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작품 감상의 여운은 호수 산책으로 이어지고, 저녁의 음악과 와인으로 번진다. 머물 이유가 생긴 도시는 그렇게 밤까지 이어진다.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화랑미술제 인(in) 수원’은 관람을 경험으로, 방문을 체류로 확장시키며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냈다.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행사는 결과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관람객은 끊이지 않았고, 전시장은 활기를 띠었으며 주변 상권도 오랜만에 온기를 되찾은듯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 행사가 수원이라는 도시에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이번 미술제는 기존 아트페어와 달랐다. 작품을 사고파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음악과 와인, 해설 프로그램, 시민 참여 콘텐츠를 결합해 하나의 복합 문화축제로 확장됐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고, 음악을 듣고, 공간을 즐겼다. 경험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체류 시간도 길어졌다.
행사가 도시 구조와 맞물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수원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광교호수공원, 호텔, 상업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관람은 자연스럽게 숙박과 소비로 이어졌다. ‘전시를 보러 왔다가 하루를 보내고 간다’는 흐름이 실제로 구현된 셈이다.
그동안 많은 지자체가 ‘체류형 관광’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호에 그쳤다. 관광지와 숙박, 소비 공간이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수원 사례는 공간을 묶어내는 방식이 어떻게 체류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현장을 둘러보면 변화는 더 분명하다. 전시장 밖 카페와 식당은 관람객으로 붐볐고, 인근 호텔은 예약률이 상승했다. 전시 관람이 지역 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가 작동한 것이다. 문화 행사가 경제 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눈에 보였다.
지역 미술시장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됐다. 전국 주요 갤러리와 지역 작가가 한 공간에서 만났고, 이는 단발성 교류를 넘어 향후 협업 가능성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수도권 중심의 미술 유통 구조에 작은 균열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의미는 반감된다. 이벤트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다시 찾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관람객이 ‘다음에도 수원에 가야 할 이유’를 충분히 느끼지 못할 경우 이번 성과는 일회성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수원이 내세운 ‘국제회의복합지구’ 전략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시와 회의 시설만으로는 사람을 붙잡기 어렵다. 방문객은 공간이 아니라 경험을 기억한다. 문화 콘텐츠가 핵심이 되는 이유다.
이번 미술제는 그 가능성을 시험한 사례다. 전시를 중심에 두되, 음악과 미식, 휴식이 결합된 구조는 MICE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회의와 전시가 끝난 뒤에도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장치의 중요성이 확인됐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콘텐츠의 지속성이다. 한 번의 성공적인 행사로 도시 브랜드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계절마다,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지역성과의 연결이다. 외부에서 가져온 콘텐츠만으로는 도시의 색을 만들기 어렵다. 수원만의 이야기, 수원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방문이 소비를 넘어 기억으로 남는다.
접근성 역시 중요한 변수다. 광교 일대는 신도시 특성상 쾌적하지만, 대중교통과 동선 설계는 더 촘촘해질 필요가 있다. 체류형 관광은 이동의 불편함이 줄어들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
관광의 질적 전환도 고민해야 한다. 단체 관광 중심에서 개별 여행객 중심으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도시가 제공해야 할 것은 ‘머물 이유’다. 문화는 그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결국 이번 화랑미술제가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시 하나가 도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둘러싼 경험의 설계가 도시의 경쟁력을 만든다는 점이다.
수원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성과를 축적해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킬지, 아니면 한 번의 이벤트로 남길지에 따라 향후 도시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다. 문화와 관광, 소비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도시 모델은 그동안 실현이 쉽지 않았던 과제였다.
이번에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반복과 확장이다. ‘머무는 도시 수원’이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시 찾게 만드는 명확한 이유와 축적된 경험 설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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