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만나는 곳… 섬진강 백사장 품은 '천연기념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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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만나는 곳… 섬진강 백사장 품은 '천연기념물 숲'

위키트리 2026-07-04 01: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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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물길이 만나는 경상남도 하동군에는 오랜 시간 강바람을 막아 온 소나무 숲이 있다. '하동송림'은 치수의 흔적과 강변 풍경, 지역의 생활 문화가 함께 남아 있는 곳이다. 숲을 따라 걷는 길은 평사리와 화개장터, 하동의 차와 섬진강 음식으로 이어진다.

하동 송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하동송림의 시작은 조선 영조 21년인 17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동도호부사로 부임한 전천상은 남해 광양만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섬진강 하구 모래사장에서 날아드는 모래바람이 읍내와 농경지에 피해를 입히는 상황을 파악했다.

전천상은 섬진강 변을 따라 소나무 숲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강바람을 차단하고 모래 이동을 막기 위한 방풍림이자 방사림이었다. 군사와 주민들이 강변 모래 지대에 나무를 심었고, 조성 초기에는 약 1500그루가 식재됐다. 이후 홍수 등으로 일부 노목이 사라졌지만, 지속적인 보존 노력과 후계목 식재가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하동 송림공원 / 경상남도 하동군-공공누리

이 숲은 강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조성 목적이 잘 드러난다. 섬진강과 읍내 사이에 길게 자리해 바람을 한 차례 받아내고, 모래가 마을 안쪽으로 밀려드는 것을 막는 완충 지대가 됐다. 이는 당시 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나무들의 굵은 줄기와 낮게 뻗은 가지에는 강변 숲이 그간 맡아 온 역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동 송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이곳의 소나무들은 척박한 모래땅에 뿌리를 내린 채 긴 세월을 견뎌왔다. 굽고 휜 형태는 그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숲 안으로 들어서면 강변의 햇빛과 바람이 나무 사이로 걸러지고 짙은 솔향이 번진다. 바로 앞에는 섬진강 물줄기와 넓은 백사장이 맞닿아 있다. 이처럼 맑은 강물과 흰모래,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덕분에 하동은 예부터 ‘백사청송’과 ‘백사청죽’의 고장으로 불렸다. 하동송림은 이러한 역사적·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민들의 일상을 품어온 소나무 숲과 백사장

하동송림은 재해를 막아주는 방풍림이자 주민들의 휴식처다. 과거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던 시기에는 마을 여성들이 모여 화전놀이를 즐기던 장소였다. 숲 앞 백사장은 섬진강 하구의 지형적 특성상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밀려들고 빠져나간다. 덕분에 여름철에는 시원한 강수욕장 역할을 한다.

하동 송림공원 분수대 꽃무릇 / 경상남도 하동군-공공누리

오늘날 하동송림은 입장료 없이 상시 개방되어 주민과 방문객이 언제든 쉬어 갈 수 있는 공공의 쉼터로 이용된다.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 백사장에서 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액운을 쫓는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이어지는 길

하동송림에서 섬진강 물길을 따라 상류로 이동하면 지리산과 들판이 만나는 악양면 평사리에 닿는다. 이곳에는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을 재현한 '최참판댁'이 있다. 평사리의 넓은 들판인 무딤이들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조성된 최참판댁은 조선 후기 양반가의 주거 형태를 고증해 복원한 한옥 군락이다.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사랑채, 안채, 별당채, 행랑채, 사당이 짜임새 있게 늘어서 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머물며 손님을 맞던 곳이었고, 안채는 안주인의 거처이자 집안 살림의 중심이었다. 별당채와 행랑채, 사당까지 이어지는 배치는 당시 주거 문화와 신분 질서를 보여준다. 기와지붕의 곡선과 나무 기둥의 질감도 전통 한옥의 멋을 더한다.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는 평사리 들판은 최참판댁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다. 계절에 따라 들판의 색이 달라지며, 뒤로는 지리산 능선이 이어진다. 주변에는 소설 속 평민들의 초가집, 주막, 디딜방아 등이 재현되어 있어 조선 후기 생활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속 배경을 따라 걷는 길은 실제 들판과 한옥, 마을 풍경으로 이어지며 하동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한다.

영호남을 잇는 화개장터

섬진강을 따라 더 상류로 올라가면 하동군과 전남 구례군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 자리한 '화개장터'는 화개천이 섬진강 본류와 만나는 길목에 형성된 전통 시장이다.

과거 교통과 물류가 발달하기 전, 화개장터는 남해안에서 출발한 돛배들이 소금, 미역, 생선 등을 싣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닿던 곳이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채취한 약초와 고사리 등 산나물, 목공예품도 장터에 모였다. 산과 바다의 물산이 오가던 이곳은 영호남 유통의 중심지였다.

화개장터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화개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물건을 사고팔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었다. 오늘날에는 현대적 상가 형태로 정비되었지만, 영호남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 안에서는 지리산 일대에서 나는 약재와 산나물, 하동의 농특산물을 만날 수 있다. 두 지역의 문화가 교차하는 풍경은 이곳의 위치와 분위기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지리산 기슭에서 이어진 하동 차 문화

하동은 우리나라 전통 차 문화의 맥을 이어온 대표적인 차의 고장이다. 특히 화개면 일대는 삼국시대에 당나라에서 들여온 차나무 씨앗을 왕명으로 처음 심은 차 시배지다. 섬진강과 화개천이 가까워 안개가 자주 끼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며, 자갈과 모래가 섞인 토양이 어우러져 차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화개동천 야생차밭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하동의 차 재배는 평지를 넓게 개간해 줄을 맞춰 심는 방식과 다르다. 지리산의 가파른 산비탈과 바위틈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야생 차밭을 가꾸며 명맥을 이어왔다. 경사가 심해 대형 기계로 수확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어린 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딴다.

수확한 찻잎은 뜨거운 가마솥에서 여러 차례 덖고 멍석 위에서 비비는 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하동 녹차는 떫은맛이 적고 첫맛은 구수하며 뒷맛은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하동의 전통 야생차 농업은 지형과 생태를 보전하며 이어 온 가치를 인정받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섬진강이 키운 재첩과 참게

하동의 음식 문화는 섬진강 물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의 기수역은 재첩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하동 재첩은 일반 민물조개보다 크기는 작지만, 거센 유속을 견디며 자라 속살이 알차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하동 어민들은 긴 장대 끝에 갈퀴가 달린 거랭이로 배 위에서 강바닥을 긁어 재첩을 채취한다. 이렇게 잡은 재첩은 맑은 물에 담가 해감한 뒤, 껍질째 푹 삶아 재첩국을 끓여낸다. 천일염으로 간을 맞추고 송송 썬 부추를 올려 마무리한 재첩국은 뽀얗고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이 외에도 회무침이나 전 등으로 다양하게 상에 오른다.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섬진강의 또 다른 별미는 참게탕이다. 참게는 가을철 산란기를 앞두고 바다로 내려갈 때 살이 가장 잘 오르고 맛도 깊어진다. 섬진강 참게는 일반 참게보다 껍질이 단단하며,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고소한 향을 자랑한다.

참게탕은 손질한 참게를 통째로 넣고 시래기, 무, 대파 등 채소를 더한 뒤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끓인다. 여기에 생들깨를 갈아 거른 들깻물을 육수로 부어 국물을 걸쭉하고 진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낸 탕은 깊은 국물과 참게 속살의 고소함이 조화를 이룬다. 신선한 참게를 간장 양념에 숙성한 참게장 역시 하동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들은 섬진강의 풍요로움을 맛으로 증명하는 요리들로, 하동 여행의 깊이를 더해주는 별미다.

하동 송림공원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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