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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고상우가 서울 은평구 진관로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내건 자신의 작품 ‘국경 없는 얼굴들’(Borderless Faces, 2026, 150×210㎝) 옆에 섰다. 서해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인근 밤바다에 얼굴을 내민 점박이물범이다. 북한 황해도 땅이 보이는 그곳에 직접 배를 타고 나서서 촬영한 뒤 눈동자·홍채를 다듬고 수염 하나까지 살려내는 정교한 디지털 붓터치를 입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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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순전히 ‘눈’ 때문이다. 늘 세상을 내다보지만 결국 마음을 비추는 그 눈 말이다. 색이 든 눈빛이라고 해도 좋고, 방향을 던지는 시선이라고 해도 좋다. 처음에는 잠든 듯 감고 있어 당최 읽어낼 수가 없었고, 이후에는 눈물이라도 곧 쏟아낼 듯 말간 그 깊이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던 거다.
일단 앞뒤 다 잘라내고 거칠게 나눠 보자면 앞엣것은 사람의 눈, 작가 자신이 스스로 닫은 눈이고, 뒤엣것은 동물의 눈, 작가 자신이 다시 밝힌 눈이다. 하지만 앞에서 뒤로 옮겨가는 둘 사이에는 최소한의 접점도 없었다. 화면은 순식간에 망설임 없이 이동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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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 전경. 앞쪽으로 ‘카마데누’(Kamadhenu, 2026, 150×150㎝·앞)가 내걸렸다. 코와 귀, 머리와 목에 달고 매단 꽃과 장신구는 세상을 대신해 전한 작가의 ‘미안한 마음’이다. 멀리 뒤로 작가의 ‘자화상’ 연작(2026)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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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섬광처럼 꿈틀거리던 금발의 여인 혹은 커플들의 엉킨 몸짓(‘자화상’ 연작, ‘보디페인팅’ 연작)이 어느 순간 털오라기 하나하나 섬세하게 덮은 동물로 변신(‘멸종위기동물’ 연작)했다는 얘기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그저 절규하듯 온몸으로 내뱉던 관계·고립·갈등·사랑·절망·희망 등 사람의 언어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다 필요 없고 오로지 ‘생명 또 생존’을 갈구하는 동물의 침묵, 애절한 눈빛으로 바뀌었으니까. 도대체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게 뭔가.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더라.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던 거다. 사자나 곰이 돼서야 비로소 그 눈을 뜰 수 있었다.”
작가 고상우(48). 그의 작업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디지털 페인팅’이라 할 수 있다. 사진과 회화를 결합하는 일이고,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삼고 정밀한 붓터치를 올려 완성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편의에 의한 분류일 뿐. ‘무엇을?’ ‘어떻게?’에 이어 ‘왜?’로까지 파고들면 이 작가에게 장르적 구분이란 게 참 어이없어 보이는 거다. 굳이 햇수를 세자면 25년여, 그 시간을 다 태운 작가의 작품활동은 편의라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진, 참 지독하고 치열했으며 때론 가혹하기까지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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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의 ‘내 얼굴을 기억해’(Remember My Face, 2026, 150×150㎝).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나섰다. 서해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작가가 만났다는 점박이물범 중 하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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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고상우가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내건 작품 ‘내 얼굴을 기억해’(Remember My Face, 2026, 150×150㎝) 앞에 섰다. 이 점박이물범을 만난 순간을 작가는 “바닷물이 숨을 참고, 조용한 물처럼 어두운 너의 눈이 나의 눈을 마주친 곳에서 우리는 만났다”라는 글로 되돌아봤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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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진관로 사비나미술관. 작가의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Breathing with You)은 모처럼 틈을 내 엿보게 해준 작가의 세계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눈을 맞추게 한다.
◇오래 바라보다 눈이 마주쳐야 작업에 들어가
세상과 작가, 그 사이에는 매개체가 있다. ‘멸종위기 동물’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초상’이다. 사람을 내려놓고 불현듯 등장시킨 그 ‘반전’의 대상인 동물에 지금껏 몰입하는 중이다. 2019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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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 전경. 작가의 작품 ‘마카로니’(Macaroni, 2026, 162×122㎝)가 걸렸다. 알을 품고 있는 황제펭귄이다. 짙은 어둠 속에 별빛이 총총한 시공간은 작가가 즐겨 쓰는 배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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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 전경. 디지털 회화 22점, 드로잉 71점이 걸린 사이에서 나란히 나온 ‘AI 영상’ 두 점을 찾을 수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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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무턱대고 희귀동물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인간에 의해 상해를 입고 상처를 받고 죽을 지경까지 내몰렸다면 작가에겐 멸종위기나 다름 없으니까.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 고릴라와 엄마 고릴라가 어렵게 회복해가는 여정을 들여다보고(‘내가 여기에 있다’ 2026), 윗부리와 아랫부리가 맞지 않는 장애로 거점동물원에서 묶여 사는 독수리의 날고 싶은 욕망을 읽어내며(‘하나’ ‘비상’ 2026), 밀렵꾼의 표적을 피하기 위해 되레 뿔이 잘려나가야 했던 코뿔소의 아픔을 더듬기도 했다(‘희망’ 2026). 또 사람이 쓸 화장품 임상시험에 나섰다가 시력을 잃은 토끼에겐 분홍안대를 씌워 위로했다(‘사라진 감각’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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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고상우가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내건 작품 ‘비상’(Flight, 2026, 150×150㎝) 옆에 섰다. 윗부리와 아랫부리가 맞지 않는 장애로 거점동물원에 묶여 사는 독수리의 날고 싶은 욕망을 읽어낸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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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만남도 있다. 서해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인근 밤바다에 얼굴을 내민 점박이물범. 북한 황해도 땅이 보이는 그곳에 직접 배를 타고 나서서 촬영했단다. 사람이 그어놓은 경계로 덧없이 나뉜 그곳에 “물범만 자유롭더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만이 넘나드는 평화와 공존의 영역에서 생명의 자유를 건져냈던 거다(‘경계선’ 2026, ‘국경 없는 얼굴들’ 2026, ‘내 얼굴을 기억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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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 전경. 서해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만난 점박이물범 연작이 나란히 걸렸다. 오른쪽부터 ‘내 얼굴을 기억해’(Remember My Face, 2026, 150×150㎝), ‘국경 없는 얼굴들’(Borderless Faces, 2026, 150×210㎝), ‘경계선’(Borderline, 2026, 150×210㎝)(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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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한 점 들여다볼수록 피할 수 없는 게 이들의 ‘눈’이다. 빤히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에 내 눈을 맞춰내는 일인데. 의도한 장치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게 맞을 거다. 오래 바라보다가 이들과 눈이 마주쳐야 비로소 작업에 들어간다는 작가만의 극적인 그 순간을 보는 우리와 나누려 했다는 얘기다.
눈동자와 홍채를 다듬고 수염을 바꾸고 몸을 덮은 털 한 올 한 올에 볼륨을 실어내는, 촘촘하고 정교한 디지털 붓질에는 작가의 ‘포인트’가 얹히기도 한다. 눈두덩이에, 코끝에 매단 분홍 하트가 대표적이다. 교감을 드러낸 신호라기보다 미안함을 입힌 상징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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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걸린 전시작 속 동물들과 눈맞추기를 했다. “이들과 눈이 마주쳐야 비로소 작업에 들어간다”는 작가만의 극적인 그 순간을 봤다. 위에서부터 ‘국경 없는 얼굴들’(2026), ‘경계선’(2026), ‘때로는 아름다운’(2026), ‘내가 여기에 있다’(2026)의 부분(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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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지난달 말 폐막한 사비나미술관 기획전 ‘아직 숨 쉬고 있다’(Still Breathing)의 뒤를 잇는다. 몇 점을 내리고 몇 점을 새로 걸며 새로 꾸린 작가의 개인전에는 기대치 못한 작업이 나서 눈길을 끄는데.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작가의 ‘자화상’ 연작 4점이다(‘화살’ ‘나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나는 다른 무언가로 변모한다’ ‘감각의 향연: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숨 쉬고 있다’ 2026).
온전히 작가 자신의 상처만을 들여봤던 예전과는 다르다. “동물의 고통을 체득하려 한 장치를 입었다”니 말이다. 천연기념물인 황새의 깃털을 화살처럼 몸에 박기도 하고 꽃을 피우고 새를 앉히면서 말이다. “동물이 겪는 아픔을 느껴보고 싶었다. 스스로 과녁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만들기도 하면서. 그 고통을 전달받아야 제대로 교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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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고상우가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내건, 4점으로 제작한 ‘자화상’ 연작을 올려다보고 있다. “상처 입은 동물의 고통을 느끼려 천연기념물인 황새의 깃털을 몸에 박았다”는 ‘화살’(Arrow, 2026, 122×122㎝·위 왼쪽)부터 ‘나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I Am Still Breathing, 2026, 122×122㎝), ‘나는 다른 무언가로 변모한다’(Still Becoming; I Transform to Something Else, 2026, 122×122㎝), ‘감각의 향연: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숨 쉬고 있다’(Celebration of the Senses; I Am Now Breathing with You, 2026, 122×122㎝)(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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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 전경. ‘자화상’ 연작 양쪽으로 ‘사라’(Sarah, 2026, 210×150㎝·왼쪽)와 ‘사라진 감각’(Lost Senses, 2026, 150×150㎝)이 보인다. 화장품 임상시험에 나섰다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토끼는 알록달록한 ‘마스카라 창살’ 안에 갇혀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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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환경예술가 아니야…생명에 관심이 있을 뿐”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출발지라면 출발지다. “동물도 영혼이 있는 생명체라는 걸 일깨우고 알리고 싶었다”는데. 다시 말해 ‘너와 함께 숨을 쉬는 일’이어야 했단 소리다. 그런데도 작가는 한사코 “난 환경예술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생명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드러난 방식은 다르지만 그 생명, 동물에 숨을 불어넣는 일의 연원을 좇자면 예전 인물 작업과 다르지 않다. 열세 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자신에게 스스로 금발을 씌우고 퍼포먼스를 했던 ‘자화상’ 연작, 이후 여성인권문제로 넘어가 국가·사회가 소외시킨 여성, 남편을 잃은 아내, 아이를 잃은 엄마 등을 찾아 모델로 세웠던 작업까지 말이다. “몸에 페인팅을 한 채 자유를 춤추는” 그네들의 모습이 ‘보디페인팅’ 연작으로 이어졌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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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초상’에 몰두하기 이전 고상우의 작업. 왼쪽은 ‘태양이 사랑을 품을 때’(When the Sun Is In Love, 2009, 112×162㎝·왼쪽), 오른쪽은 ‘피에로’(Pierrot, 2012, 102×127㎝)다. 20주년을 기념해 네덜란드에서 제작한 도록 ‘고상우 20년’(페이퍼타운북스 2020)에서 얻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출품하지 않은 작품들이다(제공=작가 고상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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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색이 파란색인 시절도 길게 이어졌다. 네거티브 필름을 인화·현상하던 미국 학창시절, 노란 피부색을 반전하면 파란색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다. 서양화에선 ‘성모마리아의 블루’였던 그 신비한 파란색이 작가 작업에선 정체성을 다지게 한 의지의 색이었던 거다.
한국에 완전히 돌아와 정착한 지는 5년 안팎. 이미 20대에 미국·유럽 등 미술시장을 휩쓸었듯 작가의 컬렉터는 여전히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층이 두텁다. 3년마다 정기 개인전을 준비하는데도 오매불망 ‘고상우 작품’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제공하는 일은 없다. 모든 작품은 에디션 12점으로 한정하고 ‘대륙별’로 분산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래서 더 오래 걸렸나. 하나하나 눈맞춤 끝에 이제 겨우 작가의 시선을 봤나 싶다. 전시는 8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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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고상우가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에 내놓은 작품 ‘내가 여기에 있다’(I Am Here, 2026, 150×150㎝) 옆에 섰다.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 고릴라와 엄마 고릴라가 어렵게 회복한 뒤 ‘너와 함께 숨을 쉬는’ 장면을 만들어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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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개인전 ‘너와 함께 쉬는 숨’ 전경. 어느 관람객이 한 작품, 한 작품을 거치며 오래도록 전시장에 머물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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