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사회 안보'(Social Security)의 문제다. 우리는 IMF 구조조정 사태를 거친 후 '대량 해고'가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지켜본 경험이 있다.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속화되면서 어느새 '사모펀드'는 우리 삶의 주변에 익숙하게 다가와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논쟁은 자본 시장과 노동 시장에서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다. 한편에서는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메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경영 효율화와 체질 개선, 그리고 새로운 자금 조달로 자본 시장에서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도 존재한다. 단기 수익 지상주의로 구조조정을 일삼고 기업을 망가뜨리며 결과적으로 경제 주체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이다. 지금 MBK의 홈플러스 인수 및 파산 논란은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의 교과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특히 수익 추구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될 위기에 처한 상황은 '사회 안보'를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MBK의 '홈플러스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1948년 설립된 장난감 전문 매장 토이저러스(Toys 'R' Us)는 한때 세계 1600개 매장에서 115억 달러의 매출을 자랑했던 회사였다. 소비패턴의 변화, 신생아 수 감소 등으로 고전하던 이 회사를 2005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털(Bain Capital), 부동산 투자회사 보나도(Vornado) 등으로 구성된 사모펀드 컨소시엄이 66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때 사용된 게 악명 높은 '차입 매수(LBO)' 방식이다. 사모펀드는 인수자금 중 50억 달러 이상을 금융권에서 빌려 회사 경영권을 인수했고, 이 대출 이자만 연간 수천억 원 규모를 지급해야 했다. 회사의 유동성은 망가졌고, 점포 확장, 온라인 시장 공략 등 성장에 쓸 돈은 없었다. 그리고 2017년 토이저러스는 사실상 파산했고, 약 3만 명의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 앉은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해 파산 지경에 이른 것과 놀랄만큼 똑같은 모습이다. 지난 2015년 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불리는 김병주의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는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선제적 구조조정과 막대한 금융 채무 조정을 위해 2025년 3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영 실패다. 하지만 MBK 연례보고서에서는 홈플러스 투자펀드 3호 블라이드 펀드는 홈플러스 경영 실패에도 1조2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돼 있다. 홈플러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의 추산에 따르면 MBK는 이 펀드 운용으로 약 3억 달러의 관리보수와 약 5억 달러의 성과보수 등 총 8억2000만달러(한화 약 1조2300억 원) 규모의 보수를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3호 펀드의 포트폴리오는 홈플러스 외에 7개 이상의 기업이다. 홈플러스로 1조 원가량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당 펀드는 수익을 낸 셈이다.
홈플러스는 '버리는 카드', 일개 포트폴리오다. 그 '일개 포트폴리오'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에 빠져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남의 돈'으로 회사 인수해 '살점 뜯어먹기'
MBK는 영국 테스코로부터 7조2000억 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MBK의 실제 투자금은 3조2000억 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4조 원은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때부터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MBK는 홈플러스의 자산을 닥치는대로 팔아 치웠다. 2016년~2018년 홈플러스 가좌점, 김포점, 김해점, 북수원점 등 알짜 매장들을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back, 매각후 다시 임차해 영업하는 방식)으로 매각했다. 자가 건물을 남의 건물로 바꿔 현금을 확보해 빚을 갚는 데 썼다. 매년 수천억 원의 임차료 고정비 부담이 발생했다.
2020년부터는 아예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부지를 매각하고 매장을 없애는 '폐점 매각'으로 방식을 바꿨다. 쿠팡 등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대형마트 업황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홈플러스는 '자산 유동화'에 매달렸다.
안산고잔점, 대구점, 대전탄방점, 대전둔산점, 동청주점 부산 해운대점, 가야점 등을 매각했다. MBK 인수 후 2024년까지 28개 안팎의 점포 및 물류센터가 매각됐고, 전체 점포의 절반 이상이 임차 매장으로 바뀌었다. 누적 매각 대금은 약 4조 원, 이에 따른 연간 임차료만 4000억 원에 달했다.
악순환이었다. 3년 연속 1000억 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부채비율 1400%를 돌파한 후 강제 구조조정 단계에 돌입했다. 결국 지난해 3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 돌입 직전 전자단기사채(전단채·ABSTB)를 팔아치워, 개미들의 피눈물을 뽑아냈다. 홈플러스 전단채 피해 규모는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집계 기준으로 4000억 원이 넘는다. 검찰은 MBK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면서도 대규모 단기채권을 발행한 뒤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해 투자자들을 기망했다는 혐의를 잡고 김병주 회장 등을 수사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그나마 알짜 사업부인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쪼개 분리 매각하고, 향후 6년간 부실 대형마트 점포 41개 개소를 추가로 정리할 예정이다. 올해 초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등 인력 감축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MBK의 홈플러스 경영은 과도한 빚을 내서 인수→빚을 갚기 위해 알짜 점포 4조 원어치 매각→매각 후 임차료 부담 급증으로 실적 악화→법정관리 및 노동자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경영 실패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익을 짜내면 된다. 노동자가 대거 길거리에 나 앉든 상관 없다.
홈플러스는 지난 4일 노동조합에 공문을 발송하고 "현재 낮은 기여도로 휴업 중인 37개 점포에 대해 폐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폐점 결정에 영향을 받는 인원은 약 3500명 규모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말 1만7986명이었던 홈플러스 직원 수는 올해 4월 말 기준 1만5398명으로 감소했다. 이미 올해 들어서만 2500명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그리고 6000명의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앉거나 나앉게 생겼다.
직원 월급이나 퇴직금 등을 챙겨주기 위해서는 채권단 동의를 바탕으로 신규 대출이나 DIP(회생기업 금융) 자금 조달이 이뤄져야 하는데, MBK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은 "투자 펀드에서 1조 원 넘게 수익을 올리고 포브스에 14조 원대 자산가로 이름을 올린 김병주 회장이 대주주로서 책임은커녕 왜 1000억 원 보증조차 할 수 없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비난했다.
'메뚜기 자본주의'가 지나간 자리들
마이클 병주 킴(Michael ByungJu Kim, 한국명 김병주)에서 이름을 딴 MBK는 김병주 회장이 주도하는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수익만을 목표로 한다. 회사의 비전이나 고용의 안정성이 이나라 보통 단기(5년~10년) 내로 투자한 물건·회사를 처분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에서 사모펀드와 관련된 역사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자본 시장이 개방되면서 수많은 기업들과 은행들이 사모펀드들에 넘어갔다가 '먹튀'로 귀결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행태의 사모펀드 경영 방식에 빗댄 별명들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기업 사냥꾼 (Corporate Raider), 벌처 자본주의 (Vulture Capitalism, 시체나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Vulture에 빗댄 표현), 메뚜기 자본주의(Locust Capitalism, 메뚜기 떼가 농작물을 모두 휩쓸고 지나가 황폐화시키듯, 사모펀드가 회사의 자산을 갉아먹고 기업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린 뒤 떠나버리는 현상에 비유), 금융 뱀파이어/흡혈귀(Financial Vampires) 등 다양하다.
특히 간과되고 있는 것은 사모펀드 인수 기업에서 나타나는 고용 불안 문제다. 과거엔 이런 문제가 당연히 치러야 할 '희생' 쯤으로 인식됐지만, 이미 한국은 국가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과 별개로 상시적 고용의 불안정과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안보와 직결된다. 고용은 중요한 사회적 안보 요소고, 이런 요소가 흔들리고 취약해지면 사회 혼란이 극심해진다.
MBK는 기업을 인수한 후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회사다. MBK가 지난 2007년 인수한 케이블방송 씨앤앰(C&M, 현 딜라이브) 사태는 방송 역사상 최악의 구조조정이 벌어진 케이스다. MBK는 기업 매각 대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원청의 외주화 및 하청 업체 교체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109명이 대량 해고됐다.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광화문 전광판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고, MBK 본사 앞 노숙 농성이 150일 넘게 이어졌다. 인력 감축과 외주화로 인해 결국 씨앤앰의 브랜드 신뢰도와 시장 점유율은 폭락했다.
MBK가 2009년 인수한 철강구조물 제조업체 영화엔지니어링은 실적 악화로 2012년 대규모 구조조정(임직원 약 70% 감원)을 단행했다. 중장기 경영 전략보다는 단기 배당과 투자금 회수 등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다. 핵심 인력들이 나가면서 경쟁력을 상실했고, 무리한 경영과 업황 악화가 겹치며 적자 행진을 벌였다. 이는 신용등급 하락과 수주 급감으로 이어져 2016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017년 회사를 매각하는 것으로 MBK는 손을 털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과 같은 말은 사치였다.
지난 2013년 MBK가 오렌지라이프(구 ING생명)를 인수할 때 "장기 투자를 통해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인수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비용 절감을 목표로 전체 임직원의 30% 수준 감축 목표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ING생명 노조는 MBK를 "천박한 투기 자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결국 2조 원 규모의 차익을 남기고 재매각에 성공해 '먹튀' 논란을 낳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 인수는 홈플러스 사태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MBK는 2013년 네파를 약 1000억 원에 인수했는데, 4800억 원은 차입으로 조달했다. 그리고 네파를 티비홀딩스와 합병하면서 부채를 네파로 이전했다. 네파는 원금은 물론 매년 300억원 안팎의 이자를 부담하면서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영업으로 번 돈을 투자나 브랜드 경쟁력 강화가 아닌 금융비용 상환에 우선 투입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전형적인 '단물 빨아먹기' 식 MBK의 경영 수법이다. 일각에서는 '다음 먹튀' 대상으로 네파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리고 MBK는 현재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에도 뛰어들었다.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산하 고려아연 노조가 "MBK의 사모펀드식 경영이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홈플러스 노조와 연대를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으로 노동자들은 오늘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고려아연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주요 산업의 기초 소재인 아연, 연, 은 등을 공급하는 세계 1위 비철금속 종합 제련 기업이다. 국가 경제와 공급망 안보에 직결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국가 기간산업으로 평가받는다.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이 국가 기간 산업에 들어올 때, 우린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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