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 21세기 한국서 다시 읽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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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 21세기 한국서 다시 읽히는 이유

일요시사 2026-06-24 15:01:49 신고

최근 출판계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나타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둘째 사위이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가였던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의 고전 <게으를 권리(The Right to Be Lazy)>가 르몽드코리아의 양장본 포켓북으로 조용히 출간된 뒤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것.

1880년에 발표된 이 작은 팸플릿이 1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날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더욱 흥미롭다. 장시간 노동, 번아웃, 저성장, 청년 세대의 ‘조용한 퇴사’, 워라밸 논쟁, 기본소득 논의,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불러온 노동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시점에서, 라파르그의 급진적인 질문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으로 들린다.

그는 묻는다.

“인간은 왜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

그리고 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노동할 권리가 아니라 게으를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자의 성경을 뒤집어 읽다

<게으를 권리>는 사실상 노동윤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주의 운동은 대체로 ‘노동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실업 문제와 빈곤이 심각했던 시기였기에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는 자연스러운 정치적 구호였다.

그러나 라파르그는 정반대로 나아간다. 그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충분히 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자체를 지나치게 숭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노동 숭배의 광기’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라파르그가 노동을 단순히 경제적 착취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노동은 종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종교다.

중세 기독교가 인간에게 고통을 견디라고 가르쳤다면, 산업자본주의는 노동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다. 라파르그는 이를 ‘기독교 윤리를 흉내 낸 자본주의 윤리’라고 조롱한다.

“일할수록 더 가난해진다”

이 책의 핵심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과잉노동에 대한 비판이다. 라파르그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14시간, 심지어 16시간까지 노동하게 된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공장으로 내몰리고, 가정이 해체되고, 건강이 파괴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경제학적 분석이다. 라파르그는 노동자들이 더 많이 생산할수록 결국 시장에는 상품이 넘쳐나게 되고, 과잉생산 위기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업과 임금 삭감으로 다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 그가 요약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는 단순하다.

“일하라. 더 가난해져라. 더 가난해질수록 더 많이 일할 이유가 생긴다.”

오늘날 플랫폼 노동과 프리랜서 경제, 끝없는 자기계발 경쟁을 바라보는 독자라면 이 문장이 결코 19세기의 문장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AI 시대에 더욱 급진적으로 읽히는 책

이 책이 지금 새롭게 읽히는 이유는 인공지능 때문이다. 라파르그가 살던 시대의 증기기관과 자동화 기계는 오늘날의 AI와 로봇에 해당한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주의 체제였다.

기계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노동강도를 높이고 실업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예언을 인용한다.

만약 도구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더 이상 노예는 필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라파르그는 말한다. 기계는 인간의 적이 아니라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AI를 둘러싼 오늘의 논쟁은 놀랍도록 이 문제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아니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 라파르그는 이미 140여 년 전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다. 마르크스주의 책인가, 문명 비판서인가.

흥미롭게도 <게으를 권리>는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 입문서가 아니다. 잉여가치 이론도, 자본 축적 이론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문명 비판서에 가깝다.

라파르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 성서의 구절까지 동원하며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묻는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키케로를 인용하며 고대 사회가 노동보다 여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의 논의는 때때로 과장되고 도발적이다.

노동 자체를 지나치게 악마화하기도 하고, 고대 사회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도 엿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과장과 도발이 이 책의 미덕이다.

라파르그는 독자에게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늘 ‘어떻게 더 열심히 일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는 정반대로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게으를 권리>가 지금 한국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게으름을 예찬하는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노동을 거부하자는 선언문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 중심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 온 가치들을 근본에서 다시 묻는 철학적 도발이다.

성과와 생산성, 자기계발과 경쟁이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시대에 라파르그는 인간의 시간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한 하루 3시간 노동은 오늘날에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라기보다 하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기계와 AI가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의 자유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150년 전의 이 작은 책이 다시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 질문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으를 권리>는 과거의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아니라, AI 시대의 노동과 인간의 미래를 묻는 가장 현대적인 책 가운데 하나로 읽힌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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