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지수와 S&P500지수 등 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들이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예전과 다르다. 미국 증시의 상승 탄력은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증시에 비해 현저히 약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투자 자금을 빨아들이던 '매그니피센트 7'(이하 M7)의 부진이 미국 증시의 상대적 약세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M7 종목들의 주가 성과(6월 22일 기준)는 좋지 못했다. 엔비디아(+11.8%)와 알파벳(+11.7%), 애플(+9.2%), 아마존(+0.8%)이 강세를 나타냈지만, 테슬라(-9.9%), 메타(-14.5%), 마이크로소프트(-24%)는 일제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 상승률(+12.5%)을 상회하는 종목이 단 하나도 없다. S&P500지수의 상승률(9.1%)보다 나은 성과를 기록한 것은 엔비디아와 알파벳뿐이지만 이마저도 벤치마크 대비 초과 수익의 정도는 미미하다. 한국의 반도체 투톱인 SK하이닉스(+353.8%)와 삼성전자(+196%)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도드라진다.
이렇다 보니 미국 증시 내 M7의 절대적인 영향력도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다. S&P500지수 전체 시가총액에서 M7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11월 3일 36.5%로 정점을 찍은 후 최근 32.5%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했던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의 독주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미국 플랫폼 기업들은 자본시장이 가장 선호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애플, 알파벳, 메타, 아마존 등은 대규모 공장이나 생산설비 없이 인터넷 네트워크 위에서 성장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높은 이윤을 기록했고, 풍부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확대했다. 미국 증시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결국 이러한 자본효율성에 대한 프리미엄이었다.
하지만 AI(인공지능) 시대는 상황을 바꾸고 있다. AI 경쟁은 과거 플랫폼 경쟁과 달리 막대한 실물 투자를 요구한다. 데이터센터를 건설해야 하고, 반도체를 확보해야 하며, 전력 인프라까지 구축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가벼운 성장 모델이 하드웨어와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무거운 성장 모델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기되는 AI 버블론(거품론)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주가가 비싸다는 문제가 아니다. 투자 없이 높은 수익성을 누리던 기업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지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포함한 M7 기업들 역시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 규모가 기존의 잉여현금 흐름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메타는 지난해 회사채를 발행했고, 아마존과 알파벳도 올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알파벳은 여기에 더해 850억달러 규모의 유상증자까지 실시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스페이스X의 750억달러 IPO(기업공개) 규모를 웃도는 수준이다. 과거 현금이 넘쳐나던 빅테크들이 이제는 외부 자본에 의존하며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결국 시장이 우려하는 것은 자본효율성의 저하다. 주식시장은 같은 이익이라도 적은 자본으로 창출한 이익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AI 경쟁이 심화될수록 빅테크들은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하고, 이는 투자수익률과 잉여현금 흐름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의 막대한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이익을 미래에 창출할 수 있을지가 시장의 핵심 관심사다.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명이 이러한 우려를 상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M7의 주가 부진은 시장이 미래의 가능성보다 비용 증가와 자본효율성 악화에 더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플랫폼 기업들의 높은 수익성은 어쩌면 투자 부담이 크지 않았던 시대의 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AI 시대는 기업들에 다시 비용 지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 공급망을 보유한 한국과 대만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자본효율성에 프리미엄을 부여해온 미국 증시에는 새로운 도전이다.
누가 AI 시대의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비용을 최소화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던 시대에서 비용을 감수하며 미래를 사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AI 버블 논란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자본효율성에 대한 의문이다. M7의 부진은 미국 증시가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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