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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FIFA의 집요한 ‘무표식 경기장’(Clean Stadium) 정책이다. 공식 후원업체의 마케팅 권리를 완벽히 보호하겠다는 명분 아래, 대회지가 된 구장들은 본래의 상업적 명칭을 버리고 일제히 지역명을 딴 중립적 이름으로 강제 전환됐다.
단순한 명칭 변경에 그치지 않는다. 대회를 치르는 구장들은 막대한 자체 비용을 들여 외벽의 대형 간판을 철거하거나 가림막으로 덮는 소동을 벌였다. 특히 미국의 한 경기장은 관람석 6만여 석 전체에 새겨진 브랜딩 표식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가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경기장 내부 시설과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비공식 업체의 흔적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는 FIFA의 행보는 그야말로 빈틈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저인망식 통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 규제에 묶인 글로벌 식품·의류 기업들이 가려진 로고나 테이프가 붙은 상품을 활용해 기발한 역발상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펼치면서, FIFA의 깐깐한 단속이 오히려 이들의 홍보판을 깔아줬다는 조롱 섞인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돈이 되는 상업적 권리 보호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FIFA가, 인류 보편적 가치와 관련된 사안에는 지나치게 둔감하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경기 중 관중석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버젓이 펼쳐진 장면이 중계 화면을 타고 세계에 송출되면서 거센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다.
욱일기는 과거 태평양전쟁 등 아시아 침략 범죄의 피로 얼룩진 군국주의의 유산이다. 경기장 내 반입이 금지되는 정치적 상징물임이 명백함에도, 관중석 제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변국들의 외교적·문화적 공분을 자극했다.
국내 시민단체의 항의 서한 발송은 물론, 중국의 관영 군사 매체까지 나서 “스포츠 현장은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는 무대가 아니다”라며 FIFA의 방조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 반면 일본 현지 온라인 공간에서는 적반하장식으로 욱일기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국제 축구 기구에 맞항의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수만 건의 지지를 얻는 등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FIFA의 이 같은 대조적인 행보는 축구계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부르고 있다. 기업의 로고 하나, 글자 한 자 지우는 데는 수만 개의 좌석을 샅샅이 뒤질 만큼 철두철미하면서, 수억 명의 아시아 축구 팬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전범기 응원에는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욱일기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전면에 내세운 깃발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라며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공론화로 세계 곳곳에서 잘못 사용되는 욱일기를 없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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