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의료현장에서 역할이 커진 진료지원업무 수행 간호사, 이른바 PA간호사의 교육체계를 두고 간호계와 의료계의 충돌이 커지고 있다. 간호계는 환자 안전과 교육의 일관성을 위해 교육과정 운영부터 교육기관 지정·평가까지 간호 분야 전문기관이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교육과 평가를 한쪽 직역이 모두 맡으면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선수심판론’을 제기하고 있다.
25일 대한간호협회가 전국 간호사 88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2%는 진료지원업무를 ‘간호법에 따라 의사의 지도와 위임에 근거해 수행하는 간호사의 업무’로 봤다. 기존 의사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것이라는 응답은 17.5%. 교육기관 지정·평가 주체에 대해서는 87.6%가 간호 분야 전문기관을 선택, 통합 수행이 필요한 이유로는 56.5%가 교육의 통일성과 지속성 확보를 꼽았다. 의료현장에서 공식 확인된 전담간호사는 1만8000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쟁점은 PA간호사를 누가 가르치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공의 공백 이후 병동 운영 방식이 바뀌면서 PA간호사와 전담간호사, 입원전담전문의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빠르게 자리 잡았지만, 업무 범위와 책임 소재, 법적 보호 장치는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체계 논쟁이 직역 간 주도권 다툼을 넘어 병원 현장의 새 업무 구조를 제도 안에 어떻게 넣을지의 문제로 번지는 배경이다.
외과 현장에서는 변화가 이미 뚜렷하다. 대한외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외과병동이 기존 전공의 중심 체계에서 다직종 협업 구조로 재편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가 줄어든 대신 전담간호사가 늘었고, 동의서 작성, 타과 협진, 응급수술 보조, 회진자료 준비, 수술 전후 환자 모니터링 등 과거 인턴과 전공의가 맡던 연결 기능 상당 부분을 전담간호사가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역할이 커진 속도에 비해 제도 정비는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 발표자들은 진료 연속성은 유지됐지만 간호사들이 역할 경계의 모호성과 책임·권한의 불균형 속에서 불안감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방 대행처럼 법적 보호가 불명확한 업무는 ‘역할 확장’이라기보다 의료공백을 떠받치는 ‘버팀’에 가깝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체계가 논란에 불을 붙였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보건복지부는 PA간호사 교육체계를 교육과정 운영·수료증 관리와 교육기관 지정·평가로 나눠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계는 이를 두고 교육의 질 관리와 운영 효율성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구조라고 반발하고 있다. 교육과정 개발, 기관 지정, 평가, 성과 관리가 따로 움직이면 현장 교육의 표준화가 어렵고, 평가 결과를 다시 교육 개선으로 연결하는 환류 체계도 약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2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평가 통합 관리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협회는 교육기관 지정·평가 분리 방침 철회와 대한간호협회 중심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공식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매주 화요일 투쟁을 이어가고, 필요하면 천막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간호계는 진료지원업무가 단순 보조가 아닌 의료현장의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환자에게 안정적이고 연속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영역이라고 보고 있다. 교육기관의 시설, 강사진, 실습 체계, 교육 성과를 함께 관리해야 교육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본간호협회와 미국간호사의 간호사자격인증센터 사례를 들어 전문직 단체가 교육과 자격 관리의 중심을 맡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반면, 의료계의 시각은 다르다. 의사들은 진료지원업무가 본래 의사의 업무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교육과 평가에 의사 참여가 필요하다고 보는 상황이다. 간호협회가 교육과정 개발, 승인 심사, 교육기관 평가까지 모두 맡으면 스스로 만든 교육을 스스로 평가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 전공의 수련처럼 교육과정 개발, 수련 평가, 병원 평가가 분리된 체계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기구를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려는 입법 움직임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전담간호사의 법적 지위를 분명히 하는 간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전담간호사’ 정의를 신설, 일정 임상경력과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보건복지부 장관이 실시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자격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의료기관마다 전담간호사, PA간호사 등 명칭이 제각각인 현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수도권 대학병원 간호계 한 관계자는 “PA간호사 교육체계 논쟁은 단순히 어느 직역이 교육을 맡을지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공백 이후 커진 역할을 제도 안에 어떻게 담을지의 문제”라며 “명칭과 자격, 교육 기준, 책임 범위가 함께 정리되지 않으면 현장의 혼선과 직역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 주체를 둘러싼 논쟁과 별개로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교육 기준과 평가체계를 마련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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