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전기를 먹는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2년 460TWh에서 2026년 1,000TWh를 넘어선다. 미국만 해도 2023년 전체 전력의 4.4%였던 데이터센터 소비가 2028년 12%로 세 배 가까이 뛴다. 전기가 부족하다.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돈이 몰린다.
시장의 첫 번째 시선은 원전 시공 실적을 가진 현대건설, 대우건설로 향했다. 주가가 먼저 반응했다.
그러나 에너지 인프라 슈퍼사이클의 진짜 수혜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전소를 짓고 나오는 회사가 있고, 발전소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며 전기를 파는 회사가 있다. 시공 수수료를 받는 회사와 수십 년간 현금을 버는 회사의 차이다.
DL그룹은 두 번째 자리에 있다.
미국에서 이미 전기를 팔고 있다
DL에너지는 미국 최대 경쟁 전력 시장인 PJM 권역에서 가스복합 발전소를 직접 투자하고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민간 에너지 디벨로퍼다.
나일즈 발전소(미시건주, 1,085MW)는 2019년 개발 단계부터 지분을 넣어 직접 건설하고 상업운전까지 주도했다. 페어뷰 발전소(펜실베이니아주, 1,055MW)는 2022년 지분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합산 2GW가 넘는 고효율 자산이 PJM 시장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PJM 용량시장이 지금 폭발하고 있다.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언제든 생산할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는 것만으로 받는 요금이 있다. 이것이 용량 요금이다. 2024~2025년 MW-day당 28.92달러였던 이 가격이 2026~2027년 329.17달러로 1,038% 폭등했다. 2027~2028년에는 333.44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과 기존 발전소 퇴역이 맞물린 결과다.
DL에너지는 추가 자본 지출 없이 이 가격 폭등의 수혜를 그대로 흡수한다. 이미 지어진 발전소가 현금을 벌어들이는 구조다. 국내 포천파워(1,560MW)까지 합산하면 연간 EBITDA 1,000억 원 이상이 안정적으로 쌓인다.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가 DL에너지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동시 상향한 이유다.
숫자로 확인됐다. DL㈜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1,129억 원. 전 분기 대비 858% 급증. DL에너지와 DL케미칼이 이끈 결과다.
SMR 설계를 직접 쥐고 있다
2026년 3월, DL이앤씨가 미국 엑스에너지(X-Energy)로부터 1,000만 달러 규모의 SMR 표준화 설계 사업을 수주했다. 국내 건설사 최초다.
표준화 설계는 발전소의 원자로와 설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작동할지 뼈대를 잡는 작업이다. 이 설계를 장악하면 이후 발주되는 모든 후속 프로젝트의 시공 방식을 주도한다. 시공사가 아니라 기술 표준을 정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엑스에너지의 기술은 기존 원전과 다르다. 물 대신 섭씨 900도 이상의 헬륨가스를 냉각재로 쓰는 4세대 고온가스냉각로(HTGR) 방식이다. 헬륨은 방사능을 띠지 않아 방사성 폐기물 리스크가 극히 낮다. 냉각탑이 필요 없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옆에 바로 지을 수 있다.
최근 미국 NRC가 이 기술의 건설 허가 신청에 간소화된 환경영향평가를 적용해 조기 승인했다. 미국 상업용 원전 역사상 최초의 규제 간소화 통과 사례다.
아마존이 엑스에너지에 5GW 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영국 센트리카는 6GW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엑스에너지가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DL이앤씨가 2023년 시리즈C에 투자했던 지분 가치는 300억 원에서 1,720억 원으로 3년 만에 6배 가까이 뛰었다.
DL이앤씨는 SMR 전담 인력을 80명으로 늘리고 이 중 30여 명을 표준화 설계 사업에 직접 투입했다. 완성된 설계는 2030년 초도호기를 시작으로 엑스에너지의 모든 글로벌 프로젝트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암모니아, 수소, 발전 닫힌 고리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원전에서 멈추지 않는다.
DL이앤씨는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암모니아 공장을 연이어 수주하고 준공했다. 총 8억 9,200만 달러 규모, 하루 3,300톤을 생산하는 플랜트다. 수소 경제의 핵심 운반체인 암모니아 플랜트 실적이 이미 있다.
탈탄소 자회사 카본코(CARBONCO)는 호주 남호주 주 정부와 친환경 수소 공급망 구축 협약을 맺었다. 국내에서는 5,500억 원 규모 동제주 복합발전소를 단독 수주했다. 미국에서는 텍사스주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사업(약 1조 7,000억 원)에 참여 중이다.
그룹 안에서 역할이 나뉜다. DL에너지가 사업을 개발하고 금융을 조달하고 발전소를 운영한다. DL이앤씨가 설계하고 짓는다. ㈜대림이 연료를 트레이딩하고 기자재를 운송한다. DL케미칼이 미국 현지 운영 노하우를 제공한다.
DL케미칼은 2022년 미국 석유화학 기업 크레이튼(Kraton)을 약 1조 8,800억 원에 인수했다. 전 세계 13개 생산공장과 800여 개 특허 기술을 가진 회사다. 이 인수로 DL그룹은 미국 현지에서 화학·에너지 플랜트를 운영하고 인력을 관리하는 소프트파워를 내재화했다.
개발에서 시공, 운영, 물류까지 그룹 안에서 닫힌 고리가 완성됐다.
재무가 뒷받침한다
DL이앤씨는 8년 연속 건설업계 최고 수준인 AA-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부채비율 87.5%, 순현금 1조 3,000억 원. 2024년 4분기 매출 2조 4,388억 원, 영업이익 941억 원으로 턴어라운드했다. 연간 신규 수주 9조 4,805억 원으로 목표 가이던스를 초과 달성했다.
DL㈜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858% 급증. 에너지와 화학 자회사들이 이끈 결과다. 시장은 이 그룹을 아직 건설주로 분류하고 있다. 부동산 PF 리스크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그러나 미국 PJM 전력 시장에서 2GW 발전소를 운영하는 회사를, 4세대 SMR 표준화 설계를 수행하는 회사를, 사우디에서 암모니아 플랜트를 준공한 회사를 부동산 건설사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다른 회사를 보는 것이다.
대미투자특별법이 더한 것
2026년 6월 18일 대미투자특별법이 전면 시행됐다. 연간 최대 200억 달러 한도, 총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정부가 지원하는 법정 체계다.
핵심은 '상업적 합리성'이다. 초대 위원장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정부 지원이 단순 시공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국에서 장기 운영 수익을 창출하고 핵심 기술을 국내 공급망에 환류시킬 수 있는 사업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분 투자, 금융 조달, 기술 표준화, 운영. 이 네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회사가 정부 지원의 우선 대상이 된다.
DL그룹은 그 자리에 이미 서 있다.
에너지 인프라 슈퍼사이클은 시공사를 부르지 않는다. 사업을 기획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짓고, 운영하는 회사를 부른다. DL그룹이 그 자리를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이 빛나고 있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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