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타고 흐르는 박혜상의 목소리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시대를 타고 흐르는 박혜상의 목소리

노블레스 2026-07-02 10:00:00 신고

로즈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비 드 쇼메 이어링, 네크리스, 링, 브레이슬릿,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브레이슬릿 모두 CHAUMET, 화이트 톱 FERRAGAMO

어떤 노래는 한 시대를 대표하고, 어떤 노래는 시간을 건너 살아남는다. 수백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오늘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적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소프라노 박혜상은 오래전부터 그 질문을 품어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베를린 국립오페라,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며 도이치 그라모폰 최초의 아시아 소프라노 전속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그는 오는 7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한국가곡 연대기>를 선보인다. 신라 향가 ‘찬기파랑가’부터 김순남의 ‘산유화’, 현대 한국 가곡과 서양 가곡에 이르기까지 약 1200년의 시간을 하나의 무대 위에 펼쳐놓는 공연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한국 가곡의 역사를 되짚는 작업이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무엇을 노래했고,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한국 가곡이 품은 여백과 숨, 언어와 음악의 관계, 그리고 음악이 결국 무엇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박혜상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리사이틀 <한국가곡 연대기>는 신라 향가부터 현대 한국 가곡까지 약 1200년의 시간을 아우릅니다. 단순히 음악사를 정리하는 공연이라기보다 인류가 살아온 시간 속에 존재해온 인간의 감정을 따라가는 여정처럼 보여요. 저는 늘 음악을 시대와 함께 바라보려 해요. 어떤 곡을 공부하면 그 곡이 만들어진 시대를 함께 들여다보는 편이죠. 음악은 역사나 문화와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봐요.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고,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요. 유럽에서 생활하고 공연하면서 그런 경험을 특히 많이 했어요. 중세 건축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늘 경이로웠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제가 배우는 이 음악이 만들어질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감정을 노래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어요. 저는 그게 늘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은 역사를 설명하려는 작업이라기보다 시간을 따라가며 그 안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보려는 시도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공연의 시작을 ‘찬기파랑가’로 열고, 2부 시작은 김순남의 ‘산유화’가 맡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상징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찬기파랑가’는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작품이에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기록된 노래잖아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보다 훨씬 오래된 언어로 남겨진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경이롭기도 해요. 그 시대 사람들도 누군가를 존경하고, 그리워하고,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산유화’ 역시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곡이에요. 김순남 선생님의 작품은 한동안 정치적 이유로 자유롭게 연주되지 못했지만, 음악은 그 시간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죠. 그리고 시대가 바뀌면서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왔고요. 저는 그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이라는 것이 결국 시대를 초월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보여주니까요.

도이치 그라모폰 최초의 아시아 소프라노 전속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꾸준히 한국 가곡을 소개해왔습니다. 처음 한국 가곡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저만큼 한국 가곡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독일 가곡을 부를 때는 늘 독일어의 한계를 체감하고, 프랑스 가곡을 부를 때는 프랑스어의 벽을 마주하곤 해요. 아무리 공부해도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지닌 감각까지 완전히 따라갈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한국어는 달라요.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감정이 있고,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정서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국 가곡을 부를 때는 음악 이전에 언어 자체가 이미 제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아마도 그런 부분이 저를 계속 한국 가곡으로 이끌었나 봐요.

로즈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비 드 쇼메 이어링, 네크리스, 링, 브레이슬릿,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브레이슬릿 모두 CHAUMET, 블랙 드레스 MAISON MARGIELA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한국 가곡의 특징이 있었나요? 여백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데도 더 깊고 오래 남는 감정이 있거든요. 서양 가곡은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어요. 화성도, 형식도 그렇고요. 반면, 한국 가곡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들릴 때가 많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단순함 안에 매우 넓은 공간이 존재해요. 저는 그 지점이 흥미롭고요. 한국 가곡은 모든 감정을 말하지는 않아요. 슬픔도 절규하기보다 스며들고, 사랑도 과장하기보다 머물러 있죠.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고,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러한 여백이야말로 한국 음악의 아름다운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여백 속에서 듣는 사람들은 각자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채워 넣을 수 있죠.

여백과 호흡은 박혜상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앨범 에서도 그렇지만, 음악 안에서 호흡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예전에는 호흡을 기술적인 문제로만 본 것 같아요. 더 길게 노래하기 위해 필요한 것,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 정도로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어요. 결국 노래는 언어와 연결되어 있고, 언어는 호흡에서 시작되더라고요. 특히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그런 점을 많이 깨달았어요. 저는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한국어 방식으로 발음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소리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기보다 계속 조작하고 있었어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발성과 언어, 그리고 숨이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요. 한국 가곡을 연구하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가곡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독일 가곡이나 프랑스 가곡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거예요. 결국 음악은 언어를 넘어 사람의 숨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지금은 호흡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음악과 언어, 그리고 감정을 이어주는 가장 근원적 요소로 바라봅니다.

이번 공연에는 대금과 첼로가 함께합니다. 전통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으로 읽히는 대목이에요. 크로스오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요. 뭔가를 섞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겠다는 접근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이번 공연에서 중요한 점은, 서로 다른 음악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질을 존중하는 데 있어요. 저는 성악가로서 성악의 언어를, 대금은 대금만의 언어를 지켜야 하죠. 제가 대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는 한국을 대표하는 악기 중 하나가 대금이라고 보거든요. 숨이 들리고, 여백이 들리는 악기라는 점에서 굉장히 한국적이라고 느낍니다. 반면,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악기 중 하나예요. 서로 다른 언어를 지닌 악기들이 만나지만, 결국 같은 감정을 향해 나아가죠. 이번 무대는 그 언어들이 어떻게 하나의 정서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시도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해외 무대에서 한국 가곡을 들려줄 때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요. 언어적 장벽을 크게 느끼지는 않나요? 저는 음악이 언어를 뛰어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우리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들을 때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도 감동을 받고 울기도 하죠.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언어만이 아니라 음악에 담긴 감정과 에너지인 것 같아요. 해외 관객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요. 한국 가곡이라고 해서 특별히 낯설어하거나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하나의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만나죠. 오히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음악이라는 예술이 훨씬 본질적인 방식으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언어와 문화를 넘어 전달되는 뭔가가 존재하는 것처럼요.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조세핀 아그레뜨 이어링, 펜던트, 링, 플래티넘 소재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조세핀 아그레뜨 솔리테어 링, 스테인리스스틸에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조세핀 아그레뜨 워치 모두 CHAUMET, 드레스 AKRIS, 슈즈 GIANVITO ROSSI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저는 무대 위에서 저 자신이 덜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무대 위에 오르면 제가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 지나가는 통로가 된 것처럼요. 제가 너무 앞에 나서면 오히려 음악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관객들이 박혜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으면 좋겠어요. 제가 부르는 노래와 작곡가를 만나고, 가사를 곱씹고, 그 곡에 담긴 정서를 경험하면 좋겠어요. 그것이야말로 좋은 음악가의 역할이 아닐까요. 제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했을 때 감정은 음악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 부디 오롯이 음악을 즐기면 좋겠어요.

지금의 박혜상에게 좋은 목소리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좋은 목소리는 뛰어난 테크닉에서 기인한다고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좋은 목소리는 결국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테크닉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요. 물론 그 뒤에는 엄청난 훈련이 있어야겠죠.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 노력을 느끼지 못해야 해요. 정말 위대한 음악가들을 보면 굉장히 자유로워 보여요.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훈련한 사람들이죠. 저는 그런 상태를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기술은 존재하지만, 기술만 남지 않은 상태요.

노래란 결국 무엇을 연결하는 행위인가요? 노래뿐 아니라 음악 전체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거대한 에너지와 연결되는 행위 같아요.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잖아요.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나고, 전율이 일고. 지금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는데, 분명 뭔가 움직이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그게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음악은 결국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심오한 차원의 에너지와 연결되는 경험 같아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을 넘어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하고, 더 큰 세계와도 연결해주는 예술인 셈이죠.

세계 여러 무대에서 활동하지만, 한국 공연이 여전히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감사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한국에는 저를 오래전부터 지켜봐주신 분도 많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응원해주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 공부하고 공연하며 쌓아온 것을 기반으로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하고 보여드려야 하는 것처럼 다가올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부담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런 기대가 저를 더 성장하게 만드니까요.

“지금의 박혜상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이라고 하신 적이 있더군요. 음악을 포함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그런 생각이 영향을 미치나요? 예전에는 많은 질문을 품고 산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해서도,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했죠. 앨범을 만들 때도 그런 질문을 중심에 두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거든요. 지금 고민하는 것이 영원할 것 같지만, 사람은 계속 변한다고요. 그 말이 점점 깊이 와닿아요. 그래서 이제는 거창한 질문보다 오늘을 어떻게 즐겁게 살아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곱씹게 돼요. 물론 여전히 음악은 중요하고, 더 좋은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도 크죠.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어요. 너무 많은 것을 정의하려 하기보다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지금 저를 움직이는 힘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사랑이라고 답하는 거겠죠. 음악도 결국 사랑해서 하는 일이고, 사람도 사랑해서 만나고, 삶 역시 사랑하기에 계속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Copyright ⓒ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