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여정이 끝내 아쉬운 마침표를 찍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자 수많은 축구 팬들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우려하며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기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뉴스1
대표팀은 지난 12일 체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시작으로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과 차례로 맞붙었으나 세계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첫 경기인 체코전은 대회 전 걱정과 우려를 지워내듯 탄탄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2-1 승리를 거뒀다. 극적인 승리로 토너먼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고조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0-1로 석패한 데 이어 조 최약체로 꼽히던 남아공과의 3차전마저 완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었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은 타국의 경기 결과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였다. 32강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는 9가지 경우의 수 중 단 3개만 적중하면 생존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지만 그 마지막 기적조차 한국을 외면했다. 결국 대표팀은 허무하게 짐을 싸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팬들의 기대치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특히 마지막 남아공전을 지켜본 팬들은 그동안 축구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지적해 온 홍명보 감독의 전술 부재와 지도력 한계에 완전히 분노를 터뜨렸다.
남아공전의 굴욕
남아공전은 선발 라인업부터 파격을 넘어 의아함을 자아냈다. 한국 축구의 전력 그 자체인 주장 손흥민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고 중원의 사령관으로서 유기적인 볼 소유와 날카로운 패스로 공격을 조율하던 베테랑 이재성마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팬들은 깊은 우려 속에서도 선수들을 향한 믿음을 거두지 않고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광화문과 여의도 등 전국 주요 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은 무더운 땡볕 아래서도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이강인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기에서 1-0으로 패한 뒤 아쉬워 하고 있다. / 뉴스1
하지만 그 간절한 염원에도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경기 초반에는 주도권을 잡고 공격 기회를 만들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듯했으나 10여 분이 지나자 흐름은 급격히 남아공 쪽으로 넘어갔다. 상대의 빠른 역습과 돌파에 수비진은 순식간에 붕괴됐고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위험천만한 실점 위기가 연달아 연출됐다.
상대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대표팀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본인들의 페이스를 잃어갔다. 중원에서는 패스 미스가 속출했고 상대 수비벽을 깨뜨릴 팀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술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그저 그라운드 위를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결국 후반전 들어 남아공에게 야속한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실점 이후 홍 감독은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경기는 바뀌지 않았다. 무거워진 선수들은 본인의 위치와 전술적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 겉돌았다. 동점골이 시급했던 후반 추가시간에는 조규성의 높은 타점을 겨냥한 크로스가 계속해서 올라갔지만 체력 저하로 인해 정확도가 떨어지며 유효 기회로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조 최약체에게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며 경기가 종료되자 선수들은 허탈하게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주축 미드필더 이강인은 분함과 아쉬움을 이기지 못한 듯 잔디 바닥을 연신 내려치며 눈물을 쏟아냈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거리의 붉은 악마들 역시 허탈함과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부끄러운 민낯이 전 세계에 고스란히 노출된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직후에는 조 3위 와일드카드를 통한 32강 진출의 희망이 잠시 남아 있었다. 한국에 유리한 9가지 경우의 수 중 3개만 맞아떨어져도 턱걸이 진출이 가능했기에 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타국의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봤다. 그러나 단 1개의 경우의 수만 적중하면서 마지막 희망의 끈마저 완전히 끊어졌다.
참담한 실패를 겪고 30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선수단은 분노한 팬들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홍 감독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은 "홍명보 나가라"며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입국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향해서는 개껌이 투척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팬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이번 월드컵의 저조한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1. 축구협회 ‘장기 집권’이 부른 행정 참사
축구 팬들이 축구협회의 개혁을 요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불만이 폭발적인 수준으로 치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제75대 사령탑으로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밀실 행정 논란이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지난 28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 과달라하라에 위치한 대표팀 숙소를 나서고 있다. / 뉴스1
2024년 여름 진행된 홍 감독의 선임 파동은 한국 축구 행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붕괴와 전면적인 개혁 요구를 촉발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여론이 분노한 핵심 요인은 특정 인물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됐는가에 대한 절차적 의문이었다.
논란의 뿌리는 2024년 초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후임 선임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산하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는 국내외의 다양한 지도자 후보군을 추리고 면접과 협상을 진행하며 정상적인 선임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 선임 절차가 한창 진행되던 중 전력강화위원회를 이끌던 정해성 위원장이 돌연 사퇴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후 감독 선임의 실무 권한은 당시 기술총괄이사였던 이임생 이사에게 사실상 전권으로 위임됐다.
여기서 권한의 정당성과 절차적 하자가 발생했다. 감독 추천과 선임은 규정상 전력강화위원회의 심도 있는 논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이 이사가 홀로 해외 감독 후보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국내 지도자를 접촉하는 등 모든 절차를 독단적으로 주도했다. 이후 이 이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직접 유럽을 방문해 외국인 후보들과 협상했고 최종적으로 홍 감독을 설득해 대표팀 사령탑 수락을 이끌어냈다고 당당히 설명했다.
사태의 가장 큰 반전이자 전환점은 전력강화위원으로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던 전 국가대표 수비수 박주호의 양심 고백이었다. 박주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감독 선임 과정에 내포된 심각한 모순과 절차적 문제점을 낱낱이 폭로하며 축구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력강화위원회는 외국인 감독 후보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허울뿐인 역할만 수행했을 뿐 정작 최종 결정 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됐다. 심지어 일부 위원들은 홍 감독의 선임 소식을 협회의 공식 연락이 아닌 언론의 속보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폭로됐다.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 거리응원에서 머리를 감싸고 있다. / 뉴스1
또한 박주호는 "전력강화위원들의 동의와 위임을 받아 후속 절차를 정당하게 진행했다"는 축구협회의 공식 해명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며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결코 특정 감독의 선임 자체를 맹목적으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 누가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든 축구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나서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실시했다. 문체부는 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명백한 절차적 미비와 규정 해석의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공식 지적했다. 특히 전력강화위원회의 법적 권한과 기술총괄이사의 역할 범위가 규정을 벗어나 불명확하게 운용됐다는 점이 행정적 하자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국민적 현안으로 다뤄졌으며 축구협회의 폐쇄적인 의사 결정 구조와 특정 인맥 중심의 독점적 운영 방식에 대한 국회의 질타가 쏟아졌다. 축구계 내부에서도 한국 축구 행정 전반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근본적인 개혁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홍명보호 2기의 출범 과정을 둘러싼 본질적인 논란은 '홍 감독이 지닌 지도자로서의 역량'보다 '그가 과연 공정하고 정당한 시스템을 거쳐 선임됐는가'라는 절차적 정의에 있었다. 이 사건은 한국 축구가 행정의 투명성과 거버넌스의 민주적 개혁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함을 보여줬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감독 선임 과정과 불공정성 논란이 꼬리를 물었음에도 협회는 홍 감독 임명을 강행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대다수 축구인의 반대 여론을 비웃듯 4선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한국 축구의 행정 권력이 지나치게 한 인물과 그 측근들에게 집중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독점적인 장기 집권 체제가 협회 내부의 건전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마비시켰고 특정 인맥 중심 의사 결정 구조를 고착화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축구협회 측은 국제대회 유치의 연속성과 행정 경험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연임이 불가피하다는 옹색한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의 참담한 조별리그 탈락 부진과 감독 선임 파동이 맞물리면서 축구협회의 폐쇄적 지배 구조 개편과 회장 선출 방식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2. ‘선수는 있었지만 전술은 없었다’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급조된 홍명보호의 실체는 축구 팬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무능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했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빌드업 축구'라는 확고한 철학과 뚜렷한 팀 색깔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판 속에서도 4년간 묵묵히 밀고 나간 전술적 방향성이 있었기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버티는 세계적 강호 포르투갈을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16강 진출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30일 새벽 조현우 등 선수들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 도착, 팬들 야유 속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반면 이번 대표팀은 명확한 전술적 색채나 팀의 철학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시아 지역 예선 단계부터 전술 부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그 본질적인 한계가 월드컵이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참사를 자초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남아공의 조별리그 경기를 직접 지켜본 프랑스 축구 전설 티에리 앙리는 대표팀의 경기력을 향해 뼈아픈 독설을 날렸다. 앙리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 대표팀은 이기기 위한 과감한 축구가 아니라 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며 "이런 태도의 급격한 변화는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며 결과적으로 남아공을 상대로 치명타를 얻어맞는 화근이 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손흥민을 비롯해 이강인, 황희찬 등 유럽 빅리그 무대에서 능력이 검증된 최고의 공격 자원들을 보유하고도 이를 제대로 조합하지 못한 무능함을 꼬집었다. 앙리는 공격수 오현규를 선발로 내세웠다가 이후 조규성을 다급하게 투입한 일련의 교체 과정을 언급하며 "팀의 확고한 색깔이 없다 보니 그저 그라운드 위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정답을 찾아 헤매는 비참한 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확실한 능력을 갖춘 득점원들이 경기장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감독의 공격 전술 수립 방식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라며 "오늘 경기에서 한국은 전술이 아니라 그저 요행만을 바라는 팀 같았고 월드컵 수준의 무대에서 '막연한 희망'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앙리는 한국이 가진 잠재력에 비해 조별리그 경기 운영이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는 점을 거듭 아쉬워했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이후 축구계 안팎에서 제기된 비판의 핵심은 "대표팀에 명확한 전술적 정체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집중됐다. 현장 축구인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전술적 패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한 무책임한 공격 전개다. 전술적인 패턴 플레이나 약속된 팀 움직임보다는 손흥민의 개인 침투, 이강인의 창의적인 킥, 혹은 측면 공격수들의 개인기에만 공격의 전권을 맡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둘째는 독선적이고 고집스러운 시스템 운용이다. 홍 감독은 특정 전형과 보수적인 운영 방식을 고집스럽게 유지했지만 상대 팀의 특성에 따른 유연성은 완전히 결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알제리전에서 드러났던 홍 감독 특유의 전술적 경직성이 12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반복됐다고 분석했다.
셋째는 대표팀 정체성의 상실이다. 과거 한국 축구는 끈질긴 압박과 왕성한 활동량, 공수 전환의 속도를 앞세운 뚜렷한 색깔이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점유율 축구인지 역습 축구인지, 압박 중심인지 수비 중심인지 명확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다.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좋은 선수는 많았지만 하나의 팀은 없었다"는 혹평까지 등장했다.
특히 이천수를 비롯한 축구계 인사들은 "선수들의 기량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전술적 준비 부족과 무능이 더 큰 원인이었다"고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
3. 천재성만 바란 한국 vs 시스템으로 움직인 일본… 역전된 한일 축구
그동안 아시아 축구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 온 한국과 일본은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라이벌로서 동반 성장해 왔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한일전은 양국 국민에게 결코 지면 안 되는 자존심이 걸린 초미의 관심사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인 투지와 피지컬을 앞세운 한국 축구가 미세하게 일본을 앞서가는듯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두 나라의 축구 인프라와 국가대표팀 수준은 완전히 역전됐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김진규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 훈련장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서 인터뷰 중 땀을 닦고 있다. / 뉴스1
이번 월드컵 성적만 놓고 봐도 두 나라의 격차는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은 오랜 시간 정교하게 다듬어 온 팀 조직력을 바탕으로 지옥의 조를 뚫고 32강 토너먼트 진출에 당당히 성공했다. 비록 32강전에서 우승 후보 브라질을 만나 2-1로 역전패하며 아쉽게 여정을 마쳤지만 이번 대회에서 일본 축구가 보여준 높은 수준의 경기력은 전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본은 세계 최강을 상대로도 자신들의 축구를 보여주며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한국이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이고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것과 달리 일본은 조직력과 전술적 완성도를 앞세워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축구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일본 축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명확한 전술적 정체성이다. 일본은 상대의 전력에 따라 점유율 축구와 실리적인 역습 축구를 자유자재로 오가면서도 팀 전체가 하나처럼 시스템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압박 시스템과 톱니바퀴 같은 공수 전환 속도는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도 완벽한 경쟁력을 발휘했다.
2018년부터 대표팀을 장기 집권하며 이끌고 있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리더십 역시 일본 축구의 안정성을 극대화한 핵심 요소다. 감독의 축구 철학이 정권 교체 없이 꾸준히 유지되다 보니 선수들은 전술적 역할과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정확히 이해했고 경기 중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서도 높은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글로벌 축구계에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일본 축구협회가 수십 년간 일관되게 추진해 온 유소년 체계적 육성, 지도자 교육 선진화, 선수들의 유럽 진출 확대 정책이 마침내 거대한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한다. 결국 일본 축구의 강함은 뛰어난 스타 선수 한두 명의 천재성에 의존하는 한국과 달리 명확한 철학과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 오랜 시간 뚝심 있게 축적해 온 탄탄한 축구 인프라에서 비롯됐다.
4. 시스템이 통째로 날려버린 역대 최강 황금기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역사상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이른바 '역대급 황금세대'의 전성기를 세계 무대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월드클래스 주장 손흥민을 필두로 대표팀의 새로운 에이스 이강인,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수 김민재를 비롯해 이재성, 황인범, 황희찬 등 유럽 빅리그와 주요 무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핵심 선수들이 한 시기 대표팀에 동시 집결한 것은 한국 축구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화려한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손흥민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기에서 남아공의 타펠로 마세코에게 골을 허용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 뉴스1
특히 손흥민이 지닌 압도적인 결정력과 리더십, 이강인의 창의적인 패스와 정교한 기술, 김민재의 수비 장악력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최고 수준이었다. 여기에 황인범의 정교한 경기 조율 능력과 이재성의 헌신적인 활동량, 황희찬의 폭발적인 돌파력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이번 대표팀은 2002년 4강 신화를 넘어 역대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는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의 참사로 끝났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이고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한국 축구는 황금세대의 기량이 가장 만개했던 최고의 시기에 월드컵 경쟁력을 전혀 증명하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큰 무대 경험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음이 틀림없지만 이를 하나의 팀으로 묶어낼 감독의 전술적 완성도와 협회의 명확한 방향성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불투명한 절차 논란과 행정적 혼선, 끊임없이 지속된 축구협회 수뇌부의 독단적인 운영 논란으로 인해 대회 시작 전부터 대표팀을 향한 불필요한 잡음과 여론의 피로감을 키웠다. 결국 축구협회의 무능한 행정이 한국 축구에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단 한 번뿐인 황금세대의 황금기를 통째로 날려버린 셈이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황금세대 선수들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황금세대를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망가뜨린 축구협회의 낡은 시스템과 감독의 전술 부재가 본질적인 문제였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손흥민이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고 대표팀의 여러 핵심 자원들 역시 축구선수로서의 황금기를 지나 서서히 내리막길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축구에서 4년이라는 시간은 선수의 전성기와 운명을 통째로 바꿀 만큼 길고 냉정하다. 2030년 월드컵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대표팀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인 손흥민(FW)과 이재성(MF)은 4년 뒤 2030년 월드컵이 열릴 때 만 38세의 노장이 되며 최후방을 책임지는 골키퍼 김승규는 만 40세, 조현우는 만 39세에 이르게 된다. 현대 축구의 격렬한 템포를 고려할 때 이들의 대표팀 동행은 사실상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분석이다.
현재 대표팀의 핵심 척추 라인을 구성하고 있는 황인범·김민재·황희찬은 정확히 4년 뒤 지금의 손흥민 나이인 만 34세로 다음 월드컵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기량을 유지한다 한들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기동력과 신체 능력을 4년 뒤에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유일하게 천재 미드필더 이강인만이 2030년에도 만 29세로 축구선수로서 전성기의 나이를 유지하지만 황금세대 전체를 함께 떠받쳤던 든든한 동료들이 동시에 하락기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이강인 혼자 왕관의 무게를 짊어지고 대표팀을 이끌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2026 북중미 월드컵은 한국 축구 황금세대의 화려한 절정이 될 수도 있었으나 축구협회의 무능한 행정 실패와 혼란 속에서 가장 허무하고 비참하게 놓쳐버린 무대로 남게 됐다. 한국 축구는 이제 행정의 투명성과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벼랑 끝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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