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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인터뷰에는 '눈동자'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짓다'라는 말은 국어사전 속에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가장 처음으로 기록됐고, '시, 소설 같은 글을 쓰다'라는 뜻이 마지막으로 기록돼 있다. 영화 '눈동자'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윤성혜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짓다'다. 집을 짓고, 이야기를 짓고, 사람을 짓는다. 영화 속 공간은 그의 손에서 하나의 서사가 된다.
'눈동자'는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언니 서진(신민아)이 쌍둥이 동생 서인(신민아)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해 가는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영화다. '눈동자'의 공포는 살인범보다 먼저 공간에서 시작된다. 어딘가 낯설고, 익숙한 듯 불편한 집. 벽지와 장판, 격자무늬, 조각상 하나까지 모든 것이 관객의 불안을 조금씩 키운다. 그 세계를 설계한 이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윤성혜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베리배리 스페이스에서 만난 그는 "'눈동자'는 사람의 감정이 집이라는 공간으로 발현되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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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제안받고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긴 것은 시나리오의 한 문장이었다. '낯선 물건들로 분위기가 묘하다'라는 짧은 설명이다. 그는 서인의 집에서 "낯선 물건"을 단순한 소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두 공간을 연결하는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서인의 집과 지숙의 집은 '눈동자'를 아우르는 가장 큰 두 개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두 장소 모두 '집'이다. 인물의 역사는 다르지만, 두 인물은 접점이 있다. 성공이 묻어나는 고급 주택으로 설정했다. 반면, 지숙의 집은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흔한 벽돌 주택이라고 구체화했다. 그래서 서인의 집은 현대식의 벽돌 건물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같은 벽돌집이지만 하나는 현대적으로, 하나는 오래된 시간을 품은 공간으로 대비시키고 싶었다."
윤성혜 미술감독은 염지호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과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며 자신의 설계를 제안하고, 하나씩 구체화했다. 시각장애를 가진 서인이 살아가는 공간의 디테일과 영화 속 액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동선과 구조를 완벽하게 통제되어야 했기에 두 집 내부를 '세트'로 제안했다. 사실 서인과 지숙의 집은 하나의 세트에서 변형된 구조로 설계됐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캐릭터가 가진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더해진다.
"80년대 후반, 한 집에서 어머니이자 한 여자가 어떤 일을 했을까. 상상하며 '행복이 가득한 집' 등 90년대 매거진들을 찾아봤다. 그곳에서 과거 어머니들이 많이 하셨던 지점토 공예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런 소품들로 지숙의 집도 채우고, 서인이네 집에도 일부 갖다 놓았다. 두 소품의 대비를 크게 가려고, 일부러 서인의 집을 굉장히 모던한 공간으로 설정했다. 군더더기가 없고 그레이톤과 우드톤의 차분한 공간에 요란한 색의 지점토 티슈 케이스 등이 있는 거다. 그런 지점이 서인의 도예 작품과도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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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흙으로 빚어낸 작품이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다르다. 시나리오에는 '눈이 없는 사람의 두상' 정도만 적혀 있었지만, 윤성혜는 여기에 덩굴과 꽃을 더했다. 서인의 도예 작품은 눈을 잃었지만, 생명력을 잃지 않은 예술가의 내면을 꽃이 피어나는 얼굴로 표현했다. 그는 "호텔에 있는 서인의 도예 작품의 타이틀이 '바라 봄'이다. 염지호 감독님께서 정한 타이틀이다. 그 꽃이 봄을 원하기도 하고, 그 봄을 바라보길 원하기도 한다는 이중적인 지점에서 딱 맞다고 생각했다"라고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반대로 지점토로 만든 작품은 대상을 옥죄는 상징성을 더했다. 같은 꽃인데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옥죄는 꽃을 의미하도록 대비를 만들었다.
윤성혜 미술감독은 "영화 속 공간은 인물을 규정해야 한다"라고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집을 보는 순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도 알게 되길 바랐다"라며, 이를 위해 전국을 돌며 오래된 벽지와 장판을 찾아다녔고, 결국 목포에서 실제 1990년대 벽지를 구해왔다. 촬영하러 다닐 때마다 '언젠가는 쓰겠다'라며 오래된 벽지와 장판을 기록해 둔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 와인색 냉장고와 꽃무늬, 옥색 몰딩이 뒤섞인 시대의 혼란스러운 감각을 인물의 상태와 결부시켜 공간으로 되살렸다. 특히 후반부 지숙의 집 벽지는 초점이 흐려질 경우 일렁이며 눈동자처럼 보이도록 직접 디자인했다. 덩굴이 사람을 옥죄는 형태의 패턴과 달 모양까지 모두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시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치였다.
'눈동자' 현장은 그에게 특별했다. 염지호 감독은 처음 회의할 때 "좀 더 과감하게 가도 된다"라고 이야기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또한 현장에서 이태윤 촬영감독과 유혁준 조명감독 역시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소통하며 조율해 갔다. 그가 "처음 봤을 때,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라고 말한 배우 신민아까지도 서인의 집을 좋아하며, 본인의 아이디어로 현장을 풍성하게 만들어갔다. 여러 사람이 모인 현장에서 '눈동자'의 좋은 장면을 완성하고 싶다는 하나의 마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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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혜 미술감독은 지난 2009년부터 미술팀으로 합류했다. 이후 '암살', '아가씨', '나랏말싸미', '외계+인', '어쩔 수가 없다.' 등의 작품 속에서 류성희 미술감독과 함께하며 차근차근 일을 배워갔다. 그는 "미술팀의 일 중에서도 세트 데코레이션을 많이 맡았다. 덕분에 그것이 저의 강점이 된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17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 영화 현장에 합류한 것은 그저 "영화 일을 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라는 단순한 이유였고, 지금까지 현장에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영화 한 편 끝날 때마다, 나와 정말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사람의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그 사람의 시간을 공간에서 역으로 추적하는 거다. 만약 사무실이라면, '이 자리의 사람은 어떤 직업이고, 어떤 커피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틀까?' 등 세세한 것들을 고민하며 그 사람을 떠올린다. 공간 자체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다. 또 그런 공간이 눈에 보이도록 탄생하니까 작품마다 다 즐거웠다. 왜냐하면, 같은 인물이 나오는 영화는 없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영화도 없으니까."
영화를 통해 공간으로 사람을 이야기했던 그는 이제 영화를 넘어 전시와 다양한 콘텐츠에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설계하고 싶다고 미소 지으며 이야기한다. "결국 저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짓는 일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지어낼 수많은 공간에 기대감이 더해지는 이유다.
- 조명현 객원기자 midol13@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