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인력공단의 외국인 노동자 한국어 교재에 상사의 반말과 고성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실려 논란이 됐다. /'MBC 라디오 시사' 유튜브 캡처
한국에 코리안드림을 품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다름 아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순응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이 제작한 한국어 능력 시험 교재에 직장 상사의 고압적인 반말과 고성을 정당화하는 대화문이 실려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제작한 '직장생활 한국어' 교재의 실태를 고발했다.
해당 교재에는 상사의 반말에 기분이 상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동료가 "한국에서는 친한 사람에게 반말을 할 수도 있다. 무시한 게 아니다"라고 조언하는 대화문이 담겼다.
심지어 상사가 일할 때 소리를 지르는 상황에 대해서도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그러시는 것"이라며 포장했다. 이 대화의 끝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가 "제가 부장님을 오해했네요"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체념으로 마무리된다.
"친해서 반말? 가르칠 수 없어"… 현장 교원들의 탄식
현장에서 이를 가르쳐야 하는 한국어 교원들의 자괴감은 깊다.
이창용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장은 "학습자가 대화문대로 대답했을 때, 교사는 도저히 '맞아요, 잘했어요'라고 말할 수 없다"며 "차마 '친해서 한 거니까 오해한 거예요'라는 말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유승민 작가는 "(괴롭힘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건데, 고용허가를 받아 들어오려면 통과해야 하는 관문에서 이런 내용부터 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가가 만든 교재는 이러한 권위적인 언행을 노동권 침해가 아닌 외국인의 문화적 오해로 축소·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교재 내 다른 단원에서는 '동료나 후배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고 있어 교재 자체의 내용마저 충돌하고 있다.
"수당은 언제 주나요?" 정당한 노동권 질문은 교재에서 증발
더 큰 문제는 해당 교재가 외국인 노동자를 상사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순종적인 역할로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 작가는 "외국인 근로자는 대체로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죄송합니다', '오해했네요' 등 순종적인 역할의 말 위주로 학습하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생존과 직결된 질문들은 교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창용 지부장은 "작업은 위험한데 중지해도 될까요?", "보호구가 없는데 보호구가 오면 시작해도 될까요?", "수당은 언제 지급됩니까?"와 같은 상급자를 향한 질문이 교재에 아예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노동 조건과 관련된 정당한 권리 요구를 사업장 내 권력 관계에서 의도적으로 분리해버린 것이다.
논란이 확산하자 한국어 교재 발행을 담당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유 작가는 "공단 측에 문의한 결과 문제가 된 대화문과 학습 내용은 즉시 삭제했으며, 향후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보호에 대치되는 내용이 있는지 전수조사를 해서 검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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