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진화하는 ‘CEO 브랜딩’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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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 진화하는 ‘CEO 브랜딩’의 경제학

이슈메이커 2026-06-30 09:34: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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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진화하는 ‘CEO 브랜딩’의 경제학

 

최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젠슨 황 신드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방한하자, 산업계는 물론 대중들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했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이 환호한 대상이 단순히 엔비디아의 압도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술력이나 그의 거대한 자산 규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젠슨 황이라는 한 인간의 미소에 반응했고, 그가 걸어온 인생 스토리에 깊은 공감을 보냈다.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AI 시대에,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가장 ‘사람 냄새’ 나는 리더의 매력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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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서사’를 입힌 아이콘
스티브 잡스에게 검은색 터틀넥이 있었다면, 젠슨 황에게는 블랙 티셔츠와 가죽 재킷이 있다. 365일 고수하는 이 시그니처 룩은 이제 엔비디아와 젠슨 황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패션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명품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던 딸의 조언을 적극 수용해 완성된 스타일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 덕분이다. 세계 최고의 부호이자 기업의 수장이 딸과 소통하며 자신의 현대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권위주의를 탈피한 친근하고 따뜻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강력한 브랜딩은 패션을 넘어 삶의 궤적 자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특히 16세에 만난 첫사랑과 결혼해 지금까지 변함없이 함께하고 있다는 러브스토리는 AI의 혁신성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던진다. 급변하는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에서는 헌신, 신뢰, 의리, 일관성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내는 모습. 대중은 이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의 리더십과 경영 철학을 유추한다. ‘오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리더는 조직과 고객, 파트너와의 신뢰 역시 무겁게 여길 것’이라는 막강한 평판은 바로 이러한 삶의 축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방한 일정에서도 그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과 철저히 통제된 동선 속에 머무는 일반적인 글로벌 CEO들과 달리, 입국 직후 PC방을 찾아 프로게이머 ‘페이커’를 만나고, 프로야구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던졌으며, 유명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다. 저녁에는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며 한국의 일상적인 문화를 기꺼이 소비했다. 대중의 일상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세계 최고 부호의 소탈함은 기술에 대한 찬사를 넘어 ‘인간 젠슨 황’에 대한 강력한 팬덤을 빚어냈다. 이에 그의 방한은 단순한 기업가의 출장을 넘어, 기업 최고경영자의 ‘퍼스널 브랜딩’이 어떻게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기업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치환되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며 한국의 일상적인 문화를 기꺼이 소비하는 세계 최고 부호의 소탈함은 ‘인간 젠슨 황’에 대한 강력한 팬덤을 빚어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며 한국의 일상적인 문화를 기꺼이 소비하는 세계 최고 부호의 소탈함은 ‘인간 젠슨 황’에 대한 강력한 팬덤을 빚어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삼겹살 회동에 숨겨진 고도의 ‘전략적 네트워킹’
대중에게는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젠슨 황의 방한은 치밀하고 고도화된 전략적 행보였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대중적인 식당을 선택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고도의 전략적 CEO 브랜딩”이라며 “형식적인 업무협약(MOU)보다 인간적인 관계 형성 과정을 이벤트처럼 보여주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대한민국 산업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과 연이어 만났다. 이들과 무채색 계열의 편안한 일상복 차림으로 ‘소맥(소주+맥주)’과 삼겹살 쌈을 즐기는 이른바 ‘깐부 회동’은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는 단순한 인맥 관리가 아니었다. 엔비디아가 새롭게 구상하는 ‘피지컬 AI’ 생태계 확장의 핵심 거점으로 제조업 기반 데이터가 풍부한 한국을 낙점하고, 미래 생태계를 함께 구축할 탄탄한 신뢰의 동맹을 맺는 과정이었다. 피지컬 AI 얼라이언스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삼겹살 만찬이라는 가장 한국적이고 친숙한 그림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언론 노출을 꺼리던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직접 등판한 것은 글로벌 수준의 AI 기술력을 갖춘 최적의 파트너임을 젠슨 황과 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 결단으로 풀이된다. ⓒ네이버
언론 노출을 꺼리던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직접 등판한 것은 글로벌 수준의 AI 기술력을 갖춘 최적의 파트너임을 젠슨 황과 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 결단으로 풀이된다. ⓒ네이버

 

‘은둔의 총수’들을 카메라 앞으로 이끈 생존 경쟁
젠슨 황의 이러한 열린 브랜딩은 평소 집무실과 자택 등 철저히 비공개된 동선만을 유지하던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대중의 카메라 앵글 앞으로 끌어내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특히 좀처럼 공개 석상에 나서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의장까지 삼겹살 회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총수들이 파격을 감수하며 전면에 나선 이면에는 ‘AI 주도권’이라는 절박한 생존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경우 AI·바이오·클린테크(ABC)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그룹 전반의 인공지능 전환(AX)을 추진 중이다. 제조, 가전, 배터리 등 핵심 사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피지컬 AI 인프라 구축과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이 절대적이다.

 

과거에는 침묵과 신비주의가 총수의 위엄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투명한 소통이 기업 가치를 방어하는 시대가 되었다. ⓒ크래프톤
과거에는 침묵과 신비주의가 총수의 위엄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투명한 소통이 기업 가치를 방어하는 시대가 되었다. ⓒ크래프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삼겹살 만찬 이후 네이버 제2사옥 ‘1784’에서 젠슨 황과 다시 만나 라이브 방송까지 진행했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이 의장이 직접 등판한 것은, 치열한 AI 주권 확보 전쟁 속에서 필수 자원인 GPU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네이버가 글로벌 수준의 AI 기술력을 갖춘 최적의 파트너임을 젠슨 황과 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었다.


  이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의 변화도 총수들의 브랜딩 전략 수정을 강제하고 있다. 과거에는 침묵과 신비주의가 총수의 위엄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투명한 소통이 기업 가치를 방어하는 시대가 되었다. 상법 개정 등으로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요구되고,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가 곧바로 주가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대중과 친밀한 접점을 넓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해외에서는 일찍이 글로벌 CEO들의 개인 브랜딩이 기업의 가치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Pixabay
해외에서는 일찍이 글로벌 CEO들의 개인 브랜딩이 기업의 가치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Pixabay

 

진정한 브랜딩은 포장이 아닌 ‘축적’의 산물
해외에서는 일찍이 글로벌 CEO들의 개인 브랜딩이 기업의 가치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여장을 한 채 승무원으로 서빙을 하고 우주선 발사를 기념해 건물 외벽을 타며 버진그룹의 혁신성을 몸소 보여준 리처드 브랜슨, X(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테슬라의 이슈를 독점하는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물론 좋은 옷을 입고 멋진 수사학을 구사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CEO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퍼스널 브랜딩은 인위적인 포장이나 연출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과 철학, 관계를 맺는 태도가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흔히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기술력이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젠슨 황 열풍이 우리에게 남긴 시사점은 명확하다. 결국 그 위대한 기술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기술에 생명력과 서사를 부여해 시장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압도적인 기술력의 시대일수록 대중은 리더의 ‘진정성’과 ‘사람 냄새’에 더 강하게 끌린다. 젠슨 황이 지핀 CEO 브랜딩의 진화가, 변화를 맞이한 한국 재계 총수들의 행보에 앞으로 어떤 다채로운 혁신의 서사를 입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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