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때 읽고 싶은 바로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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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때 읽고 싶은 바로 그 책

더 네이버 2026-06-26 10:27:32 신고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장소미 옮김(녹색광선)
예쁘기만 한 책에 배신당하는 일이 많아진 요즘이다. 몇 년 전, ‘알베르 카뮈’를 믿고 지나치게 예쁜 <결혼·여름>을 집어 들었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잊을 만큼 책 속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카뮈가 본 압생트 풀밭, 이글거리는 태양, 바다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결혼>은 무명 작가 시절의 젊은 카뮈가 썼고, <여름>은 20년 동안 좀 더 인생을 경험한 카뮈가 쓴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어느 글이든 뜨거운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생기 넘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 책을 마요르카의 해변에서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느라 바다에 들어갈 기회를 놓쳤다. 여행을 떠날 때는 읽고 버리고 올 심산으로 책을 챙기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다시 내 책장에 꽂혀 있다. 패브릭 커버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느라, 맑은 하늘색에 모래의 색이 스며든 채로.
- 허윤선 <얼루어> 피처 디렉터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마틴 푸크너, 김지혜 옮김(문학과지성사)
“우리가 바로 새로운 운석이다.” 저자 마틴 푸크너는 인간종(種)을 운석에 빗댄다. 6600만 년 전,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만큼이나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이 파괴적이라는 뜻. 더 충격적인 건 ‘문학’이 이 파괴 행위에 공모했다는 주장이다. 지구를 마음대로 헤집어놓은 인간은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연을 타자화했다.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철저히 분리한 결과, 우리의 상상력은 협소해졌다. 인간 중심적 사고만 지독하게 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혹은 문학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은 아닐까. 오늘날 기후 위기 상황에 책임을 느낀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해야 할 때다. 저자는 묻는다.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는 무엇일까?” 매년 가장 뜨거운 여름을 새로이 맞고 있다. 휴가지에서만큼은 일상의 고민에서 벗어나 지구적 고민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책임감 있는 운석이 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 황지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이창실 옮김(동문선)
초행의 도시에서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아니, 들을 수 없다. 타지에서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될뿐더러, 낯선 장소의 소리까지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래서 음악, 정확히는 음악가에 대한 책을 집어 들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탁월한 연주 실력만큼이나 독특한 자세와 유별난 습벽으로 유명한 기인이자 은둔자, ‘고독 속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작가 미셸 슈나이더는 글렌 굴드가 무대 공연을 완전히 중단하고 녹음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한 1964년을 기점으로 전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전기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예술가들의 전기는 창작의 수수께끼를 늘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겨둔다”는 서술을 증명하듯 예술 세계를 해석하기보다 굴드가 남긴 연주와 기록을 통해 그의 영혼을 번역하려 시도한다. 굴드의 내면처럼 슈나이더의 문장 역시 함축적이고 내밀하기에 몇 번이고 페이지를 거슬러 곱씹어야 했다. 읽어 내려가는 속도가 더딘 덕에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수년 전 여름날 프랑스 파리를 쏘다녔다.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며, 공원에 앉아 볕을 쬐며,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문장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수수께끼는 모호한 법이 없다” 같은 문장을. 그러는 동안 머릿속에선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흘렀고, “아름다움은 무서운 것”이라는 경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유익한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운 이후, 나의 모든 여행은 기꺼이 고통을 찾는 여정으로 변모했다. 
- 박지형 <더네이버> 피처 에디터  

<손을 찬양하다>
헤수스 카라스코, 임도울 옮김(민음사)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도시 생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시골집으로 향한다. 혜원은 그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손으로 하는 일들을 하며 사계절을 보낸다. 이 책의 화자도 언제 철거될지 모를 스페인 바닷가 시골집에서 부엌을 고치고, 닭장을 손보고, 포도덩굴 시렁을 올리고, 글을 쓰며 10년을 보낸다. 언젠가 철거될 집인 걸 알기에 그 집에서는 언제나 오늘뿐이고, 오늘만 사니 오히려 무계획의 즉흥, 손의 감각이 깨어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고 싶은 핵심 단어는 ‘임시성’이다.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걸 알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의 현재는 더 소중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곳은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손을 찬양하다>가 찬양하는 손은 모든 과정 자체를 경험한 손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온 기특한 여러분께 이 책을 권한다. 편집자도 만들다가 힐링한 책이니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손으로 뭔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 이정화 민음사 편집자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사계절)
누군가 여행을 왜 떠나냐고 묻는다면, 일상에 지쳐 잠시 잊어버린 다정한 마음을 되찾는 시간이라고 답하겠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런 여행의 목적과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저자는 초등학생 독서 교실을 운영하며 어린이들과 나눈 책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록했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어린이는 어른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놀랄 만큼 단순하고 정확한 언어로 설명한다. 챕터로 구분된 에세이를 읽다 보면 깔깔 웃다가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어쩌면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건 당연하게 건네던 다정함과 느긋하게 기다려주던 마음이 아닐까. 어린이에게 좋은 세상은 결국 어른에게도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 책. 낯선 여행지에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 보면, 잊고 있던 마음 하나가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 김초혜 <싱글즈> 피처 디렉터  

<배우에 관한 역설>
드니 디드로, 주미사 옮김(문학과지성사)
타인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몸으로 소화시키는 배우의 능력이 충격적이어서 열심히 읽었다는 어느 시인의 추천에 책을 산 때가 5년 전. 하루견과 30g 한 봉지만큼 가볍게 들리는데도 어느 쪽을 펼치든 좁쌀만 한 주석이 후루룩 붙어 있는 무게감에 펼쳤다 덮기를 여러 번이다. 저자 드니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 극작가이자 철학자, 예술이론가다. 이 책에서는 극예술과 공연 예술,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두 사람, 1과 2가 대화한다. 그 두 사람은 실상 모두 드니 디드로로, 배우에게 감성은 필요 없다며 “냉정하고 침착한 관찰자여야 하죠” 단언하다가도 “감성이 전혀 필요 없다니!” (자신과) 격론을 벌인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논쟁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17시간 걸리는 어느 비행길에서다. 잠을 청하는 승객들로 가득한 밤 비행기, 나의 대각선 자리에 앉은 이의 전자책 불빛이 꺼지지를 않았다. 저 사람을 붙들어 매는 활자는 무엇일까. 저이는 왜 책을 읽을까. 불현듯 매번 챙기기만 하지 제대로 읽은 적 없는 가볍고도 무거운 이 책을 나도 쥐어보고 싶어졌다. 그 밤이 지나고 행동으로 옮긴 때는 날이 밝고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포르투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공항으로 향하는 2시간 40분 사이. 지도가 보이는 모니터도 없는 작은 비행기에서 드디어 <배우에 관한 역설>을 펼쳤다. 좋아서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기뻐서 입꼬리를 올리게 만드는 구석의 모서리를 스물두 군데쯤 접고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중 한 군데를 여기 옮긴다. “연극을 보러 들어갈 때 시민은 입구에 자신의 악덕들을 두었다가 나갈 때면 다시 갖고 나갑니다.” 도망칠 구석이 아무 데도 없을 때, 악덕을 모두 내려놓게 되는 암흑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이에게, 그 암흑을 밝히는 누군가가 궁금한 당신에게 이 책을 동반자로 추천한다.
- 김은희 <지큐>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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