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BMW에게 전기차는 쉬운 숙제였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달리는 차를 만드는 일, 정교하게 차체를 다루는 일, 운전자가 손끝으로 차의 반응을 느끼게 만드는 일. 모두 BMW가 오랫동안 잘해온 영역이었다.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힘까지 더해지면, BMW다운 전기차는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거였다.
하지만 실제 숙제는 조금 달랐다. 전기차는 성능의 출발선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대부분 조용하고, 빠르고, 매끄럽다. 내연기관 시절 브랜드의 차이를 만들던 엔진음과 변속감, 회전 질감은 줄었고, 스펙표 위에는 비슷하게 강한 숫자들이 줄지어 섰다. 좋은 전기차는 많아졌지만, 한눈에 그 브랜드다운 전기차를 구분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모두가 빠르고 조용해진 시대에는 '얼마나 빠른가'보다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BMW iX3를 타기 전 궁금했던 것도 그 지점이었다. 이 차가 얼마나 멀리 가고, 얼마나 빨리 충전하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몇 초 만에 도달하는지는 이미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는 차의 성격을 전부 말해주지 않는다. 운전석에 앉아 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속도를 덜어내는 순간에야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더 뉴 BMW iX3의 외관은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과 미래지향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며 BMW만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현했다. ⓒ BMW 코리아
시승한 모델은 iX3 M 스포츠 프로. M이라는 글자는 BMW에서 가볍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배지 하나일 수 있지만, BMW에게는 운전 재미를 설명해온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다. 그런데 iX3는 전기 SUV다. 엔진음도, 변속감도, 고회전으로 밀어붙이는 감각도 없다. 대신 조용한 모터와 무거운 배터리, 매끄러운 가속이 있다.
그래서 이 차에서 중요한 건 M이 얼마나 과격하게 드러나는지가 아니었다. 사라진 감각의 자리를 무엇으로 채웠는지였다.
◆노이어 클라쎄가 다시 세운 BMW 얼굴
iX3는 BMW 노이어 클라쎄(Neue Klasse)의 첫 양산형 모델이다. 그래서 이 차의 디자인은 한 차종의 변화로만 볼 수 없다. 앞으로 BMW가 어떤 얼굴과 실내를 가져갈지 보여주는 출발점이다. 익숙한 BMW의 인상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낯선 브랜드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는 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히 세로형으로 다시 세운 키드니 그릴이다. 최근 BMW 디자인은 크기와 존재감으로 자주 논쟁을 만들었지만, iX3는 힘을 주는 방식이 다르다. 그릴을 무작정 키우는 대신 전면 중앙에 또렷하게 세우고, 양옆의 트윈 헤드라이트와 하나의 얼굴로 묶었다. 과거 노이어 클라쎄의 수직형 그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전기차에 맞는 매끈한 표면으로 다시 정리했다.
전면부는 낯설지만 금방 BMW임을 알아볼 수 있다. 막힌 면과 간결한 표면은 전기차의 문법을 따르지만, 키드니 그릴과 헤드라이트의 배치가 브랜드의 오래된 인상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iX3의 얼굴은 완전히 새롭다고 말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과거의 BMW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전기차 시대의 비율 안에서 BMW의 얼굴을 다시 압축한 모습이다.
BMW 특유의 정교한 차체 설계를 통해 0.24라는 동급 프리미엄 모델 최고 수준의 공기저항계수까지 함께 달성했다. ⓒ BMW 코리아
측면은 더 차분하다. 긴 휠베이스와 짧게 정리된 앞뒤 오버행, 매끈한 유리면과 플러시 도어 핸들이 차를 한층 간결하게 보이게 한다. 기존 X 모델에서 느껴지던 투박한 SUV 감각은 줄고, 전기차다운 정제된 인상이 강해졌다. 차체는 작지 않지만 선을 많이 쓰지 않아 무겁게 가라앉지 않는다.
M 스포츠 프로 트림은 여기서 인상을 한 번 더 조인다. 블랙 하이글로스 외장 요소와 휠, 범퍼 주변 디테일은 차체를 더 낮고 단단하게 보이게 한다. 이 부분은 단순한 분위기용 장식이라기보다, 노이어 클라쎄의 매끈한 표면에 M의 긴장감을 얹었다. 큰 소리로 스포티함을 외치지는 않지만, 차의 자세는 분명 달라진다.
후면부의 경우 좌우로 길게 뻗은 테일램프가 차폭을 넓어 보이게 만들고, L자형 그래픽은 BMW의 익숙한 후면 인상을 전기차 문법에 맞춰 다시 정리한다. 전면이 새 얼굴을 보여준다면, 후면은 그 변화를 SUV의 비율 안에 차분하게 눌러 담는다. iX3의 디자인은 첫눈에 강하게 꽂히기도 하지만, 오래 볼수록 선과 면이 정돈돼 보인다.
실내의 변화는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기존 BMW 실내가 운전석을 중심으로 물리적 조작감을 쌓아온 쪽이었다면, iX3는 BMW 파노라믹 iDrive를 중심으로 디지털 경험을 새로 배열한다. 핵심은 BMW 파노라믹 비전이다. 앞유리 하단을 가로지르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주행 정보를 더 넓고 앞쪽에 띄우는 방식이다.
전면부의 BMW 키드니 그릴은 1960년대 BMW 노이어 클라쎄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 여기에 기존의 크롬 장식을 정교한 조명으로 대체하며 BMW의 새로운 얼굴을 완성했다. ⓒ BMW 코리아
이 변화는 상징적이다. 계기판을 운전자 앞에 붙잡아두는 대신, 운전자의 시선이 향하는 전방 자체를 정보 공간으로 바꾼다. 전기차 실내가 흔히 거대한 중앙 화면 경쟁으로 흐르는 것과 달리, iX3는 정보를 어디에 보여줄지에 더 신경을 쓴다. 화면이 많아졌지만, 운전자가 차 안의 주도권을 잃었다는 느낌은 크지 않다.
물론 모든 조작이 곧바로 익숙한 것은 아니다. 물리 버튼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몇몇 기능은 화면 안으로 들어갔고, 처음에는 메뉴 구조를 익혀야 한다. 다만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BMW가 지키려 한 건 버튼의 개수가 아니라 운전자의 위치다.
M 스포츠 프로의 실내 구성도 이 흐름과 맞물린다. M 스포츠 시트와 M 스티어링 휠은 시각적인 장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운전자가 차의 반응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접점이다. 전기 SUV가 아무리 조용하고 매끄러워졌다고 해도, BMW에게 운전석은 여전히 차의 중심이어야 한다. iX3의 실내는 그 원칙을 디지털 방식으로 다시 배열한 공간이다.
◆소리 대신 반응으로 말하는 M의 감각
숫자만 놓고 봐도 iX3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iX3 50 xDrive 기준으로 최고출력 469마력, 최대토크 645Nm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9초 만에 도달하고, 최고속도는 210㎞/h다. 108.7㎾h 배터리를 바탕으로 WLTP 기준 최대 805㎞를 달리고, 800V 아키텍처와 최대 400㎾ 급속충전을 통해 10분 충전으로 최대 372㎞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1분이다.
후면부는 차량의 넓고 안정적인 비례감을 시각적으로 한층 강조하도록 디자인됐으며, BMW의 상징적인 L자형 리어 라이트와 조화를 이뤄 강인한 존재감을 완성한다. ⓒ BMW 코리아
이 정도 수치라면 빠르다는 말은 어렵지 않게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승에서 중요한 건 숫자의 크기가 아니었다. 이 숫자들이 실제 주행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풀리는지가 더 중요했다. 전기차는 구조적으로 순간 토크를 쉽게 끌어낸다. 문제는 그 힘을 얼마나 BMW답게 다루느냐다.
출발은 조용하고 빠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차는 즉각 반응한다. 다만 힘을 과시하듯 한 번에 쏟아내기보다, 운전자의 요구를 빠르게 읽고 차체를 안정적으로 밀어낸다. 전기차 특유의 매끄러운 가속이 있지만, 반응이 밋밋하게 흐르지 않는다. 힘은 충분하고, 전달은 정돈됐다.
여기서 M 스포츠 프로라는 이름이 의미를 갖는다. 이 차의 M은 배기음이나 변속 충격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없다. 대신 가속페달의 반응, 스티어링의 정확도, 제동으로 무게를 옮기는 과정, 코너를 지나며 차체를 붙잡는 자세로 존재해야 한다. iX3 M 스포츠 프로는 바로 그 지점에서 M의 문법을 전기 SUV에 맞게 바꿔 보여준다.
차체의 무게감은 분명 있다. 전기 SUV인 만큼 배터리와 차체 크기에서 오는 존재감은 숨기기 어렵다. 그러나 그 무게가 운전자에게 둔하게 밀려오지는 않는다. 스티어링을 감았을 때 앞머리가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적고, 차선변경이나 완만한 코너에서도 차체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무게를 지웠다기보다, 무게를 운전자가 다룰 수 있는 형태로 정리했다.
중앙 디스플레이는 운전석 방향으로 17.5도 기울어진 프리-컷 디자인을 채택했다. = 노병우 기자
코너에서도 성격은 분명하다. iX3는 운전자를 긴장시키는 방식으로 날카롭지 않다. 대신 방향을 바꾸는 과정이 차분하고 정확하다. 스티어링을 돌렸을 때 차가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답답함이 적고, 가속으로 코너를 빠져나올 때도 앞뒤 움직임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스포츠카처럼 과격하지는 않지만, M이라는 글자를 가볍게 붙인 차도 아니다.
BMW가 강조하는 하트 오브 조이(Heart of Joy)는 이 감각을 설명하는 핵심 장치다. 하트 오브 조이는 구동계와 주행 역학을 통합 관리하는 고성능 제어 장치다. 가속과 제동, 회생제동, 조향, 차체 안정화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다룬다. 운전자가 체감하는 결과는 어렵지 않다. 페달을 밟고, 스티어링을 돌리고, 브레이크를 다루는 과정이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속보다 오래 남는 건 감속이었다. 빠르게 달리는 전기차는 많지만, 속도를 자연스럽게 덜어내고, 회생제동과 물리 브레이크 사이의 이질감을 줄이고, 정차 직전의 울컥거림까지 다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매일 타는 차에서 운전자가 더 자주 만나는 건 강한 가속보다 부드러운 감속이다.
iX3는 이 마지막 감각을 꽤 세심하게 다룬다. BMW는 일상주행 제동의 상당 부분을 회생제동만으로 처리하고, 정차 직전의 움직임까지 다듬는 소프트 스톱(Soft Stop)을 강조한다. 속도를 줄이는 과정이 부드럽고, 페달 조작에 따른 반응도 일정하다. 회생제동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서도 차가 갑자기 잡아당기는 느낌은 크지 않다.
앞 유리 하단 전체를 가로지르는 BMW 파노라믹 비전을 통해 주행 정보를 표시한다. = 노병우 기자
정차 직전의 감각도 좋다. 전기차는 멈추기 직전 미세한 울컥거림이 남으면 고급감이 금방 흐트러진다. iX3는 이 마지막 몇 미터를 부드럽게 처리한다. 화려한 수치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실제 운전에서는 이런 감각이 차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숫자보다 감각이라는 말이 가장 잘 맞는 순간도 이쪽이다.
결국 iX3 M 스포츠 프로의 재미는 폭발적인 자극보다 정교한 연결감에 있다. 가속은 빠르고, 제동은 부드럽고, 조향은 차체의 무게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엔진음과 변속감이 사라진 전기차에서 BMW가 운전 재미를 다시 만드는 방식이다.
BMW iX3는 전기차가 되면서 조용해졌다. 그러나 조용해졌다고 감각까지 옅어진 건 아니다. M의 자리는 소리에서 반응으로, 회전수에서 제어로, 변속감에서 감속의 리듬으로 옮겨갔다. iX3 M 스포츠 프로는 그 변화를 꽤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전기 SUV다.
숫자보다 감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이유다. 이 차의 재미는 스펙표에서 한눈에 튀어나오는 종류가 아니다. 운전석에 앉아 차를 움직이고, 멈추고, 다시 방향을 바꾸는 동안 조금씩 쌓인다. 전기차의 재미가 꼭 큰 소리와 큰 자극일 필요는 없다는 것. BMW iX3 M 스포츠 프로는 그 답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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