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흐름이 이어지면서 아시아 주요 통화가 흔들리고 있다. 원화는 한 달 넘게 달러당 1,500원대에 머물고 있고, 엔화는 40년 만의 '수퍼 엔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인도네시아 루피아, 태국 바트, 필리핀 페소 등 동남아 통화도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2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6월 30일까지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7.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 루피아(-7.0%), 태국 바트(-5.6%), 필리핀 페소(-3.8%), 일본 엔화(-3.3%)보다 낙폭이 컸다.
이날 원·달러 환율도 1,555.8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 가치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아시아 통화의 동반 약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당시 동남아 국가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달러에 묶어두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했지만, 강달러가 이어지면서 통화가 고평가됐다.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 태국 바트화가 투기 공격에 무너졌고, 위기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확산됐다.
이번에도 기본 배경은 강달러다.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25일 101.7까지 오르며 1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달러 강세가 재차 부각됐다.
다만 현재의 외환시장 구조는 1990년대 후반과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1997년 당시에는 고정환율제, 단기 달러 외채, 부족한 외환보유액이 겹치며 아시아 외환시장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반면 지금은 대부분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어 환율이 대외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하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위험은 금융시스템 붕괴보다는 고환율과 고유가가 맞물린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경우 5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70억 달러로, 외환위기 당시 300억~400억 달러 수준의 10배를 웃돈다. 다만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유출, 엔저 동조화 등이 원화 약세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아 통화 가운데 중국 위안화는 상대적으로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위안화는 중국 인민은행(PBOC)의 영향권 아래 관리변동환율제를 적용받는 데다, 수출 호조와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기대감 등이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달러 대비 역내 위안화 환율은 지난 1일 6.7948위안으로, 지난해 말보다 약 3% 하락했다. 환율 하락은 위안화 가치 상승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시장의 불안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장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약한 고리로 지목하고 있다. 국가 주도 경제정책과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원유 수출국이지만 정제유를 수입하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기에는 경상수지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외환보유액은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었고, 증시는 올해 들어 약 29% 급락했다.
일본의 수퍼 엔저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미·일 금리 차가 확대된 가운데 엔화를 빌려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가 이어지면서 엔화 약세가 심화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6월 말 장중 162엔을 넘어서며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엔저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통화 전반에도 추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엔저 심화로 아시아 통화 전반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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