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현을 켜는 행위는 악기 소리만 의미하지 않는다. 손끝이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무뎌진 감각이 되살아난다. 가야금 앙상블 아랑(A:rang)의 단독 공연 ‘마음을 켜다(On & Play)’는 전통 선율, 25현 가야금, 어쿠스틱 기타를 무대에 올려 관객 내면을 조율하려는 청년 국악 프로젝트다. 송파구 청년예술인 지원사업 ‘2026 더 임팩트’ 선정 무대로, 젊은 예술가들이 국악 현악 편성의 확장성을 시험하는 자리다.
아랑은 가야금 이현경·최연수·양윤정, 김도훈으로 꾸려졌다. 팀은 화려한 기교를 덜어내고 일상에 스며드는 소리를 지향한다. 공연명은 악기를 연주한다는 ‘켜다’와 마음속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겹쳐 둔 표현이다. 현을 뜯는 동작이 감정의 빛을 되살리는 은유로 확장된다. 포스터처럼 네 인물은 사선 구도 안에서 전통 현악과 현대 악기의 대비를 시각화한다. 이현경은 연녹색 옷차림으로 긴 가야금을 들고 밝은 표정을 보인다. 최연수는 보랏빛 의상과 곧게 선 악기 사이에서 정제된 분위기를 풍긴다. 양윤정은 민트색 복식과 환한 얼굴로 부드러운 결을 만든다. 기타 김도훈은 짙은 배경 안에 검은 의상과 청색 배자를 입고, 전체 색채에 무게를 더한다.
아랑의 프로그램은 민요, 산조, 창작곡, 대중음악적 감각까지 폭넓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에 따르면 가야금을 장방형 공명통 위에 안족을 세우고 줄을 걸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현악기로 설명한다. 풍류가야금은 궁중음악과 선비 풍류, 산조가야금은 시나위·산조·병창 등 민속악에 주로 쓰였다. 창작음악에서는 25현 가야금 활용이 넓어졌다. 아랑이 택한 편성은 바로 변화 지점을 파고든다.
첫 곡 ‘비로소’는 이창현이 작곡한 악곡이다. 산조가야금의 절제된 선율과 25현 가야금의 풍성한 화음이 대비를 이룬다. 오래 기다린 끝에 마주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음악으로 경험하게 한다. 느슨한 서정에서 출발해 점차 긴장감을 쌓는 구성이다. 공연 전체의 문을 여는 역할을 맡는다. 제목이 암시하듯, 늦게 도착한 감정이 현의 울림을 거쳐 관객 앞에 선명해지는 첫 문장이다.
두 번째 곡은 ‘脈(맥)’은 김용실 작곡, 김계옥 편곡 작품이다. 거문고 독주곡 ‘출강’의 강인한 음악적 활기를 두 대의 가야금과 기타 중주로 재해석했다. 원곡 ‘출강(出鋼)’은 1964년 북한 작곡가 김용실이 만든 거문고 독주곡이다. 제련소 노동자의 역동성을 담았다. 흥남제련소 노동자의 삶과 제련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악곡이다. 아랑은 쇳물의 에너지와 현악기의 긴 호흡을 연결해 전통 선율에 기타의 현대적 감각을 입힌다.
‘고향의 봄’은 김계옥이 25현 가야금을 위해 작곡했다. 따스한 봄날과 유년의 기억을 한국적 감성으로 풀어낸다. ‘고향의 봄’은 이원수의 초기 동요 작품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노래다. 친숙한 선율은 다양한 주법과 리듬 변화 안에서 넓어진다. 25현 가야금의 넓은 음역은 회상의 빛깔을 풍부하게 만든다.
네 번째 순서는 ‘OST메들리’다. 대중에게 익숙한 영상 음악을 가야금 앙상블 언어로 옮긴다. 전통 기악 공연이 낯설게 다가오는 지점에서 영상 음악은 감상의 입구 구실을 한다. 원곡 기억과 현악 편곡 사이의 간격이 무대 안에서 새 감각을 낳는다. 다섯 번째 ‘장산꽃이야기’는 김계옥 작곡, 김혜림 편곡 작품이다. 바다 끝자락 장산꽃의 고요한 풍경과 파도의 리듬을 그린다. 반복되는 선율과 현의 울림은 자연의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세 악기가 나누는 화음과 응답이 원곡 서정을 입체적으로 펼친다.
여섯 번째 ‘벚노래’는 김새은 작곡, 아랑 편곡 작품이다. 경기민요의 우아한 선율에 빠른 카덴차와 즉흥적 요소를 더한다. 보사노바와 삼바 리듬이 가야금의 맑은 발현과 부딪히며 산뜻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전통 선율이 리듬의 속도와 밝은 타격감을 획득하는 지점이 관전 포인트다. 마지막 ‘아랑의 꿈’은 김계옥이 작곡했다. 경상도 민요 ‘밀양아리랑’을 토대로 삼은 창작곡이다. 아리랑이 품은 그리움과 한, 꿈꾸는 듯한 정서를 25현 가야금의 풍부한 음색으로 표현한다. 넓은 음역과 섬세한 음색 변화는 밀양아리랑의 흥과 애잔함을 한데 불러낸다. 공연의 종착점에서 팀 이름 ‘아랑’은 민요의 기억, 젊은 연주자의 현재, 앞으로 펼칠 음악적 방향까지 포괄하는 상징으로 작동한다.
‘마음을 켜다’는 전통을 설명하기보다 청각의 태도를 바꾸는 자리다. 익숙한 민요는 낯선 편성 속에서 다시 들리고, 산조의 밀도는 25현 화음으로 넓어진다. 기타는 국악기 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온도를 더한다. 가야금 세 대와 어쿠스틱 기타 한 대가 만들어내는 균형은 청년 국악이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형식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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