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예물로 빈티지 까르띠에 시계 구매한 썰 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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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예물로 빈티지 까르띠에 시계 구매한 썰 풉니다.

마리끌레르 2026-06-25 12:00:00 신고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매 순간이 선택입니다. 결혼식장의 위치부터 메뉴, 꽃장식, 결혼식 BGM을 라이브 뮤직으로 할지 MR로 할지, 신혼집의 위치, 자가 혹은 전세 여부, 새롭게 들여야 하는 가전과 가구들, 그리고 예물까지도 말입니다. 사실상 이제 정해져버린 예비신랑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도 무난한 성격의 남편 덕에 많은 선택을 저의 뜻대로 할 수 있었지만, 단 하나, 예물 시계를 구입하는 데서 우리의 의견은 갈렸습니다.
남편과 정리해본 결혼 준비 예산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의 예물 예산을 마련했고, 이제 남은 일은 백화점으로 가 매장들을 돌며 각자가 평소 눈여겨봤던 품목들을 고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결혼 예물이라면 당연히 박스에 넣어 왁스씰 포장까지 완벽하게 된 반짝이는 새 시계가 정석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거나 대형 라이트박스에 인쇄된, 그런 하우스를 대표하는 모델들은 PR 업무를 하며 너무 자주 보아왔기 때문인지 제 마음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현행 베누아 알롱제 워치와 2000년에 단종된 빈티지 베누아 알롱제 워치를 한 프레임에 담은 모습.

사실, 당시 제가 홀라당 빠져 있던 시계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 2000년에 단종되어 더 이상 출시되지 않고 있던 까르띠에의 ‘베누아 알롱제 워치’였습니다. 지금이야 리뉴얼 론칭도 하고, 몇 년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출시되는 인기 모델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게 뭔데?”라는 반응이 더 익숙한 시계였습니다. 더구나 20년 가까이 단종된 상태의 모델이니 백화점에는 당연히 없고, 중고 시장이나 해외 경매 사이트를 뒤져야만 만날 수 있는 시계였습니다.
그래서 예물 시계라는 아주 좋은 기회가 생겼을 때, 저는 오히려 더 단호해졌습니다. 예물로 시계를 산다면 결국 가장 오래 차고 싶은 시계를 사야 한다는 결론이 이미 꽤 일찍 내려져 있었거든요. 사실 남편을 시작으로 가족들, 주변 친구들까지도 “예물인데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굳이 중고 시계를 사느냐”는 의구심을 정말 많이 가졌습니다. 그 말이 아주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결혼이라는 이벤트 앞에 서면 괜히 정석을 따르고 싶어지니까요. 설명하기 쉽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문제 없어 보이는 선택을 하고 싶어지죠. 새 시계를 사면 훨씬 간단했을 겁니다. 굳이 수 개월을 매물 검색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고, 컨디션을 따져볼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왜 하필 이걸” 구매했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겠죠. 그런데도 결국 저는 모든 가능성과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서도 베누아 알롱제 워치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예물은 남들이 보기 좋은 물건을 고르는 일이라기보다, 내가 만족감을 가지고 오래도록 곁에 둘 물건을 고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집착에는 제 당시 상황 역시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결혼 당시 까르띠에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까르띠에 시계가 가장 예뻐 보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이 쉬웠던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누구나 다 아는 메종의 대표 모델들은 남들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많이 봐온 시계들이기도 했고, 오피스 동료들 모두 까르띠에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보니 나는 무언가 달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코닉한 모델들을 이미 몇 점 가지고 있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외부 파트너들과의 미팅이 가장 잦은 부서에 있었던 만큼, 까르띠에를 대표해 나온 사람이 다른 브랜드의 시계를 차는 일 역시 당시의 저에게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제 마음이 향한 곳은, 같은 까르띠에 안에서도 모두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모델 말고, 조금 더 은밀하고 사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시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누아 컬렉션 자체는 까르띠에 안에서도 꽤 우아한 계보에 속합니다. 이름부터 프랑스어로 ‘욕조’를 뜻하는 baignoire에서 왔죠. 루이 14세 시대의 프랑스 궁정 문화에서 욕조는 단순한 위생 도구라기보다, 사치와 귀족성의 상징에 가까웠습니다. 물을 끌어다 쓰고, 넉넉한 공간을 갖추고,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귀족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삶의 방식과 연결돼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베누아는 탱크나 팬더처럼 도시적이고 현대적이기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귀족적인 여성성을 향하는 시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누아 알롱제 워치는 그 단정한 타원을 길게 늘이며 분위기를 한 번 비틉니다. 클래식하고 얌전한 까르띠에의 문법 안에 있으면서도 너무 반듯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대놓고 반항적인 얼굴도 아니에요. 제 눈에 베누아 알롱제 워치는 ‘마냥 우아한 숙녀’의 시계라기보다, 충분히 귀족적인데 어딘가 ‘마라 향’을 풍기는, 그런 고분고분하지 않은 기품을 가진 시계였습니다. 길게 늘어진 케이스는 우아한데 어딘가 고집스러운 인상을 남기고, 얌전한 드레스 워치 같다가도 손목 위에 올리면 꽤 또렷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한마디로, 누가 봐도 무난한 정답 같은 시계는 아니었습니다. 회사 공유폴더 내 아카이브 자료에서 처음 만나게 된 베누아 알롱제 워치에 덕통사고를 당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여기에 한 가지 치명적인 설정이 더 붙습니다. 베누아 알롱제 워치는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는 까르띠에 크래쉬 워치의 원형이라는 점입니다. 까르띠에 워치메이킹의 심미성을 대표하는 크래쉬 워치는 1967년, 까르띠에 런던에서 사고로 파손되어 수리센터에 맡겨진 시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된 시계입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의 녹아내리는 시계를 떠올리게 하는 비정형의 케이스는, 크래쉬 워치 자체를 하나의 현대 미술 작품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소더비, 크리스티 같은 주요 해외 경매 하우스에서 크래쉬 워치가 연이어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올해 4월에는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1987년산 까르띠에 크래쉬가 1,561만6천 홍콩달러, 한화 약 29억 원에 낙찰되며 까르띠에 워치 경매가의 새 기준을 쓰기도 했죠.

이런 배경까지 알고 나니, 결혼 예물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 시계는 저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처음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빈티지 시계는 신제품처럼 “일단 가서 몇 개 차보고 마음에 드는 걸 사야지” 하는 식으로는 접근이 불가하다는 거예요. 매장 몇 군데를 돌면 후보 제품들을 나란히 놓고 소개해주고, 원하는 게 없다면 있는 곳에서 가져다 주기까지 하는 신제품 구매와는 달리, 빈티지 시계는 내가 왜 이 시계를 원하는지, 얼마나 원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매물이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 나가는 이 기나긴 탐색의 과정에서 지쳐버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제 경우엔 왜 굳이 이 시계를 찾아야 하는지가 이미 분명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였습니다. 마음을 정했다고 바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때부터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네이버에 “베누아 알롱제 워치”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중고 시계를 거래하는 대표 플랫폼 몇 군데에 전화를 걸어 베누아 알롱제 워치가 입고되면 전화를 달라고 번호를 남겨두기도 했습니다. 원하는 디자인의 다이얼에, 원하는 소재, 원하는 상태를 만나려고 노력하다 보니 몇 개월의 학습 기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빈티지 시계를 볼 때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지도 조금씩 배우게 됐습니다.

예전엔 저도 당연히 ‘얼마나 새것처럼 보이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흠집이 적고 반짝반짝할수록 좋은 줄 알았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 여러 시계를 보다 보니, 구매 일자나 구매처 등의 정보가 기재된 보증서가 있는지, 전용 박스가 있는지, 공식 수리 센터가 아닌 곳에서 시계를 열었던 흔적은 없는지, 바늘이나 버클 등을 사제로 교체한 흔적은 없는지, 지나치게 폴리싱을 해서 케이스 모양에 왜곡이 생기진 않았는지 여러 가지를 확인해야 하더라고요. 특히 베누아 알롱제 워치처럼 형태 자체가 매력인 시계는 더 그랬습니다. 빈티지 시계를 고를 때 잔스크래치보다 먼저 원형 보존 상태를 보라는 말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그건 단순히 감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계가 가진 성격이 남아 있느냐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시계는 사는 순간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그 뒤로도 계속 관리하며 차야 하는 물건이니까요. 특히 예물처럼 “앞으로 오래 함께할 시계”라는 전제가 붙으면 더 그렇습니다.

그렇게 수개월 아침저녁으로 검색한 결과, 어느 날 갑자기 한 중고 명품 시계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온 화이트 골드 케이스의 베누아 알롱제 워치가 제 레이다망에 잡혔습니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운영해온 흔적과 구매로 성공시킨 사례가 많았고, 그동안 사입해 온 시계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 단종 당시의 신제품 매장가보다 10%밖에 차이가 없는 높은 금액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일단 전화를 했습니다. 실제 보유한 재고인지, 스트랩이나 버클은 모두 순정인지, 현재 작동하고 있는 상태인지 등의 질문을 차근히 드렸고, 오프라인 매장으로 방문 예약을 잡았습니다. 저는 옷은 온라인 구매를 자주 하는 편인데, 시계나 주얼리는 온라인 구매를 격하게 반대하는 사람이긴 합니다. 특히, 시계는 손목에 맞는 사이즈가 아니라 손목에 잘 어울리는 사이즈, 피부 톤과 맞는 소재, 러그의 폭과 케이스의 비율, 스트랩의 소재에 따라서도 착용했을 때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상태 확인의 목적도 있었지만, 손목에 올려보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겠다는 생각에 당일 오후로 예약을 잡고 바로 찾아갔습니다. 
사실 차보기도 전에 눈으로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이 시계는 내 것이 될 거라는 것을요. 판매자께서 한 번도 외부 수선 업체에서 수리를 진행하신 적이 없다고 코멘트를 한 제품이라 사입 후에도 임의로 오버홀을 진행하지 않으셨고, 케이스 위 지저분한 스크래치들만 라이트 폴리싱하셨다는 그 상태조차 너무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트랩은 노후되어 사제로 체결해두신 상태였지만, 제가 까르띠에 직원이었던 만큼 정품 스트랩 추가 구매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구매를 서둘렀던 이유는, 나 아니고서 이 시계를 찰 사람이 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처음 착용해봤을 때 전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로로 길게 흐르는 케이스 비율은 제 손목의 가로 폭을 자연스럽게 좁아 보이게 하면서 손목을 훨씬 길고 슬림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여기에 가느다란 스트랩이 더해지니 손목 주변이 답답해 보이지 않았고, 시계의 길쭉한 실루엣도 훨씬 깔끔하게 살아났습니다. 시계 하나를 올렸을 뿐인데 손목 위로 이어지는 팔의 선까지 길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달까요.
결국 저는 (조금의 가격 네고 후) 그 시계를 구매했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그 선택을 1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미있게 차고 있습니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정품 스트랩을 하나씩 사 모아, 평소에는 그레이를 기본으로 두고 봄엔 연보라, 여름엔 화이트, 가을엔 베이지, 겨울엔 블랙으로 바꿔가며 차는 재미가 꽤 쏠쏠하거든요.

2019년 런던 휴가 중 들른 뉴 본드 스트리트의 까르띠에 템플 앞에서
런던에서 태어난 베누아 알롱제 워치와의 기념 사진.

몇 년 뒤 베누아 알롱제 라인이 리뉴얼되어 재출시되면서 부동의 인기 모델이 되었고, 한때는 굳이 설명해야 했던 시계도 이제는 크래쉬 워치의 인기에 힘입어 훨씬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구매한 모델이 그대로 복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리뉴얼 이후에는 같은 라인 안에서도 파베 세팅이 들어간 모델들만 출시되었고, 제가 가진 골드 워치 버전은 아직까지 다시 나오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그 점 때문에 제가 가진 베누아 알롱제 워치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고 시세 역시 제가 구매하던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버렸습니다. 지금은 중고가가 5천만 원을 웃도는 모델이 되어 성공한 투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 글을 투자 성공담처럼 마무리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오른 건 흥미로운 에필로그일 뿐, 제가 그 시계를 샀던 이유는 처음부터 시세 차익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다만, 남편을 고를(!) 때보다도 더 심기일전했던 기억에 웃음이 나올 따름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결혼 예물은 시계 한 점을 들인 일이라기보다, 제 취향에 대한 작은 확신을 들인 일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쉽게 이해하는 선택 대신, 조금 귀찮고 설명이 필요한 선택을 해본 일. 백화점 쇼윈도 안에서가 아니라 빈티지 시계 매장들을 헤매며, 결국 내가 가장 오래 좋아할 물건을 찾아낸 일. 트렌드는 나중에 따라왔지만, 제가 먼저 믿은 건 남들의 목소리나 가격이 아니라 저의 취향이었습니다. 새것인지 빈티지인지, 상태가 얼마나 완벽한지, 얼마에 샀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지 몰라도, 그 시계를 볼 때마다 뛰는 제 심장은 꽤 오래 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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