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바다와 맞닿은 절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파도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숨을 고르는 사찰이 있다. 부산 기장,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 끝에 자리한 해동용궁사다. 육지의 산사를 떠올리고 찾았다면, 이곳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바람이 스치는 방향,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사람들의 기도까지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곳에서는 풍경을 보는 것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해동용궁사는 고려 공민왕 시기 왕사였던 나옹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한국의 대표 관음 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며, 바다·용·관음 신앙이 함께 어우러진 배경을 지닌다. 이 세 요소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다른 사찰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절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여행자는 이곳이 지닌 의미를 직감하게 되고, 그 기대감은 점점 커진다.
입구는 생각보다 아담하다. 좁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이루고, 그 끝에서 비로소 시야가 열리며 바다가 등장한다. 이 과정은 마치 한 장면씩 펼쳐지는 연출처럼 이어진다. 붐비는 순간에도 발걸음은 쉽게 빨라지지 않는다. 앞사람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경내로 내려가는 계단은 여행자에게 강한 첫 인상을 남긴다. 바위와 바다 사이로 이어진 길,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절의 모습은 ‘왜 이곳이 유명한지’를 말없이 설명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아래로 내려가며 체감하는 공간의 깊이가 동시에 느껴진다. 이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된다.
이곳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도하면 소원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진심으로 염원하면 꿈속에서 계시를 받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이곳을 찾는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사람들의 간절함이 모이는 장소라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공기는 다른 관광지와는 다른 무게를 지닌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고, 이후 1930년대 통도사의 운강 스님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지금의 모습은 여러 차례 복원과 정비를 거쳐 완성된 결과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세워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그 과정이 이곳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1974년에는 정암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며 큰 변화를 맞는다. 관음 도량으로 다시 세우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백일기도를 올렸고, 그 과정에서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꿈을 계기로 절의 이름이 해동용궁사로 바뀌었고, 지금의 정체성이 더욱 또렷해졌다. 이 일화는 지금도 방문객들에게 자주 회자된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굴법당, 용왕당,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의 건물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 공간 전체가 하나의 풍경처럼 이어진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파도가 함께 들어오고, 건물과 자연이 따로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이 배치는 이곳만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대웅전 옆 굴법당은 특히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다. 미륵좌상 석불이 모셔져 있으며, 자식을 바라는 이들이 기도를 올리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득남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실제로 이곳 앞에서는 오랜 시간 머무르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웅전 앞에 자리한 사사자 석탑은 절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다. 화려함보다 상징성이 강조된 구조물로,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사진으로 담아도 인상적이며, 직접 마주하면 더욱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부처님오신날에는 연등이 켜지며 사찰 전체가 빛으로 채워진다. 밤바다와 어우러진 연등의 풍경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수많은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이곳은 해돋이 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월 1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해를 보기 위해 모인다. 어둠 속에서 시작해 점점 밝아지는 하늘, 그리고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순간,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한다. 매년 반복되지만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특이한 점은 경내 곳곳에 다양한 조형물이 많다는 것이다. 일반 사찰에서 보기 어려운 장식들이 눈길을 끌며,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12지상, 16나한상, 학업성취불 등의 조형물은 이곳을 더욱 기억에 남게 만드는 동시에, 전통적인 사찰 이미지와는 다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이와 함께 상업적인 요소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관광객이 많다 보니 모금함이나 기념 요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방문객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이곳이 관광지로서 갖는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해동용궁사는 분명 매력적인 방문지다. 풍경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경험의 깊이가 더해진다. 짧은 시간 머물러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찰을 지나 이어지는 산책길은 흥미롭다. 금불상이 있는 전망대 옆에서 시작되는 길로, 바다를 따라 조용히 이어진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으며, 파도 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으며 걷는 시간이 인상적이다.
이 길 끝에는 국립수산과학원 수산과학관이 자리한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작은 규모의 전시와 아쿠아리움이 마련돼 있다. 가볍게 둘러보기 좋고, 여행의 마무리를 차분하게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해동용궁사는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다. 기도처이자 관광지이며, 동시에 자연을 가까이에서 체험하는 장소다. 누구에게는 소원을 비는 자리이고, 또 누구에게는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지다.
결국 이곳의 매력은 바다와 함께 있다는 데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고, 바람을 맞으며 머무는 시간 자체가 특별한 경험으로 남는다. 그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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