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에 고향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인 '밀면' 가게다.
살얼음이 동동 뜬 시원하고 짭조름한 육수에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진 밀면은 오늘날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하지만 이 한 그릇의 면 요리 뒤에는 6·25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피란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삶을 이어갈 희망이 되어주었던 부산 밀면의 탄생과 역사적 배경을 알아본다.
메밀 대신 미군 구호품으로 빚어낸 피란민의 손맛
밀면의 뿌리는 이북 음식인 함흥냉면에서 찾을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함경남도 흥남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밀면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당시 부산은 임시 수도였고, 우암동 등지에는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다.
고향에서 냉면집을 하던 이들은 부산에서도 냉면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어려웠다. 식재료가 넉넉하지 않았고, 값도 부담스러웠다.
이때 피란민들이 눈을 돌린 재료가 미군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였다. 메밀 대신 밀가루를 쓰고, 여기에 고구마 전분이나 감자 전분을 섞어 면발을 뽑았다. 메밀냉면과는 다른 쫄깃한 식감이 생겼고, 부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새 면 요리가 탄생했다.
초기 밀면은 ‘경상도식 냉면’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향의 냉면을 그대로 재현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피란민들에게는 잃어버린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한 그릇이었다. 배고픈 시절을 견디게 해준 음식이자, 낯선 부산에서 삶을 이어가게 한 생계 수단이기도 했다.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부드러운 면발과 한약재 육수
밀가루로 만든 밀면은 메밀냉면보다 값이 낮았다. 주머니 사정이 가볍던 시절, 누구나 부담 없이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여름이면 시원한 육수에 말아 먹을 수 있어 더위를 식히는 한 끼로도 잘 맞았다.
면발도 부산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기 쉬웠다. 메밀냉면은 질기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밀면은 부드럽고 씹기 편했다. 전분이 들어가 쫄깃함은 살리면서도 지나치게 질기지 않아 아이부터 어른까지 먹기 좋았다.
육수는 부산의 입맛에 맞게 달라졌다. 일반 냉면보다 짠맛과 단맛이 조금 더 뚜렷했고, 양념장을 풀면 매콤한 맛이 더해졌다. 여기에 돼지고기 육수를 쓰는 집도 많았다. 돼지고기에서 날 수 있는 냄새를 줄이기 위해 여러 약재를 넣고 끓이면서, 밀면 국물에는 은은한 약재 향이 더해졌다.
국가 정책과 대물림이 만든 부산 고유의 분식 문화
밀면이 부산 곳곳으로 퍼진 데에는 1960~70년대 식생활 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쌀이 부족하자 정부는 밀가루 음식을 장려했다. 1969년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정해 쌀 소비를 줄이도록 했다.
이 시기 부산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더 익숙해졌다. 밀면 역시 값이 비교적 낮고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부산진구 가야동과 개금동 일대에는 밀면집이 하나둘 생겼고, 손님이 늘면서 동네마다 이름난 가게들이 자리 잡았다.
밀면은 피란민의 음식에서 부산 시민의 음식으로 넓어졌다.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먹던 냉면의 대체 음식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부산을 찾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먹어보는 음식이 됐다. 밀면 한 그릇 안에는 전쟁을 피해 내려온 사람들의 기억과 부산에서 다시 삶을 세운 가족들의 세월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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