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의 디지털인사이트] 하고 싶은 만화를 종이 위에 남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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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재의 디지털인사이트] 하고 싶은 만화를 종이 위에 남긴다는 것

경향게임스 2026-07-06 10:44:26 신고

3줄요약

디지털로 만화를 배운 세대가 종이만화를 꿈꾸다니. 만화의 작업 환경이 디지털로 넘어온 지는 이미 오래다. 지금의 청년 창작자들은 태블릿과 모니터 앞에서 콘티를 짜고, 펜선을 긋고, 말풍선을 배치한다. 웹툰 플랫폼을 전제한 세로 스크롤 연출은 만화 교육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 잡았고, 종이 원고지에 펜촉을 눌러가며 그리던 시대는 교과서 속 풍경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교육현장에서는 새로운 세대들에게서 다시금 페이지 만화에 대한 열망이 올라오는 기운을 느끼고 있다. 스크롤을 내려 화면에서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페이지를 넘기며 머무를 수 있는 만화. 독자가 표지를 바라보다 첫 장을 넘기고, 가격을 묻고, 작가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그런 순간들. 조회수의 세계에서 창작을 시작한 이들에게 이런 경험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보다. 플랫폼이 형식을 표준화할수록, 창작자는 그 규격 바깥에서 자기 이야기의 온전한 형태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하고 싶은 만화'가 놓이는 자리
2026 하고싶은 만화전 ROOKIES는 그 갈증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바꾸어주었다. '하고싶은 만화전'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 행사는 완성된 작가의 세계를 전시하는 회고전이 아니라, 이제 막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청년 창작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말 하고 싶은 만화"를 펼쳐 보이는 무대였다. 국립공주대학교, 세종사이버대학교, 영산대학교 등 여러 대학의 만화·웹툰 관련 학과와 동아리, 신진 창작자들이 참여해 행사의 저변을 넓혔고, 독립만화와 신인 창작자를 향한 현장의 관심이 결코 마니아들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학생들에게 이번 행사는 외부 전시 참가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14명의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각자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만화 한 편을 붙잡고 원고를 완성했다. 누군가는 일상의 미세한 감정을 이야기로 옮겼고, 누군가는 오래 품어온 캐릭터를 처음으로 책이라는 무대에 세웠으며, 누군가는 좋아하는 장르의 문법을 빌려 아직 서툴지만 분명한 자기만의 세계를 지어 올렸다.

강동대학교 부스. 독자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처음의 경험은 소중했다 강동대학교 부스. 독자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처음의 경험은 소중했다

주목할 것은 작업이 원고 완성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앤솔로지를 함께 엮고 저마다의 작품집을 준비하면서, 편집과 인쇄 사양을 고민하고, 가격을 정하고, 부스에 놓일 책의 물리적 형태까지 스스로 결정했다. 창작의 하류 공정으로 여겨지던 편집·제작·유통의 판단이 사실은 작품의 일부라는 것을,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교실의 피드백과 부스 앞의 시선은 다르다
만화를 배운다는 것은 잘 그리는 법을 익히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하는 일, 그것을 독자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돈하는 일, 그리고 그 결과물을 세상 앞에 내놓는 일까지가 하나의 교육이다. 하고싶은 만화전 ROOKIES는 학생들이 그 전 과정을 압축적으로 통과한 자리였다.

강의실에서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피드백과, 낯선 독자가 부스 앞에 멈춰 서서 내 책을 펼치는 경험은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수업은 작품의 완성도를 언어로 평가하지만, 행사장의 독자는 몸으로 반응한다. 표지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지, 책의 판형과 가격이 손을 내밀게 하는지, 한두 장을 넘긴 독자가 계속 읽고 싶어 하는지, 작가의 짧은 설명이 구매로 이어지는지. 어떤 커리큘럼도 대신 가르쳐줄 수 없는, 살아 있는 피드백이다.

알고리즘이 매개하지 않는 만남
청년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결핍된 경험을 하나 꼽으라면, 독자와 직접 만나는 자리다. 웹툰 플랫폼은 수십만 독자에게 닿을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그 대가로 창작자와 독자 사이에 조회수와 댓글, 별점과 알고리즘이라는 두꺼운 매개층을 세웠다. 플랫폼 위에서 독자는 트래픽으로 환산된다. 반면 독립만화 행사장은 독자를 다시 '얼굴'로 돌려준다. 독자는 작가 앞에서 책을 펼쳐 보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말로 설명한다. 어떤 독자는 조용히 책을 사 가고, 어떤 독자는 이 장면이 좋다고 말해주며, 어떤 독자는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 짧은 대화 하나가 창작자에게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구체적인 한 사람에게 가 닿았다는 감각은, 어떤 평가 점수보다 강한 창작의 동력이 된다.

하고싶은 만화전 : Rookies 팟캐스트에 참여한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한현, 서용주 학생 하고싶은 만화전 : Rookies 팟캐스트에 참여한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한현, 서용주 학생

물성이 창작자에게 가르쳐주는 것
파일은 무한히 수정할 수 있지만, 인쇄는 결단을 요구한다. 종이 만화와 독립출판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이의 가치는 디지털보다 오래되었다는 데서 오지 않는다. 종이는 창작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하나의 물성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모니터 속 레이어와 파일로 존재하던 원고가 한 권의 책이 되는 순간, 학생들은 자신이 만든 세계를 비로소 손에 쥔다. 페이지의 순서와 여백, 인쇄된 선의 농도, 종이의 감촉, 책등의 두께까지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된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교육적 의미가 숨어 있다. 디지털 파일은 언제까지고 고칠 수 있지만, 인쇄는 어느 시점에 "이것으로 완성"이라고 선언하는 결단을 요구한다. 마감이란 시간의 문제이기 이전에 태도의 문제이며, 책을 만든다는 것은 그 태도를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독립만화는 거대 플랫폼의 기준에 맞춰 다듬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자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 속도와 자기 방식으로 밀고 나간 결과다. 그래서 서툴 수 있고, 거칠 수 있고, 시장의 문법에서 비켜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독립만화는 젊은 창작자에게 가장 정직한 첫 무대가 된다.

가격표를 붙인다는 것, 홀로 선다는 것
학생들이 부스에 앉아 자신의 책을 직접 판매했다는 사실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판매는 돈을 받는 행위 이전에, 자기 작업의 가치를 스스로 규정하는 훈련이다. 내 책에 얼마의 가격을 매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창작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타인의 시간과 지갑에 견주어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 그 값을 치르고 책을 집어 든다는 것은, 내 이야기에 자신의 시간을 쓰겠다는 뜻이고, 내 작업을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창작자의 기쁨과 긴장, 그리고 책임감을 동시에 배웠다. 책이 팔리는 순간의 설렘도, 관심이 비껴가는 시간의 초조함도, 부스를 찾은 독자에게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 어색함도, 모두 창작자로 홀로 서는 과정의 일부였다.

과제는 제출되지만, 작품은 읽히면서 다시 시작된다
이번 행사가 각별했던 이유는, 학생들이 자신의 만화를 '과제'가 아니라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데 있다. 수업 안에서 완성된 원고는 평가를 받고 끝나지만, 행사장에 놓인 책은 독자를 만난다. 과제는 제출과 함께 종결되지만, 작품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붙잡고 있던 이야기들은 하고싶은 만화전 ROOKIES의 부스 위에서 비로소 독자와 연결되었고, 그 연결의 기억은 이들이 앞으로 웹툰 작가가 되든, 출판만화를 만들든, 애니메이션이나 다른 콘텐츠 분야로 나아가든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만화 교육은 당연히 변화해야 한다. 학생들은 웹툰 플랫폼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디지털 작화 도구를 능숙하게 다뤄야 하며, 빠르게 재편되는 콘텐츠 산업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해 한 권의 책으로 묶고 독자에게 건네는 경험 또한 여전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디지털이 만화의 가능성을 넓혔다면, 종이책은 창작자에게 작품의 무게를 알려준다. 플랫폼이 더 많은 독자를 향한 길을 열어준다면, 독립만화 행사는 창작자가 첫 독자의 얼굴을 기억하게 해준다.

첫 독자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
2026 하고싶은 만화전 ROOKIES에는 완성된 작가가 아니라 시작하는 작가들이 있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아직 능숙하지 않지만 끝까지 완성해낸 원고를 품은 사람들, 그리고 그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독자 앞에 내놓을 용기를 낸 사람들.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학생들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하고 싶은 만화를 완성했고, 앤솔로지와 개인 작품집으로 자신의 세계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오프라인 현장에서 독자를 만나 창작자로 홀로 서는 일이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했다.

하고싶은만화전 Rookies 공식포스터

만화가 디지털로 이동한 시대에도 종이 만화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손에 잡히는 책, 직접 마주한 독자, 부스 위에 놓인 자신의 이름, 그리고 처음으로 팔린 한 권의 기억. 하고싶은 만화전 ROOKIES가 학생들에게 준 것은 전시와 판매의 기회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만화가 세상과 만나는 최초의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통과한 학생들은 이제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만화는 혼자 그리는 것이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첫 독자의 얼굴을 기억하는 창작자는, 다음 원고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지면을 통해, 이 경험의 자리를 이끌어준 SWA와 성인수 작가님께 무한한 리스펙을 드리고 싶다.
 

김한재 교수는...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한재 교수는 세종대학교 멀티미디어애니메이션전공으로 석사, 상명대학교 감성공학 박사를 받았다. 교과서만화(1995)> 학습만화가로 데뷔했으며, 애니메이션산업백서, 만화산업백서, 캐릭터산업백서 집필진으로도 활동했다.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산업과 콘텐츠 이야기를 풀어나갈 계획이다.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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