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부터 일반인까지 오남용 잇따르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라
정부, 특별감시단 출범…'의료용 마약류 오남용과의 전면전' 선언
법 공백 틈타 아편류 상습투약 의사출신 을지재단 회장 '무죄'
[편집자주(註) = 질병의 치료나 진단, 수술·시술 과정에서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의료용 마약류는 의존성과 남용 위험 때문에 법률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유명 연예인은 물론 의사, 간호사, 일반인까지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7월 1일 '의료용 마약류 특별감시단'을 발족하고 365일 상시 모니터링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를 계기로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실태를 점검하고, 정부의 대대적인 특별감시 계획을 진단하며,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한 '법적 사각지대'를 짚어보는 기획물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 6월 30일 부산지법은 환자 10명과 자신의 배우자에게까지 프로포폴과 케타민을 투여한 의사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약물 의존 증상을 보였고, 투약 횟수는 99회에서 508회에 달했다. A씨의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난동을 피우며 투약을 요구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처방받은 투약자는 3월에 이미 숨졌다.
# 의사 B씨는 자신의 병원을 방문한 C씨에게 피부 시술 등을 이유로 10개월간 프로포폴 2천㎖ 상당을 10차례에 걸쳐 투여했다. C씨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2023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B씨 병원을 포함해 의료기관 18곳을 돌며 프로포폴을 총 84회 투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들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사례를 적발해 수사 의뢰했다.
프로포폴은 각종 검사와 시술 시 사용되는 마취 진정제다. 환자 상태와 필요에 따라 적법하게 써야 하지만, '쉽게 푹 자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처방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더 나아가 통증을 줄이는 전신마취제 케타민을 섞어 주사하기도 한다. 이들 약물에 의존성이 생기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처방받는 의료쇼핑을 일삼는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6일 식약처 등에 따르면 이처럼 의료용 마약류를 적절한 의학적 근거 없이 처방하거나, 상습적으로 반복 투여하는 오남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식약처는 마취제, 식욕억제제 등의 오남용이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고 지난 1일 '의료용 마약류 특별감시단'을 출범하는 등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과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 내부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의료용 마약류의 불법 취급과 오남용 행위를 파헤치고자 불법행위 신고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프로포폴 등 불법투약 전문 의료기관 압수품(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중앙지검)에서 열린 프로포폴 등 불법투약 전문 의료기관 적발 브리핑에 의약품, 의료폐기물 등 압수품들이 놓여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조해 프로포폴 불법유통을 집중 수사한 결과 A의원 관계자 8명, 프로포폴 중독자 24명 등 총 32명을 입건해 전직 의사 서모(64)씨 등 7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2024.11.20
dwise@yna.co.kr
의료용 마약류는 의사와 환자 사이 의료 행위라는 테두리 안에서 처방돼 적발 자체가 쉽지 않다. 적발되더라도 치료 목적을 명분으로 내세우면, 처벌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제보자의 신고가 불법 여부 판단에 중요 단서가 된다.
식약처는 그간 의료용 마약류 관리를 지속해서 강화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고 보고 전방위 감시라는 특단의 대책까지 빼 들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건강검진 등의 목적으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환자는 2천20만명이다. 국민 10명 중 4명 수준이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는 2024년 2천1만명에서 2025년 2천20만명으로 0.9% 증가했고, 2년 연속 2천만명을 웃돌고 있다. 2021년 대비로는 7.2% 증가했다.
환자 중 1천262만명은 프로포폴 등 마취제를, 972만명은 미다졸람과 졸피뎀 등 최면 진정제를 각각 처방받았다.
지난해 처방량은 19억5천724만개로 집계됐다. 2024년 대비 1.6% 늘었고, 2021년과 비교하면 4년간 7.1% 많아지는 등 꾸준한 증가세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데에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서비스 이용 확대 등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 틈을 타 진료 행위와 치료를 빌미로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하는 경우다.
간단한 주사로 손쉽게 큰 만족감을 느끼고, 이를 반복하다 의존하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독되는 사례가 전국 각지에서 적발되고 있다.
식약처는 올해 상반기 프로포폴 등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기관을 대거 점검했다. 1차로 30곳을 불시 점검해 마약류관리법 위반이 확인된 17곳을 적발 및 행정처분 의뢰했고, 2차로 27곳 중 11곳에 대해 수사 의뢰했다. 2차 점검에서는 소위 '의료쇼핑'(이곳 저곳 병원을 돌면서 프로포폴을 처방받는 행위)으로 프로포폴을 반복 투여한 환자 13명도 함께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또 올해 4월에는 의료용 마약류 7종(졸피뎀·프로포폴·식욕억제제·항불안제·진통제·펜타닐 패치·메틸페니데이트)을 적정 기준을 넘겨 처방한 의사 3천923명이 무더기로 포착됐다. 식약처는 이들의 처방 행위를 면밀히 추적 관찰 중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계도와 단속에도 전국 각지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한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6월 14일에는 대낮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소지한 채 정신을 잃은 30대 여성이 발견돼 충격을 줬다. 서초구 신논현역 출구 앞에 쓰러져 있던 여성의 쇼핑백에는 프로포폴 약병 여러 개와 주사기가 들어 있었다.
올 1월에는 근무하던 병원에서 프로포폴과 미다졸람 등을 빼돌린 간호조무사가 해당 약물을 상습 투약한 끝에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2월에는 간호조무사가 무단 반출한 프로포폴을 투약한 운전자가 포르쉐 차를 몰다 반포대교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마약류관리법 위반과 약물운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약물을 건넨 전직 간호조무사도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프로포폴을 공급한 성형외과 원장 역시 마약류관리법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됐다. 해당 의사는 이 사건뿐만 아니라 작년 8월부터 자신의 병원을 방문한 10여 명의 환자에게 프로포폴을 필요 이상 투약하거나 마취가 불필요할 때에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3년 8월에는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약물에 취해 롤스로이스 차를 몰던 운전자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했다. 그는 2022년 6월∼2023년 8월 의원 14곳에서 총 57차례에 걸쳐 프로포폴, 미다졸람, 케타민 등을 처방받아 투여하고, 이 과정에서 타인의 명의를 도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배우 유아인씨도 미용 시술을 위한 수면 마취를 명분으로 프로포폴 등을 처방받고, 타인 명의로 수면제를 처방받는 등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해 적발됐다. 유씨는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 판결이 확정됐다.
배우 하정우씨도 프로포폴을 치료 목적 외로 투약한 혐의로 2021년 1심에서 벌금 3천만원이 확정됐다.
프로포폴뿐만 아니라 페티딘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의심 사례도 드러나고 있다.
페티딘은 최근 일부 피부과 의원에서 미용 시술을 하면서 과다 사용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식약처가 주시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페티딘은 '좀비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과 마찬가지로 오남용 시 의존과 중독을 유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펜타닐 오남용의 경우 미국 청소년 사망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의료법인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위치에 있는 인사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던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 사건에서 문제가 된 약물도 페티딘이었다.
을지재단, 박준영 전 회장 마약 성분 투여 인정…"치료목적"
(대전=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을지재단은 25일 마약 투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박준영 전 회장의 마약 성분 진통제 투여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을지재단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박 전 회장은 2012년부터 통증 완화와 진정 효과가 있는 의료용 치료제 페치딘을 의사로부터 처방받고 지속해서 투여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보건의료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을지재단 박준영 전 회장. 2017.12.25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13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1천677일간 페티딘 79만4천200㎎을 처방받았다. 매일 9∼13회씩 투약해야 소진할 수 있는 분량이다. 치료 목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았으나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선처받았다. 그나마도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고, 이후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의사는 업무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처방할 때 처벌받지만, 처방전을 발급받은 박 회장의 경우 의사들의 공동정범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업무 외 목적으로 처방전을 발급받은 상대방을 처벌하는 마약류관리법 규정이 따로 없으므로, 박 회장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처럼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중대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관련법규가 미비하거나 모호해 처벌을 면하는 경우가 있어 다층적 감시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임순현 김잔디 박수현 최원정 기자)
hyun@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