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정구영(鄭銶永, 1938~) 항목 첫 줄이 인상적이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총괄 지휘한 검찰공화국의 주역."
그런데 책을 더 읽다 보면 이 사람에게는 한 가지 더 복잡한 장면이 있다. 1987년,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을 때 정구영은 서울지검장으로서 기자들에게 "물고문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며칠 뒤 고문 경찰이 더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수사를 가로막았다.
진실을 말하는 입과 진실을 덮는 손이 같은 사람의 것이었다. 이것이 정구영이라는 인물의 핵심이다.
1938년 경남 하동 출생, PK 인맥의 정점
정구영은 1938년 11월 12일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1957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산고 동기로는 허삼수, 허문도, 김진영, 최병렬 등 5·6공의 핵심인물들이 즐비하다. 서울법대 재학 중이던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이 13회 동기에서 최상엽, 황진호, 오병선(1939~2014), 박만호(1936~), 박종연(1927~) 등 무려 5명이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세계사 속의 동류, '진실의 절반만 말하는' 권력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1972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행정부의 법무장관 존 미첼(John Mitchell, 1913~1988)은 처음에는 사건의 일부를 인정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더 깊은 은폐를 지휘했다. 진실의 일부를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진실을 은폐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정구영도 보여준다. 그는 물고문을 인정함으로써 "검찰이 진실을 밝히고 있다"는 신뢰를 얻었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추가 고문경찰의 존재를 덮었다.
1985년 서울지검장, 191명 영장의 '업무협조'
정구영의 반헌법 행위는 1985년 서울지검장 취임 직후부터 본격화됐다. 같은 해 11월 민정당(현 국민의힘)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 사건에서, 경찰은 주동자만 구속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정부의 학원대책회의가 191명 전원구속 방침을 결정했다. 정구영은 직접 서울형사지방법원장을 찾아가 대규모 영장신청에 대한 '업무협조'를 구했다. 검사장이 법원장을 직접 찾아가 영장 협조를 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사법부의 독립이 검사장의 방문 한 번으로 흔들린 셈이다.
유성환 의원 통일국시 사건, 건국대 사태, 정치의 사법화
1986년 신민당(현 민주당) 유성환 의원이 "국시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발언을 하자, 전두환(1931~2021)은 오히려 "정국을 긴장시킬 방안을 찾던 차였는데 유성환이 도와주고 있다"며 반겼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정구영의 서울지검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같은 해 건국대 사태에서는 1,447명 중 1,288명을 구속하는 초강경 공안몰이를 감행했다. 정구영은 이 대량구속의 실무책임자였다.
1987년 박종철 사건, 인정과 은폐의 이중주
정구영의 가장 중요한 반헌법 행위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부검결과 물고문 질식사가 확인되자, 정구영은 기자들에게 물고문을 인정하며 '검찰의 독자수사' 의지를 내비쳤다. 이는 경찰의 초기 은폐시도를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1월 24일, 정구영은 2차장 서익원과 함께 "물고문 이외의 다른 가혹행위는 없다"며 경위 2명만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다. 구속된 경관 조한경, 강진규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고 검사 안상수에게 증언했다. 안상수가 이를 서익원과 정구영에게 보고했지만, "정구영과 서익원은 경찰의 고문치사 은폐에 대한 수사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안상수는 직접 "수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정구영은 "경찰의 조사내용과 다르다"는 핑계로 수사를 가로막았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전모가 드러나자 검찰총장 서동권이 경질됐다. 그런데 기자가 정구영에게 "고문경찰에게 돈을 줬다는데 아느냐"고 묻자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고, "은폐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질문은 천주교에 가서 하라"며 화를 냈다.
박종철은 두 번 죽었다. 한 번은 물고문으로, 또 한 번은 검찰의 침묵으로. 정구영은 그 두 번째 죽음의 한 축이었다.
1991년 검찰총장,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의 총지휘자
정구영의 반헌법 행위의 정점은 1990년 검찰총장 취임 이후다. 1991년 5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고 분신정국이 전국을 휩쓸던 위기상황에서, 정구영이 지휘하는 검찰은 강기훈(1964~)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해 정국을 전환시켰다.
과거 공안조작은 안기부가 주도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검찰이 직접 주도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를 "6공화국 검찰의 달라진 위상"이자 "검찰공화국의 문을 여는" 계기로 평가한다. 강기훈은 24년 뒤인 2015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총장 정구영은 동시에 수서 사건 수사에서 "몸통이 빠진 짜 맞추기 수사"라는 비판도 받았다. 국회의원과 비서관, 한보그룹 회장을 구속했지만, 더 큰 권력은 손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역사가들은 닉슨 행정부의 "절반의 인정" 전략을 가장 위험한 형태의 은폐로 평가한다. 완전한 거짓보다 절반의 진실이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정구영의 물고문 인정도 같은 효과를 냈다. 검찰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 위에서 더 깊은 진실을 덮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정구영을 떠올렸다. 그가 열었던 '검찰공화국'의 문이, 37년 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밤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이 검찰권력 강화의 분기점이었다면, 그 권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밤에 목격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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