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브라클라 증류소에 가보면 알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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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브라클라 증류소에 가보면 알 수 있는 것들

에스콰이어 2026-06-28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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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의 인증을 받은 첫 스카치위스키 로얄브라클라. 왼쪽부터 순서대로 12년, 18년, 21년 그리고 곧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25년.

영국 왕실의 인증을 받은 첫 스카치위스키 로얄브라클라. 왼쪽부터 순서대로 12년, 18년, 21년 그리고 곧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25년.

로얄브라클라 증류소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했던 건, 빗속에서 70.5도짜리 스피릿을 마시는 일이었다. 증류기에서 갓 뽑아낸 로얄브라클라의 NMS(New Make Spirit)는 숙성과 희석을 하지 않은 무색의 투명한 원액임에도 신기하게 향긋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느껴졌다. 그것을 입으로만 음미한 것도 아니었다. 아예 두 손에 적시고 비빈 뒤, 얼굴을 감싸 냄새를 맡기까지 했다. 로얄브라클라의 글로벌 앰배서더 매튜 코디너가 그렇게 해보기를 권했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날아가면서 화사한 과실 향이 나죠? 그리고 뒤이어 진한 곡물 향이 날 겁니다. 그걸 잘 기억해 두세요. 로얄브라클라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우리는 증류소 앞 냇가 한가운데의 지붕이 없는 작은 정자 위에 있었고, 실제 증류소 내부에서 사용되던 발효조(washback)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그 나무 정자 역시 가랑비를 맞으며 특유의 향을 풍겼다. 증류소에서 철저히 정수한 물이 흐른다는 시내에는 따뜻한 온도 덕분에 온갖 새들이 모였으며, 자연에 둘러싸였다는 감각을 직관적으로 전해주는 그 소리 역시 과실 향과 곡물 향에 생명력을 더했다.

로얄브라클라 증류소. 하이랜드 코도르 영지 내에 위치해 있으며, 1812년 설립 당시부터 줄곧 같은 위치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로얄브라클라 증류소. 하이랜드 코도르 영지 내에 위치해 있으며, 1812년 설립 당시부터 줄곧 같은 위치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증류소를 방문하기 전날에는 코도르 캐슬에 방문했다.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배경이 되었던 하이랜드의 아름다운 15세기 저택. 인버네스 시내의 레스토랑과 위스키 바, 보틀숍을 돌아보기도 했고, 반나절은 하이랜드 전통 스포츠인 론볼(lawn bowls, 초원에서 치는 볼링)을 즐기기도 했다. 방문객 일행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공부를 하고 나서 놀아야 하는데, 이번 로얄브라클라 증류소 투어는 공부를 하기도 전에 너무 노는 것 같아 부채감이 쌓이네요.” 증류소 앞에 당도하기 전까지 몰랐던 것이다. 그 모든 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 지역의 풍광과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로얄브라클라를 이해하고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한 초석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개중에서도 코도르 성은 좀 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로얄브라클라가 바로 ‘최초의 영국 왕실 인증 스카치위스키’라는 놀라운 역사를 가진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로얄브라클라의 창립자인 캡틴 윌리엄 프레이저는 코도르 에스테이트 출신이에요. 코도르 영지 내에 증류소를 차린 것도 그런 이유죠. 이후에 그의 위스키가 윌리엄 4세의 인정을 받으며 1833년 스카치위스키 최초로 왕실 인증을 받게 되었고요. 즉 코도르 캐슬이 하이랜드 귀족 문화와 유산을 상징한다면 로얄 브라클라는 그 유산이 한 잔의 위스키로 이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로얄브라클라의 헤리티지 세션 진행을 맡았던 듀어스 본사 직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로얄브라클라가 어떻게 왕실 인증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코도르 영주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를 통해 왕실에 소개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당화조 속의 매싱 작업을 살펴보고 있는 증류소 방문객.

당화조 속의 매싱 작업을 살펴보고 있는 증류소 방문객.

비록 왕실 인증 경로에 대한 기록은 없을지라도 로얄브라클라는 놀라운 아카이브를 자랑하는 증류소다. 농가의 보리를 구매했던 1834년의 장부부터 원재료 가격 장부, 급여 및 운영비 장부, 셰리 캐스크 구매 기록까지 실물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셰리 캐스크 구매 기록은 로얄 브라클라가 100년이 넘는 셰리 숙성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우리가 증류소를 방문한 날에도 테이블 위에는 그 귀한 자료들의 원본과 함께, 한국 수출을 위해 1963년 대한민국특허국에서 받은 한글 표기 상표등록증까지 놓여 있었다. 증류소 설립부터 밀주와의 전쟁, 현대 스카치위스키 산업의 전환점을 이뤄낸 1823년 주세법 제정, 영국 왕실 인증에 이르는 로얄브라클라의 역사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그 역사가 고스란히 쌓인 물건들 앞에서 들을 때는 새로운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증류소 내부에서 시설을 안내하고 있는 로얄브라클라 글로벌 앰배서더 매튜 코디너. 로얄브라클라 증류기 특유의 형태가 위스키 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하고 있다.

증류소 내부에서 시설을 안내하고 있는 로얄브라클라 글로벌 앰배서더 매튜 코디너. 로얄브라클라 증류기 특유의 형태가 위스키 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하고 있다.

물론 증류소에서 처음 알게 된 정보도 많았다. 이를테면 로얄브라클라는 어째서 숙성 전의 70.5도짜리 증류 원액도 맛있는가, 그 이유 같은 것. “발효야말로 로얄브라클라의 핵심 특징 중 하나입니다. 저희 증류소에서는 최소 70시간에서 최대 150시간까지 발효를 시켜요. 업계 평균에 비추어볼 때 굉장히 긴 편이죠. 그 덕분에 풍부한 꽃과 과실 향을 얻게 되는 겁니다.” 발효조 앞에서 매튜가 들려준 설명이다. 그는 두 개의 발효조에서 워시를 길어 올려 비교해 마셔보게 했는데, 막 발효를 시작한 워시와 발효가 거의 끝난 워시를 순서대로 마시자 설명이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증류 과정에도 로얄브라클라만의 터치가 들어간다. 로얄브라클라 증류소의 증류기는 보통의 라인 암(Lyne Arm) 구조와는 달리 밑 통이 거대하고 파이프가 거의 천장에 붙어 꺾일 정도로 높은데, 이 구조는 리플럭스(reflux, 증기가 다시 액체로 응축해 재증류되는 현상)를 증가시켜 무거운 뉘앙스를 감소시키고 우아함과 과일 향을 극대화한다. 로얄브라클라의 과일 향이 중심이 된 가볍고 우아한 스타일, 매튜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잔의 풍부한 여름(a basket of summer in a glass)’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테이스팅 세션을 진행 중인 듀어스의 마스터 블렌더이자 로얄브라클라의 몰트 마스터인 스테파니 맥로드.

테이스팅 세션을 진행 중인 듀어스의 마스터 블렌더이자 로얄브라클라의 몰트 마스터인 스테파니 맥로드.

매튜의 설명은 굉장히 세심했다. 맥아는 어떤 품종을 사용하며 어떤 비율로 섞는지부터 매시(mash) 작업은 총 몇 회 이루어지는지, 회차별 물 온도는 어떻게 되는지, 지속가능성을 위해 도입한 바이오매스 보일러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까지, 공정 전 과정에서 모든 수치와 변화를 알려줄 기세였다. 솔직히 맥아 분쇄기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 그 기기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사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올해 연세며 아직도 힘이 장사라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까지 알려줄 때는 ‘TMI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투어를 마치고 테이스팅 세션에서 로얄 브라클라를 다시 맛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전까지 내게 로얄브라클라의 가장 큰 키워드는 ‘최초의 왕실 인증 스카치위스키’였다. 투어 이후에도 그 사실은 동일했으나, 그 절묘한 밸런스의 맛 속에서 위대한 유산 뒤에 쌓인 다른 것들이 읽히기도 했다. 좋은 위스키를 위한 아주 작은 요소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장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집념. 그리고 더 좋은 맛과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위해 이 놀라운 유산에 변화를 들여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개척 정신. 테이스팅 세션은 듀어스 최초의 여성 마스터 블렌더이자 6년 연속 IWC ‘올해의 마스터 블렌더’ 상을 받은 입지전적 마스터 블렌더, 그리고 로얄브라클라의 몰트 마스터이기도 한 스테파니 맥로드의 주재로 진행되었다. 로얄브라클라가 유산을 굳건히 이어가며 동시에 새로운 터치를 더하는 그 놀라운 균형감각 역시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 혀 끝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가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이번에도 좋은 답이 되어주었다. “전통이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처음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말이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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