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국내 최대 책 축제인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이 막을 올렸다. 올해 도서전은 역대급 규모와 뜨거운 관람 열기 속에서 출발했지만 현장 곳곳에서는 대형 부스 쏠림, 부족한 휴게 공간, 책보다 굿즈가 더 부각되는 분위기에 관한 지적도 나왔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서울국제도서전은 24일부터 오는 28일까지 5일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개최한다. 올해 주제는 ‘인간선언 Homo duduri’로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과 탐구 정신을 묻는다.
도서전은 올해 역시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며 개막 첫날부터 전시장 곳곳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인기 출판사 부스 앞에는 긴 줄이 형성됐고 작가 사인회와 한정판 굿즈 판매 부스 주변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렸다.
도서전은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한국을 포함한 18개국에서 국내 361개사와 해외 177개사 참가해 전시·강연·세미나·사인회 등 416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와 연사도 326명에 달한다.
장소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코엑스 A홀과 B1홀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다만 538개 출판사와 관련 단체가 참여하며 전시장 안팎의 밀도는 한층 높아졌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둘러볼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지만 동시에 인기 부스 주변으로 인파가 집중되며 책을 천천히 살펴보기 어려운 장면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앙꼬 없는 찐빵?...본질 ‘책’보다 외형·굿즈에 쏠린 시선
도서전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대형 출판사 부스와 굿즈 판매 공간이었다. 유명 작가의 신간, 한정판 책갈피, 엽서, 에코백, 키링, 포스터 등을 판매하는 부스에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일부 부스는 책보다 굿즈 진열대 앞이 더 붐비는 모습도 보였다.
중소 출판사 관계자들은 이 같은 흐름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올해 도서전에 참여한 한 중소 출판사 관계자는 “자본이 있는 대형 출판사가 부스를 화려하게 꾸미다 보니 사람들이 큰 부스 위주로 몰리게 된다”며 “부스를 꾸밀 여력이 부족한 작은 출판사들은 자연스럽게 묻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참가 부스 자리는 제비뽑기 방식으로 정해진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형 출판사가 늘 중심부에서 큰 부스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출판계의 빈익빈 부익부가 더 커지는 것 같아 우려된다. 내년 도서전에도 참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전했다.
책보다 굿즈가 전면에 놓이는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이 관계자는 “책 자체를 소개하고 독자와 깊게 이야기하는 자리라기보다 해가 갈수록 굿즈에 더 시선이 쏠리는 것 같다”며 “이게 도서전인지 굿즈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아이와 보기엔 선택지 적어”...가족 관람객도 아쉬움
가족 단위 관람객 사이에서도 아쉬움이 나왔다. 체험학습계를 내고 경북 포항에서 아이를 데려왔다는 한 학부모는 “출판계에서 손에 꼽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부스의 선택지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며 “어린이 관련 부스도 한곳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나뉘어 있어 동선을 짜기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보다 사람이 더 많아진 듯해 책을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었다”며 “아이와 함께 책을 천천히 보고 추천도 받으면서 즐기고 싶었는데, 현장에서는 이동하고 줄 서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게 돼 아쉬웠다”고 전했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휴게 공간 부족 지적
휴게 공간 부족 문제도 반복됐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관람객들이 벽면이나 통로 가장자리에 앉아 짐을 정리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일부 관람객은 구매한 책이 담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동하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쉬기도 했다.
한 관람객은 “아이들을 비롯해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찾는 행사라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앉을 곳을 찾기 어려웠다”며 “규모만 키울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휴게 공간과 관람 동선도 함께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도 도서전 현장에서는 부족한 휴게 공간과 혼잡한 동선 문제가 언급된 바 있다. 올해는 행사장 규모가 확장됐음에도 관람객 체감 혼잡도는 여전히 높았다. 특히 인기 부스 주변은 대기 줄과 이동 동선이 뒤엉키며 책을 살펴보려는 관람객과 단순 이동하려는 관람객이 서로 불편을 겪는 장면도 반복됐다.
행사장을 찾은 또 다른 관람객은 “사람이 너무 많아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며 “도서전은 책을 사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머물고 교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쉴 곳이 부족하다 보니 천천히 둘러보기보다 빨리 보고 나가자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도서전 문제의식 속 등장한 ‘서울제대로도서전’
서울국제도서전을 둘러싼 문제의식은 별도의 행사 개최로도 이어졌다. 서울국제도서전 기간과 맞물려 열리는 ‘서울제대로도서전’은 “여유 있게, 오래, 가깝게”를 내세우며 독자와 작가, 출판사, 책방이 보다 가까이 만나는 자리를 표방했다. 주최 측은 독자를 단순한 구매자나 프로그램 수용자가 아니라 책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향유자로 보고 책 장터와 독자 참여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다.
이 행사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상업화와 운영 방식에 대한 출판계 안팎의 문제 제기 속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일부 출판인들은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 회복을 요구하며 대안적 흐름을 만들고 있다. 도서전이 단순히 규모와 흥행을 겨루는 장이 아니라 독자와 책, 작은 출판사가 고르게 만날 수 있는 공적 플랫폼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별도의 도서전으로 표출된 셈이다.
도서전, 이제는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가’ 과제
2026 서울국제도서전은 수치상으로는 분명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다. 참가사와 프로그램, 해외 교류, 관람 열기 모두 국내 최대 책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다. 주빈국인 프랑스 프로그램과 AI 시대 인간성을 묻는 주제 역시 도서전의 외연을 넓히는 요소다.
하지만 현장 관람객과 중소 출판사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도서전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분명히 보여준다. 대형 출판사와 인기 굿즈에 쏠리는 관심, 상대적으로 묻히는 작은 출판사, 가족 관람객을 위한 부족한 동선과 콘텐츠, 반복되는 휴게 공간 문제는 단순한 운영상의 불편을 넘어 도서전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개막 첫날 뜨거운 서울국제도서전의 열기가 ‘책을 위한 열기’로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제 도서전이 얼마나 커졌는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책이 얼마나 중심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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