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공지능은 생산성을 높여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기대됐지만, 현재는 오히려 반도체와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세계적인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9일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메모리와 저장장치용 반도체 가격 상승을 이유로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대표적으로 맥북 네오는 599달러에서 699달러로, 맥북 에어는 1099달러에서 1299달러로 올랐다. 맥 스튜디오(M3 울트라)는 3999달러에서 5299달러로 33% 가까이 뛰었다.
아이폰 가격은 유지됐지만 대부분의 맥과 아이패드 제품군은 가격 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애플은 성명을 통해 최근 메모리 가격 상승 속도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다고 설명했다.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세계적인 인공지능 투자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필수적이다. 데이터센터에는 그래픽처리장치, 서버, 고대역폭 메모리, 디램, 낸드플래시, 전력 설비와 냉각장치 등이 대량으로 투입된다.
인공지능용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반도체 업체들은 생산능력을 데이터센터용 제품에 우선 배정하고 있다. 그 결과 일반 소비자용 메모리와 저장장치 가격까지 함께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디램 가격이 최대 98% 급등한 데 이어 2분기에도 58~63%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지능이 끌어올리는 것은 반도체 가격만이 아니다.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사인 피제이엠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평균 가정의 전기요금이 2028년까지 월 70달러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올해부터 전기요금이 1.5~5%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에너지기구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테라와트시로 증가해 세계 전력 소비의 약 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지능은 통화정책에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채권운용사 핌코는 인공지능 투자 확대가 수요를 유지하는 동시에 공급 병목을 심화시켜 중앙은행의 물가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시각을 일부 수정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인공지능을 물가 상승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평가했지만 최근 기자회견에서는 "인공지능 투자 비용은 이미 경제에 반영되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이 언제 물가를 낮출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는 위원 18명 가운데 절반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전망하며 긴축 기조를 강화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최대 수혜국이면서 동시에 부담도 안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과 수출 확대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반면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기업 이익이 성과급과 임금 상승, 자산시장으로 확산될 경우 국내 소비를 자극해 다시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커진다.
해외에서 시작된 인공지능 투자 확대가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국내 기업의 소득 증가와 소비 확대를 거쳐 다시 국내 물가를 자극하는 이른바 '메모리 역설'이 나타나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여 물가를 안정시키겠지만, 현재는 초기 투자 확대에 따른 공급 부족과 비용 증가가 더 크게 나타나는 단계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도이체방크는 "인공지능의 물가 안정 효과는 존재하지만 시장 예상보다 훨씬 늦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투자와 공급 제약으로 인해 오히려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 런던정경대학 비즈니스리뷰도 인공지능의 물가 효과는 '초기 물가 상승→공급 병목→장기적인 물가 안정' 순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는 아직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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