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맛'에 매몰된 도서전 말고, 책·독자 중심 '제대로 도서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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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맛'에 매몰된 도서전 말고, 책·독자 중심 '제대로 도서전' 열어보자"

프레시안 2026-06-26 10:04:22 신고

25일 오후 4시, 애독가들이 서울 용산구 노들섬 노들라운지를 찾았다. 출판업계의 주요 고객으로 평가받는 2030 청년 여성은 물론 남녀노소 200여 명이 순식간에 라운지를 메웠다. 과밀집을 막고자 입장 예약을 받았는데, 10분 만에 90팀이 예약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모두 제1회 '서울 제대로 도서전'을 찾은 인파였다.

오후 4시 20분, 도서전 개막식을 알리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김향수 향출판사 대표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잘 안될 줄 알았는데, 대박 났어요 여러분!" 관람객들은 웃으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25일 오후 4시 애독가 수백 명이 서울 용산구 노들섬 노들라운지에서 열린 '서울 제대로 도서전'을 찾았다.ⓒ프레시안(박상혁)

제대로 도서전은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출판인들이 개최한 대안 도서전이다. 전국 출판사·서점·작가 51팀과 뜻을 함께하는 자원봉사자 40여 명, 후원사, 예술가, 사진사 등이 힘을 합쳐 올해 처음 도서전을 차렸다.

이들은 1954년부터 최근까지 공공성을 지켜온 국내 최대 규모 도서전 '서울국제도서전'의 운영 법인이 2024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이윤 추구 중심의 영리사업이 됐다고 비판한다. 2022년 120만 원이던 부스비가 지난해부터 부가세 포함 242만 원으로 인상돼 출판사들의 부담이 늘었고, 대형 출판사와 후원사 중심으로 부스를 차려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형 출판사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주장이다. 책 대신 굿즈 등 부가상품 판매에 집중하면서 도서전의 본질을 잃었다는 지적도 함께다.

제대로 도서전 개최를 처음 제안한 김 대표는 <프레시안>에 "서울국제도서전이 주식회사로 전환된 후 수많은 출판사가 서울국제도서전 참여에서 탈락했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같은 문제의식을 느낀 51팀이 모여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도서전, 굿즈나 단순 이벤트 대신 책과 독자가 중심이 되는 도서전을 만들자는 취지로 도서전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 회복을 바라는 마음은 수도권 출판인에 한정되지 않았다. 광주에서 여성, 환경, 장애 등이 주제인 책을 파는 서점 '소년의서' 임인자 대표는 서울국제도서전 비판에 목소리를 보태고자 서울까지 책을 들고 올라와 제대로 도서전에 부스를 차렸다.

임 대표는 <프레시안>에 "서울국제도서전은 굉장히 오랫동안 운영돼왔던 모두의 축제였다. 그러나 (운영법인이)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몇몇 주주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출판사는 소외되고 있어 공공성 회복을 위한 목소리를 내 왔다"며 "책방도 출판과 독자를 연결하는 유통 체계 안에 있으니 뜻을 같이 하는 출판인들과 함께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국제도서전과 다른 도서전을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공을 들였다. 참가단체들은 50만 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도서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부스 크기는 모두 같게, 위치는 무작위로 선정해 공간이 만드는 위계를 줄였다. 도서전에 차려진 부스는 대부분 굿즈 대신 책으로 메워졌다. 어린이, 여성, 성소수자, 환경 등 다양한 의제를 담은 책이 곳곳에 보였다.

▲제대로 도서전의 핵심 상품은 굿즈가 아닌 책이었다.ⓒ프레시안(박상혁)

참가자들의 독서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자 들고 온 책을 낭독하는 공간, 작가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휘발성 강한 굿즈는 패브릭 책갈피 등 재사용이 쉬운 소재를 주로 사용해 판매했고, 시민들이 기증한 에코백과 종이가방에 책을 담아 주는 방식으로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했다.

다수 참가자는 제대로 도서전이 선사하는 새로운 경험에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했다는 대학생 이채은(24) 씨는 "서울국제도서전의 경우 책을 판매하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빠르게 책을 사고 나와야 하는 식이어서 아쉬웠다"며 "제대로 도서전에서는 책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출판사들이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헌정보학과 학생 임소진(22) 씨도 "서울국제도서전의 규모가 커지면서 출판업계와는 관련 없는 기업들이 참여했다. 소위 도서전이 '돈맛'을 본 셈"이라며 "서울국제도서전이 사유화됐다는 비판에 공감하고, 보이콧을 택한 출판사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해 제대로 도서전 방문을 선택했다"고 했다.

제대로 도서전은 오는 26일까지 사흘 동안 이어진다. 개최자들은 첫날 흥행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이번 도서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란다. 개최 목적인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 회복을 하루빨리 달성해 제대로 도서전이 열릴 이유가 사라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출판인 모임 대표를 맡은 김장성 이야기꽃 대표는 "한국 헌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만큼 출판업이 공공성에 기반한다는 뜻"이라며 "사유화된 서울국제도서전이 더 이상 상업화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하루빨리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이날 도서전에 부스를 차린 오빛나리 작가노조 위원장도 "서울국제도서전은 70년 넘게 이어져 온 모두의 축제였다"며 "한 단체가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고 운영에 동참하는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도서전 주최자들이 서울 용산구 노들섬 노들라운지 앞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프레시안(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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