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를 고를 때 많은 사람이 플라스틱 도마를 더 위생적이라고 여긴다. 표면이 매끈해 닦기 쉽고, 끓는 물이나 표백제로 소독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무 도마는 물을 머금고 칼자국이 잘 나서, 그 틈에 세균이 번식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실험으로 들여다보면 이 통념이 뒤집힐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4년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의 실험이다. 연구팀이 나무 도마에 살모넬라균과 대장균, 리스테리아균을 묻혀 두었더니, 몇 분 만에 그 99.9%가 사멸했다. 반면 칼자국이 난 플라스틱 도마는 세제와 뜨거운 물로 씻어도 세균이 거의 제거되지 않았다. 위생적이라 믿었던 쪽이 오히려 세균을 더 오래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데는 나무라는 소재의 특성이 작용한다. 나무 섬유에는 가느다란 모세관 구조가 있어, 표면의 물기를 세균과 함께 안쪽으로 빨아들인다.
안으로 끌려 들어간 세균은 양분도 수분도 없는 건조한 나무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다. 여기에 나무가 품은 탄닌이나 폴리페놀 같은 성분이 천연 항균제처럼 작용해, 세균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칼자국 난 플라스틱이 더 위험한 이유
플라스틱 도마의 약점은 칼자국에 있다. 플라스틱은 칼날에 매끈하게 잘리는 것이 아니라, 표면이 찢기듯 갈라지며 미세한 홈이 생긴다.
이 홈은 깊고 입체적이라 안쪽까지 솔이 닿지 않고, 그 틈에 음식물 찌꺼기와 수분이 남아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은신처가 된다. 새 플라스틱 도마는 매끈해 닦기 쉽지만, 오래 써서 칼자국이 빼곡한 도마는 아무리 씻어도 세균이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도마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끓이거나 식기세척기에 넣어 고온 소독하기 쉽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도마를 권하기도 한다.
나무 도마는 열에 약하고 갈라질 수 있어 이런 고온 소독이 어렵다. 결국 재질마다 장단이 있고, 어느 쪽이든 관리에 따라 위생 상태가 크게 갈린다.
재질보다 중요한 건 건조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도마 위생을 가르는 진짜 변수가 재질이 아니라 건조라는 점이다. 어떤 도마든 쓰고 난 뒤 표면에 물기가 남아 축축하면 세균이 번식한다.
반대로 바짝 말려 두면 세균이 자랄 수 없다. 나무 도마가 세균을 빨아들여 사멸시키는 것도 결국 잘 마른 상태일 때 제대로 작동한다.
그래서 도마는 쓰고 나면 세제로 씻은 뒤 물기를 잘 털고, 세워서 통풍이 잘되는 곳에 바짝 말리는 것이 핵심이다. 눕혀 두면 바닥에 닿은 면이 마르지 않아 세균과 곰팡이가 생기기 쉽다.
날고기나 생선을 손질하는 도마는 채소용과 따로 쓰고, 칼자국이 깊어진 도마는 미련 없이 교체하는 편이 안전하다. 나무 도마는 가끔 굵은 소금이나 식초로 닦아 주면 항균 효과를 보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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