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현대차 RD 달라진 공식, 차보다 먼저 달리는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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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현대차 RD 달라진 공식, 차보다 먼저 달리는 데이터

프라임경제 2026-07-02 10:13:45 신고

[프라임경제] 자동차 개발의 승부처가 실차 이전 단계로 당겨지고 있다. 과거에는 신차를 만들고, 달리고, 고치고, 다시 시험하는 과정이 개발의 중심이었다. 이제는 차가 나오기 전 가상 도로 위에서 주행 감각을 조율하고, 데이터로 조립 품질을 추적하며, 설계 파일만으로 부품을 만들고, 실차 없이 전장 시스템의 오류를 걸러낸다.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000270)는 이런 변화에 맞춰 남양기술연구소의 디지털 R&D 체계를 앞세우고 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커넥티드 기술이 동시에 고도화되면서 자동차는 더 복잡한 제품이 됐다. 특히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대에는 차량을 구성하는 전기·전자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구조가 과거보다 훨씬 치밀해졌다.

신차 개발의 경쟁력은 더 많은 기능을 넣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능들이 실제 차 안에서 충돌 없이 작동하도록 검증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최근 변화에는 디자인과 상품성, 전동화 전략의 성과와 함께 개발 방식의 전환이 맞물려 있다. 좋은 차를 기획하는 역량에, 오류를 빨리 발견하고 정밀하게 줄이는 역량이 더해지고 있는 셈이다.

◆실차 이전에 달리는 개발 체계

가상 검증은 달라진 개발 체계의 출발점이다. 현대차·기아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실제 도로와 차량을 가상 공간에 구현하고, 시작차(Prototype) 없이도 주행성능을 평가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차 개발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요소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모든 변수를 실차 제작 이후에 검증하는 방식은 속도와 비용 모두에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로 주행 성능을 평가 중인 연구원의 모습. ⓒ 현대자동차
개발 순서도 달라진다. 차량이나 부품의 특성을 가상 환경에 입력하면 곧바로 주행 평가가 가능해지고, 실차 평가와 시뮬레이터 평가를 반복 검증할 수 있다. 주행성능을 실차가 나온 뒤 다듬는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고, 개발 초기부터 조율 가능한 데이터 영역으로 끌어온 것이다.

현대차·기아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전후·좌우·상하 움직임과 롤(Roll), 피치(Pitch), 요(Yaw)를 구현하는 6자유도(6DOF) 모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270도 곡면 스크린과 양산 부품을 적용한 콕핏은 실제 운전 환경에 가까운 조건을 만든다.

핵심은 현실 도로를 얼마나 정밀하게 옮겼느냐다. 현대차그룹은 남양기술연구소의 주행시험장을 1㎜ 단위로 스캔해 노면 경사와 요철, 과속방지턱, 아스팔트 질감까지 가상 공간에 옮겼다. 또 노면에서 전달되는 최대 40Hz의 미세 진동까지 재현한다. 가상 검증이 화면 속 주행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주행 감각을 개발 초기 단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외관. ⓒ 현대자동차
전기차는 파워트레인 구조가 달라졌고, 고성능차는 더 정교한 차체 제어를 요구한다. 자율주행과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는 다양한 주행 조건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날씨, 노면, 부품 세팅을 실제 도로에서만 검증하는 방식으로는 개발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가상 검증은 개발기간을 줄이는 수단인 동시에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감각 품질을 좌표값으로 바꾸다

소비자가 자동차의 품질을 느끼는 방식은 섬세하다. 도어를 닫을 때의 감각, 외관 패널 사이의 간격, 주행 중 들리는 잡소리, 비가 올 때의 수밀성 같은 요소들이 쌓여 차의 완성도를 판단하게 만든다. 운전자는 이를 '마감이 좋다'거나 '차가 단단하다'는 말로 받아들이지만, 개발 단계에서는 이 감각이 좌표값과 편차, 거리, 평행도, 변형량으로 쪼개진다.

현대차·기아의 디지털 측정 센터(Digital Measuring Center, 이하 DMC)는 이 지점을 겨냥한다. DMC는 외관 품질,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수밀, 기능 및 조립성을 주요 검증 항목으로 삼고 차량 치수 품질을 데이터로 관리한다. 차량의 치수 오차는 단차나 고급감 저하에 그치지 않고 소음, 누수, 조립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광학식 3D 스캐너로 수치 측정을 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차 한 대를 구성하는 부품은 서로 맞물려 품질을 만든다. 특정 부품 하나의 치수가 기준 안에 들어와도, 조립 과정에서 누적 오차가 발생하면 최종 품질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개별 부품의 측정값과 함께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추적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DMC는 바디 스트럭처부터 후드, 도어, 테일게이트 같은 무빙 부품까지 측정 범위를 넓힌다. 차체 한 대당 측정 포인트는 약 1000개, 평가 항목은 약 600개로 구성된다. 3차원 측정장비 CMM(Coordinate Measuring Machine), 광학식 3D 스캐너, 로봇 암 등을 활용해 조립 전후의 품질을 확인한다.

도어나 테일게이트 같은 무빙 부품은 움직이는 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드러난다. 문을 닫는 순간 고무류와 힌지, 차체 구조가 함께 반응하고, 이때 발생하는 미세한 변형이 소음이나 수밀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DMC는 초고속 카메라와 센서를 활용해 초당 500회의 속도로 순간 변형량을 계측한다.

포터블 3D 스캐너로 형상을 측정하는 연구원의 모습. ⓒ 현대자동차
품질 관리는 오랫동안 제조업의 기본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SDV와 전동화 시대의 품질은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차체 정밀도, 소음, 수밀성, 전장 기능, 조립성은 각각 떨어진 항목처럼 보여도 소비자에게는 하나의 상품성으로 다가온다. 현대차그룹이 디지털 측정 체계를 키우는 일은 품질을 개발 과정 전체의 데이터 흐름으로 관리하려는 움직임이다.

◆부품 개발 속도를 바꾸는 제조 방식

적층 제조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흔히 3D 프린팅으로 불리는 적층 제조는 재료를 한 층씩 쌓아 부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현대차·기아의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dditive Manufacturing Solution Center, 이하 AMSC)는 설계 데이터만으로 금형 없이 다양한 형상의 부품을 제작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존 제조 방식에서 금형은 개발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였다. 부품 형상을 바꾸려면 금형 제작과 수정에 시간이 걸렸고, 개발 초기의 시행착오 비용도 커졌다. 반면 적층 제조는 설계 변경을 더 빠르게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연다. 부품을 만들기 위해 생산 체계를 곧바로 움직이는 대신, 설계 데이터에서 출발해 필요한 형상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WAAM 장비가 금속을 적층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AMSC의 의미는 시제품 제작 속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액상 레진을 자외선으로 경화시키는 폴리머 광중합 방식은 정밀한 형상 구현에 강점이 있고,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는 WAAM(Wire Arc Additive Manufacturing) 방식은 대형 구조물이나 일체형 부품 제작에 활용된다.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쌓는 금속 분말 용융 방식은 주조나 프레스 공법으로 만들기 어려운 복잡한 형상에 대응한다.

플라스틱 분말을 다루는 폴리머 분말소결 방식은 지지대가 필요 없어 후처리 공정과 재료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증기 평탄화 처리를 거치면 사출 부품에 가까운 표면 품질도 확보할 수 있다. 적층 제조의 활용 범위가 헤리티지 차량 복원,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 단종 모델의 A/S 부품 공급까지 넓어지는 이유다.

자동차 산업은 대량 생산의 효율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미래차 시대에는 다품종, 고성능, 커스터마이징, 사후 부품 공급까지 함께 대응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적층 제조를 R&D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개발 속도와 제조 대응력을 함께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SDV 시대, 검증이 상품성을 좌우한다

전장 검증은 이번 변화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이다. SDV 시대의 자동차는 더 많은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 그러나 기능이 늘어날수록 차량 내부의 제어기, 통신, 전원, 센서 간 관계는 복잡해진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코드를 넣는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백 개 장치가 연결된 환경에서 오류를 줄이고, 기능 간 충돌을 사전에 잡아내는 검증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액상 레진을 경화시켜 적층제조를 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현대차·기아의 노바 랩(Next-generation Open Validation & Automation Lab, 이하 NOVA Lab)은 이 문제를 다루는 전장 검증 체계다. 대형 차종의 경우 제어기와 전장 부품은 300~500개, 와이어링 커넥터는 500개에 이른다. 와이어카(Wire-car)는 시험차가 제작되기 전 차량 전체의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연결해 기능과 통신, 진단을 검증하는 플랫폼이다.

이 구조는 SDV 시대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 자동차가 소프트웨어로 진화한다는 표현은 쉽지만, 실제 개발 단계에서는 수많은 제어기와 기능이 얽히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공조, 램프, 시트 같은 기본 기능부터 ADAS, 통신, 전원 체계까지 하나의 차량 안에서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기능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보다 여러 기능이 동시에 작동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NOVA Lab은 회로, 통신, 기능, 진단을 중심으로 검증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공조와 램프, 시트 등 주요 기능의 정상 작동 여부를 자동으로 확인한다. 저전압과 과전압 같은 가혹 조건을 모사해 전원 변화에 따른 문제도 검증한다. 와이어카 단계에서는 실차가 완성된 뒤 접근하기 어려운 제어기와 회로를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제어기와 기능 검증을 위해 제작된 와이어카의 모습. ⓒ 현대자동차
주행 조건과 ADAS 검증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와이어카만으로는 타이어와 차량 하중, 노면 마찰력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NOVA Lab은 차량 구동 부하 장치와 토크 휠 다이나모미터(Torque Wheel Dynamometer)를 활용해 실차에 가까운 주행 조건을 만든다. 

여기에 레이더 신호를 생성하는 RTS(Radar Target Simulator)와 가상의 주행 이미지를 차량 카메라에 제공하는 ADAS 시뮬레이터를 더해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후측방 충돌 경고(BCW), 차로 유지 보조(LFA/LKA), 전방 충돌 방지 보조(FCA) 같은 기능을 실차 이전 단계에서 확인한다.

SDV 전환은 차량의 전기·전자 구조 자체도 바꾸고 있다. 기능별로 흩어져 있던 제어기는 고성능 컴퓨터 기반의 존(Zone) 제어로 통합되고, 전원 체계는 기존 12V에서 48V로 이동한다. 통신 방식도 CAN에서 고속 이더넷으로 바뀌고 있다. 차량 내부의 전원과 통신 체계가 달라지면 기존 방식만으로는 전체 시스템을 온전히 검증하기 어렵다.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 검증을 하는 연구원의 모습. ⓒ 현대자동차
NOVA Lab은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동안 와이어카 단계에서 평균 150~200건의 문제점을 찾아낸다. 이 수치는 미래차 개발에서 검증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오류가 시장에서 발견되면 리콜, 소비자 불만, 브랜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개발 단계에서 오류를 많이 발견할수록 양산차의 완성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은 한동안 전동화 속도와 주행거리, 충전 성능,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설명돼왔다. 하지만 미래차 경쟁이 깊어질수록 승부처는 더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화려한 기능보다 그 기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개발 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R&D 체계도 이 흐름에 맞춰 실차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차가 완성된 뒤 문제를 고치는 방식에서 차가 나오기 전 문제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개발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완성도는 공장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개발 초기의 검증, 반복 가능한 데이터,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는 추적성이 완성차의 품질과 상품성을 좌우한다. 미래차 경쟁에서 중요한 속도는 출시 시점만이 아니다. 차가 나오기 전 얼마나 많이 달려보고, 얼마나 빨리 오류를 찾고, 얼마나 정밀하게 고치느냐가 새로운 속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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