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후속 협상 개최 여부와 의제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카타르 도하에서 이란 비핵화를 위한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고 공언하자, 이란 정부는 “후속 협상 계획이 없다”며 즉각 부인했다. 양국의 외교적 조율이 겉도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 강화를 선언하면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미·이란 후속 회담 진실공방…일정·의제 조율 불협화음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의 요청으로 카타르 도하 회담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내일 도하에서 이란 비핵화에 대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며 이란 대표단이 카타르로 이동하고 있다”며 “도하 회담이 중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양국이 며칠간 이어진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 재개에 나섰으나 후속 일정 조율에서 즉각적인 엇박자가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에서 고위급 특사들 출격을 예고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윗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가 양해각서 논의를 위해 이번 주 도하에서 열리는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다”며 “고위급 회담과 별도로 기술 실무 회담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레빗 대변인은 회담 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이번 주”로 표현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일정보다 미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앞으로 며칠 동안 미국과 후속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이란 관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부 차관 역시 “지정된 워킹그룹의 기술 회담 일정은 이번 주에 잡힌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바가이 대변인은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은 양해각서에서 약속한 사안들이 먼저 이행돼야 시작할 수 있다”며 “이번 주 이란 대표단이 도하를 방문하는 목적은 양해각서 이행 상황을 독자적으로 점검하기 위함이며 미국 대표단의 방문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독점 통제”…지정 항로 외 상선 차단 경고
회담 일정을 둘러싼 갈등은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통제권 분쟁으로 번졌다. 이란 정부는 자국이 지정한 항로를 벗어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상선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내 군사적 관할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취지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오만 연안에 가까운 신규 항로를 이용한 리베리아 국적 유조선을 겨냥해 통보되지 않은 노선 운항은 수용할 수 없으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며 “이란이 통행 선박에 혁명수비대 해군과의 상시 교신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협 내 기뢰 제거 작업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개입도 원천 차단했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과정에 어떤 나라도 개입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며 “프랑스를 비롯해 그 어떤 국가도 지금 단계에서는 개입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인접국 오만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로를 재설정하자는 의사를 전달하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오만의 협력 의지를 확인했으며 며칠 안에 구체적인 논의에 나설 것”이면서도 “오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이란이 독자적으로 호르무즈 관리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국 CNBC는 “미·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 발효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영구 자산화하려는 외교·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레바논 정규군 국경 배치 추진…이스라엘·헤즈볼라 충돌 불씨 여전
한편 레바논 남부 국경 지역의 통제권을 회복하려는 외교적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조셉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레바논을 방문한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과 만나 미국·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아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맞닿은 레바논 남부 국경까지 정규군을 배치한 정부의 통제권 확대 구상을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워싱턴DC에서 미국의 중재로 기본 평화안에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에는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던 레바논 남부 지역 2곳의 통제권을 레바논 정부군에 이양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완전한 평화 정착까지는 과제가 많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레바논과의 기본 합의안이 평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면서도 “이란이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에 도달하려는 열망은 이스라엘에 실질적인 위협이며 이란이 레바논의 미래를 좌우하려는 태도가 평화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카츠 국방부 장관 역시 “헤즈볼라가 무장 해제할 때까지 남부 지역 2곳 외에 추가적인 병력 철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프랑스 AFP 통신은 “합의안 서명 직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를 공습하고 헤즈볼라가 합의안을 주권 포기로 규정하며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며 “지상에서의 적대 행위가 언제든 전면전으로 재발할 수 있는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현지의 군사적 긴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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