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올해 상반기 K뷰티가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화장품 수출액이 처음으로 70억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상반기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3% 증가한 성과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주력 산업에 가려졌던 화장품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일 발표한 잠정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70억달러로 집계됐다. 우리 돈으로 약 11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상반기 기준 수출액이 7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0억달러 수준이었던 시장이 단기간에 크게 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상반기 기준 화장품 수출액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40억달러대에 머물렀고, 2024년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55억달러로 크게 뛰어오른 데 이어 올해는 다시 70억달러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2년 사이 수출 규모가 15억달러씩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분기별 흐름도 긍정적이다. 올해 1분기 화장품 수출액은 31억달러였지만 2분기에는 39억달러로 늘었다. 한 분기 만에 25.8% 증가한 것이다. 상반기로 갈수록 수출 증가세가 더욱 강해졌다는 점은 하반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키우고 있다.
수출 시장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올해 상반기 미국 수출액은 14억5천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20.7%를 차지하며 최대 시장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억3천만달러가 늘어난 규모다. 과거 중국 중심이었던 K뷰티의 해외 시장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은 10억1천만달러로 전체의 14.4%를 기록하며 두 번째 시장이 됐다. 일본 역시 5억8천만달러, 전체의 8.3%를 차지하며 안정적인 소비 시장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특정 국가에 집중됐던 수출 구조가 점차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은 산업의 안정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제품별로는 기초화장품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상반기 기초화장품 수출액은 54억8천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이어 색조화장품이 7억2천만달러, 인체세정용 제품이 3억4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피부 관리 중심의 K뷰티 경쟁력이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가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통해 한국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숏폼 플랫폼을 통한 제품 홍보가 세계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전달되면서 K뷰티의 접근성도 크게 높아졌다.
국내 화장품 산업의 생산 기반도 경쟁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ODM·OEM 기업들이 제품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고, 다양한 인디 브랜드들이 빠르게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해외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취향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다. 과거 대기업 중심이던 시장이 중소 브랜드까지 성장하는 구조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 기록은 새로 썼지만…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상 최대 수출이라는 성적표만으로 K뷰티의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화려한 수출 실적 뒤에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함께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최대 수출 시장으로 성장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특정 국가 비중이 계속 커질 경우 현지 경기 침체나 소비 둔화, 통상 정책 변화에 따라 수출 실적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함께 커질 수 있다.
중국 시장 역시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한동안 K뷰티의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에서는 현지 브랜드의 품질 향상과 애국 소비 확산, 소비 트렌드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과거처럼 한국 브랜드가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 경쟁력도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한국 화장품은 품질과 제조 기술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글로벌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를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대표 브랜드는 아직 제한적이다. 제조 경쟁력을 넘어 브랜드 자체의 가치와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가격 경쟁 역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해외 판매가 확대되면서 한국 브랜드끼리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할인 판매와 가격 인하 경쟁이 반복될 경우 수출 규모는 증가해도 기업들의 수익성은 기대만큼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규제 강화도 새로운 도전이다. 국가마다 화장품 성분 규제와 안전 기준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으며 친환경 포장, ESG 경영, 원료 투명성 등 새로운 기준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쟁력 격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 70억달러라는 기록은 한국 화장품 산업이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K뷰티는 이제 한류를 따라가는 소비재를 넘어 독자적인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 소비시장에서도 존재감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기록 자체가 아니라 성장의 지속 가능성이다. 시장 다변화와 브랜드 경쟁력 강화, 연구개발 투자, 프리미엄 제품 확대가 함께 이뤄질 때 지금의 수출 호조는 일시적인 호황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상 최대 수출이라는 성적표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력은 기록을 한 번 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새로운 기록을 이어가는 데 있다. K뷰티가 지금의 70억달러 시대를 넘어 세계 화장품 시장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브랜드 가치와 기술 혁신, 시장 다변화라는 과제를 얼마나 충실히 해결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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