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업체들, 품질 격차 좁히고 가격은 낮춰
독일 공업 일자리 매월 1만개 넘게 감소중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독일 제조업의 마지막 보루로 꼽혀오던 '미텔슈탄트'(Mittelstand) 기업들마저 중국에 밀리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수십년간 독일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수천 개의 세계 정상급 틈새 분야 제조업체들이 의지해 온 난공불락의 해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품질'이었다. 이제 그 해자가 말라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독일어 '미텔슈탄트'는 '중산층', '중간층', '중류층'이라는 말이며, 기업에 쓰일 때는 다양한 규모의 중소기업들과 중견기업들을 포괄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독일 미텔슈탄트 기업들의 주류는 대체로 자본재와 중간재 생산에 특화돼 있으며 수출을 위주로 하는 제조업체들이다.
이들은 세계 모든 곳의 공장에 쓰이는 기계류를 제작하면서 한때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이제 중국이 품질 격차를 좁히는 동시에 유럽 경쟁업체들의 절반 수준까지 가격을 낮췄다.
독일 제조업체들 사이에 공포가 번지면서, 경기침체를 겪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번영하던 소도시들과 마을들에 감원 물결이 닥쳤으며, 이는 독일에 정치적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요즘 첨단 자본재 부문 무역수지를 따져보면, 독일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이 독일이 중국에 수출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다.
이는 수십년 만에 처음 일어난 역전 현상이다.
뉴욕 소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에 따르면 독일의 대(對)중국 자본재 무역수지는 12개월 이동평균 기준으로 2024년 중반 7억5천만 유로(1조3천억 원) 흑자에서 2025년 8월 5억 유로(8천700억 원) 적자로 급격히 악화했다.
올해 1분기 독일의 대중국 공작기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분의 1이 감소했다.
독일 제조업체들은 중국과 다른 해외 시장은 물론이고 안방인 독일에서마저 중국의 경쟁업체들에 밀리고 있다.
한때는 강소기업이었으나 이제는 입지가 무너진 여러 독일 미텔슈탄트 기업들은 노동자에게 일감을 주지 않거나, 일자리를 줄이거나, 중국 등 다른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하고 있다.
글로벌 회계업체 EY가 올해 5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공업에서는 매월 1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공업 생산은 2022년 2월부터 2026년 초까지 약 10% 감소했고, 특히 에너지 집약 산업 부문의 생산은 15% 넘게 급락했다.
중국 세관의 달러 표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중국의 대(對)독일 전체 상품 수출은 전년 대비 17% 뛰었고, 유럽연합(EU)으로의 수출은 16% 증가했다.
중국은 몇 년 전 부동산시장 붕괴 이후 경제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제조업 의존도를 높여 왔다.
국내 수요 부진과 넘쳐나는 재고에 직면한 공장들은 해외 판매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그 결과 중국의 무역흑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조2천억 달러(1천800조 원)로 치솟았다.
중국 정부는 '소거인'(小巨人) 기업 1만개를 양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대규모 보조금, 세제 혜택, 국가 자원을 전문 분야 특화 중소기업들에 쏟아부었으며, 이는 '히든 챔피언'이라는 말로 불리던 독일의 미텔슈탄트 기업들을 겨냥해 설계된 정책이었다.
독일 남서부에 본사가 있는 기계 제조업체 '아우라'의 파트리크 부르크하르트 대표는 중국과의 경쟁이 불과 지난 6개월 사이에 급격히 불붙으면서 주문이 말라붙었으며 가격 압박도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아우라는 직원 115명을 두고 있으며 연 매출은 약 3천만 달러(460억 원)다.
이 회사는 프레스, 오븐, 압출기 등 더 큰 산업용 기계에 들어가는 가열 장비를 만든다.
그는 한때는 모든 제품을 독일에서만 생산했으나 지금은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만약 유럽에서 변화가 없다면 자사의 중국 생산 비중을 70%로 늘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동유럽이나 남미의 제조업체가 새 공장을 세우려고 하면 사출기, 로봇팔, 건조기, 클라우드 관리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전체 생태계를 하나의 통합된 중국 공급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최근 독일 미텔슈탄트 기업들은 국가 지원을 받는 중국 경쟁업체들로부터 자국 기업들을 보호해달라고 독일 정부와 EU 집행위원회 등에 요구하고 있다.
회원사 근로자 수 합계가 100만명인 업계 단체 독일 기계·설비제조업협회(VDMA)의 대외무역 부문 책임자 올리버 리히트베르크는 중국 경쟁사들이 이미 기계 부문 전세계 생산의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변곡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면서 "그들이 40%나 50%에 도달하면, 우리에게 남은 지렛대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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