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력 안정화용 배터리 시장이 새로운 성장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AI 서버의 대규모 연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전력 변동을 제어하기 위한 특수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전기차 시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터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은 초당 여러 차례 발생하는 '전력 서지(Power Surge)'에 대응하기 위해 고성능 배터리 기반 전력 안정화 시스템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전력 서지는 전압이 순간적으로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는 현상으로, 서버와 같은 민감한 전자장비의 손상이나 화재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대규모 AI 학습용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급격히 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순간적인 전력 수요는 소도시 전체 전력 소비량에 맞먹을 정도로 커 기존 백업 전원이나 가스 터빈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나트륨이온 배터리 스타트업 알심에너지(Alsym Energy)의 무케시 차터 최고경영자(CEO)는 "극심한 전력 변동 때문에 일부 데이터센터는 전력망 연결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 3개월 동안 관련 문의가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배터리는 이제 데이터센터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가 되고 있다"며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전력 방출 속도가 빨라 전력 변동을 빠르게 흡수하고 안정화하는 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는 이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용 배터리는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스바겐의 지원을 받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업체 퀀텀스케이프는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데이터센터 장비 기업들과 기술 공급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루마니아 배터리 기업 프라임배터리테크놀로지스의 비센티우 치오바누 CEO도 "데이터센터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범용 제품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낮다"며 "전기차와 일반 ESS 시장이 치열한 경쟁에 들어선 만큼 관련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모든 전문가가 시장 확대를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 안정화용 배터리 시장이 전체 ESS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대규모 생산능력과 공급망을 갖춘 LG에너지솔루션, CATL 등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시장에 본격 진출할 경우 스타트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데이터센터 전력 품질 관리가 새로운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전력 안정화용 배터리가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중요한 성장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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