 환경에 대한 투자는 뒷전인 채 안산점 등 20여개 우량 점포가 폐점되거나 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처분됐고, 그렇게 확보한 현금은 온전히 재투자로 쓰이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회사의 돈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인수 빚으로 흘러갔고, 직원은 2015년 2만6400명에서 2만명으로 줄었다. 홈플러스에 약 6121억원을 투자한 국민연금은 미지급 이자를 포함해 9000억원 안팎의 손실 위기에 놓였다.
명분은 언제나 '기업가치 제고'였다. 그러나 실질은 자산 유동화와 조기 회수에 가까웠다. 지난해 3월 회생절차 신청 직전에는 신용등급 하락 국면에서 1000억원대 단기채권이 발행됐고, 검찰은 지난 1월 김 회장 등 4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구속할 정도의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고, MBK 측은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홈플러스 관련 펀드에서 지난 10년간 받은 운영보수는 모두 합쳐 150억원을 넘지 않으며 '벌처펀드'가 아니라는 것이 MBK의 항변이기도 하다. 유무죄는 법정이 가릴 몫이다. 다만 배당 장부와 무관하게, 인수 빚을 회사에 떠넘기고 자산을 팔아 갚게 하는 구조 자체가 회사의 체력을 소진시켰다는 점은 이미 시장이 내린 평가다.
'약탈', 국회의 공식 언어가 되다
'약탈'은 본래 마트 노동자들의 집회 구호이자 시민단체 성명서의 언어였다. 그 단어가 여의도의 회의록에 오르는 과정은 김 회장이 처음 증인석에 앉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본격화됐다.
이강일 의원(정무위·더불어민주당·충북 청주상당)은 홈플러스 사태가 "무리한 차입과 인수, 투자 미이행, 그리고 경영전략 부재가 누적돼서 발생했다"고 규정했고, 김남근 의원(정무위·더불어민주당 · 서울 성북을)은 매각 절차를 두고 "사실상 기업청산을 염두에 둔 '먹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김 회장은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과가 각본을 멈추지는 못했다. 국감 뒤에도 대규모 폐점과 임금 체불이 이어지자 추궁의 무게중심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로 옮겨 갔다. 회생계획안이 제출된 지난해 말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진욱 의원(산자위·더불어민주당·전남광주동구남구갑)은 "폐점은 곧 홈플러스의 지속가능성을 해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고, 민병덕 을지로위원장(정무위·더불어민주당 · 안양동안갑)은 "과거 현대건설, SK 등 위기 때 오너들은 사재를 출연해 책임을 졌다"며 실질적 자금 출연을 요구했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을지로위원회와 당 'MBK홈플러스사태해결 TF'는 금융감독원과 대검찰청을 잇달아 찾아 "홈플러스를 파국으로 몰고 간 MBK의 약탈적 금융기법"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촉구했다. 집회의 구호였던 단어는 그렇게 국회의 공식 언어가 됐다.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오너의 사재 출연'이라는 요구는 사모펀드 앞에서 번번이 공회전했다. 재벌 총수와 달리 유한책임 구조 뒤에 선 사모펀드 수장이 사재를 실제로 내놓은 전례는 찾기 어렵고, 김 회장 자신이 그 첫 시험대였다.
지난해 3월 사재 출연을 약속했고 9월에는 장래 운영수입을 재원으로 최대 2000억원을 무상 증여하겠다고까지 했지만, 국정감사에서 이행을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무상 증여 약속에 대해서는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 MBK의 입장이다. 회생 막판에 나온 것은 현금이 아니라 자택 담보와 연대보증이었다.
공교롭게도 을지로위원회가 소환한 '오너의 사재 출연'이라는 책임의 계보는 김 회장의 처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철을 세운 박태준의 사위가 만든 자본은, 장인 세대의 무한책임 문화 대신 유한책임이라는 방패 뒤에 서 있다. 정치가 낳은 자본이 정치의 추궁 앞에 다시 선 이 장면이야말로, 홈플러스 사태의 가장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국적의 셈법도 닮았다. 김 회장은 미국 국적자로, 검찰은 지난해 5월에야 그에 대해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낳은 쿠팡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의장 역시 미국 국적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을 비켜갔고, 해외 체류를 들어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거듭 출석하지 않아 국회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국회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성장하고 한국인의 얼굴로 시장의 신뢰를 얻되, 책임을 물어야 할 순간에는 국경 밖으로 물러서는 자본. 홈플러스와 쿠팡은 업태도 처지도 다르지만, '이익의 국적'과 '책임의 국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은 질문을 남긴다.
제재의 시계도 돌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회생 폐지 결정 전날인 지난 2일, 사모펀드 운용사(GP)로는 사상 처음으로 직무정지를 포함한 중징계안을 유지하며 심의를 종결했다. 금융위원회 의결 절차만 남겨둔 상태로, 확정되면 신규 펀드 설정이 막히는 영업정지급 제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위탁운용 자금을 지렛대로 MBK를 압박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문제는 남은 명단이 하나같이 국민의 소비생활과 맞닿은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bhc를 거느린 다이닝브랜즈그룹, 모던하우스, 네파, 롯데카드까지, 국민의 밥상과 옷장, 거실과 지갑에 닿아 있는 회사들이 여전히 MBK의 손에 들려 있다.
모두 수년째 매각이 여의치 않은 매물들이다. 엑시트가 막힌 사모펀드가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는 홈플러스의 지난 10년이 이미 보여줬다. 배당과 리캡, 자산 매각과 비용 절감. 대한민국 유통사(流通史)의 한 장이 사모펀드의 회수 시간표 위에서 쓰이고 있는 셈이며, 이 각본이 다음 무대에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철강왕의 사위가 세운 자본은 30년을 돌아 유통산업의 파산 법정에 도착했다. 그리고 파장은 다시 정치의 책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무엇을 규율할 것인지, 입법의 시간은 이미 시작됐다. 홈플러스에 남은 시간은 열흘 남짓이지만, 한국 자본시장이 답해야 할 질문의 시효는 그보다 훨씬 길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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